여전히 철옹성같이 견고한 '지역주의'.

8년 전 막말 뒤로 숨은 ‘현재의 허다한 불의와 비리’.

그리고 당혹스러운 '45%의 침묵'.

매트릭스의 빨간 약 같았던 4.11이 보여준 냉혹한 현실이었다.

결과를 받아들인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게 민주주의다.


비교적 담담히 개표방송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 잔뜩 밀려 있던 설거지를 했다.

그래도 쉽사리 잠들 거 같지 않아 새벽 두시에 헛헛한 마음으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며 헤메이다가 자러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온종일 내 맘에 밟혔던 한 낙선 후보의 페북이었다.

지난 며칠동안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했던 사람...
지금 그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

자기 몫이 아닌 짐까지 짊어지고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

고맙고 미안해서 그의 담벼락에서 서성이며 거기 있는 글을 읽다가 괜히 눈물이 났다.

거기엔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의 글을 남기고 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들이 쏟아진다. 그 중, SNS착시현상을 말하고 가벼운 소통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들이 나온다. 맞다. 그런 면이 있다. SNS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나는 여기서 수없이 오갔던 마음의 교류, 그 진심의 힘을 믿는다.


어제, 쉴새없이 올라오는 투표인증샷에 좋아요를 누르며 행복했었다.

위로하고 싶어 찾아간 낙선 후보의 담벼락에서 오히려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낙심하지 말자.

개표방송이 담아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득표율 수치가 보여주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새빨갛게 물든 지도가 다 담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그래... 느리지만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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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짐 월리스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열혈팬이라고하여 그의 책을 읽는 것이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몇 년 전, 참된 복음에서 멀어져 있는 내 삶을 돌아보며 부끄러움과 회개로 몸서리치게 만들었던 그의 책 <회심>은 그 해 나에게 하나의 사건이었고 한 권의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이었다.

고난주간에 다시 짐 월리스의 책 <부러진 십자가(원제: Agenda for Biblical People)>를 집어들었다. 1976년에 출간된 책이니 현재 환갑을 넘긴 짐 월리스가 서른도 되기 전에 쓴 책이다.
놀랍다. 4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연도를 몰랐다면 당연히 신작이라 생각했을만큼 오늘날 신자유주의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으며 그 흐름에 타협하고 순응한 교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40년 전 미국 땅에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라고 외쳤던 이십대의 젊은 예언자는 이 책을 통해 수십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로 와서 미국을 너무도 닮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와 교회를 향해서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보수적 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 양쪽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의제에 맞추어 복음을 재단하고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하며, 교회가 세상권세의 우상숭배적 본질을 폭로하는 복음의 참 의미를 회복해야 함을 역설한다.
복음을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교회를 향한 메시지로 보며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 보여주는 대안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제세례파신학자들의 메시지와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것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촘스키에 버금가는 예리한 비판을 미국을 향해 쏟아내는 그는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현실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해 활발히 발언하고 행동하는 시민운동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타임>으로부터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의 책 <하나님의 정치>는 2008년 대선에서 미국 보수신앙인들을 설득해내어 그들의 정치 행태를 꽤 많이 바꾸어낸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같이 짐 월리스는 어느 하나의 틀로 규정될 수 없는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매우 철저한 보수적 복음주의신앙에 기반해 있지만, 우리의 기존 선입견 안에서는 진보적 기독교로 분류될만한 강조점을 가지고 그런 실천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맞다. 온전한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반쪽짜리 복음을 좆는 자들이 만들어낸 소위 보수적/진보적 기독교라는 진영구분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짐 월리스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 책의 국내출간이 반갑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짐 월리스가 조엘 오스틴보다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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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존 파이퍼와 톰 라이트 간의 유명한 칭의에 대한 논쟁에서, 파이퍼에 대한 답변으로 라이트가 쓴 책이다. 
공개논쟁에 처해 있는 학자가 반박의 글을 쓸 때면 그는 반대의견을 접한 독자들을 설득해야 하므로 자신의 모든 지성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글을 쓰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톰 라이트는 자신의 칭의론의 핵심골격을 러프하게 기술했던 이전 논문 "What St. Paul really said?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에클레시아북스 역간)"에서보다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한층 더 예리하고 선명하게 가다듬었으며 또한 더욱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논쟁을 직접 접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라이트는 칭의론에 있어서 파이퍼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파이퍼의 주장은 옳지만 그가 말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바울의 칭의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전통 속에서 형성된 교리를 다시 본문에 들이대어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읽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바울의 시대에 대한 연구와 본문에 대한 성실한 석의를 거쳐 바울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반복해서 역설한다. 
성경에 나타난 구원에 대한 풍성하고 다양한 설명 가운데에서 우리는 이신칭의의 위대한 교리를 발견할 수 있다(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래서 라이트도 이신칭의를 믿고 인정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적어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의롭다(dikaios 어근을 가진 언어들)'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의미했던 바는 종교개혁의 렌즈로 읽어낸 '이신칭의'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속하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의 신실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본문에 대한 치밀한 석의를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어서 라이트는 그간 이신칭의에 부여한 과도한 짐을 덜어주고 바울의 메시지를 바른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바울신학의 이른바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의 갈등을 넘어서는 길이며, 구원의 수직적 의미(개인구원)와 수평적 의미(사회구원) 사이의 오랜 양자택일식 대립을 넘어서는 길임을 주장한다.
본문석의에 있어서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칭의론에 있어서 그의 핵심적인 주장과 그가 그려낸 전체적인 그림에는 매우 동의하게 되었다. 라이트이 주장이 올바로 이해되어진다면, 그가 복음의 총체적이고 온전한 의미가 회복되는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이 책에 대한 추천사에서 "존 파이퍼는 결국 우리를 위해 훌륭한 일을 저지른 셈이 되었다. 그가 톰 라이트를 비판한 책을 낸 반응으로 라이트가 이렇게 훌륭한 책을 출간하는 결과를 얻어냈으니 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 그 글을 읽으며 ‘이번엔 맥클라렌이 좀 짖궂었네’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난 후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단순히 논적의 글에 대한 반박서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과 그의 나라의 장엄한 비전에 매료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책이다. 

책을 덮으며 문득 바울의 위대한 찬양이 떠올랐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 33~36)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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