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지나치게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천대상은 명확하다. 최근 나꼼수나 SNS 등을 통해 이제 막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2,30대에게 추천한다.
이들이 독서를 통해 정치의식을 키워나가고자 할 때에 막상 쉬운 입문자용 책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기존 정치서적들은 대부분 주요 정치인들의 이름과 정치권의 주요 이슈와 사건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선이해가 있어야 재미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책을 찾는 입문자들에게는 이 책이 딱 알맞을듯 싶다.
따라서 반대로 이 분야에 어느 정도 독서내공이 쌓여있는 분들에게는 별로 추천할만하지 않다. 뻔~할 수도 있다.

이 책, 당연히 편향적이다. 정치서적에서의 편향성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편향의 '이유'가 분명히 제시되면 된다. 그 이유에 설득되고 설득되지 않고는 독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를 이야기한다.
자신이 조선일보를 애독하던 보수청년에서 진보의 대표적 대안언론 '나꼼수'의 PD가 되기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보수의 유형을 분류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태, 그리고 정치수법과 생존전략 등을 해부하기도 한다.
나는 저자가 나눈 보수의 세 유형(모태 보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 보수)과 그에 대한 분석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모태 보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낸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주의 보수(대표인물:MB)가 같은 보수진영의 모태 보수(대표인물:박근혜)와 비교해봐도 얼마나 근본도 없는 무개념 속물들인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는 자칫하면 모태 보수가 다음 정권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가 절대 MB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또한 이 책이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한국근현대사에 나타난 보수세력과 개신교의 결탁은 짧은 분량임에도 큰 부끄러움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가 목사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내부자'로서 그가 진단하는 문제의 심각성과 비판의 수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 앞으로 개신교가 우리의 역사에서 이전과 다른 역할로 기록되게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보수는 정치 무관심을 먹고산다. 그런데 이제 보수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이다.

정치, 불편할 수 있다.
정치 얘기로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괜한 긴장이 생기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과 화평하게 잘 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크리스천들에게 정치는 더욱 불편하고 골치아픈 이슈인거 같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인들이 노는 '그들만의 게임'이 아니다. 나 자신을 포함한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진보든 보수든 정치영역에서의 불의와 부패는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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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 구입에는 매우 신중한 편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대출빚을 꽤 내어 결혼하게 되자 '왠만하면 빌려 읽고 다시 꺼내 읽을만한 책만 사자' 결심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철들었구나' 싶은, 지금도 나름 대견하게 여기는 결정이다(출판사들은 나같은 사람 참 싫겠지만ㅋㅋ)


이 '소장가치'라는 기준에 따라, 나는 왠만하면 정치서적은 사서 읽지 않는다. 특정 시기에만 의미있는 이 분야 책들의 한시적 특성 때문이다.
아무리 선견자적 통찰을 지닌 대단한 책이라 해도, 나중에 이미 지나간 상황에 대한 철지난 예측과 분석을 다시 꺼내 읽게 될까? 아니다. 그맘때 열심히 빌려 읽으면 그만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 [닥치고 정치] 역시 동네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무려 예약3순위로 밀려 있다가 몇주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받아보았다. 그런데 불과 수십페이지 읽다가, 이 책은 무조건 반드시 결코 절대 사야할 책이라는걸 깨달았다.
이 책은 갖고 있어야 한다. 김어준의 '무학의 통찰(그 스스로 이렇게 표현하는데 이건 김어준표 겸손이다)'이 보여주는 엄청난 내공이 바로 이 책의 '소장가치'다.
상황은 바뀌어도 통찰은 유효하다. 세월이 흘러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뀐채 비슷한 역사가 반복될 때 그가 지금의 상황에서 뽑아낸 통찰은 그 때에도 분명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샀다.

또한 이 책에는 이 분야 다른 책들에
서는 보기 드문 '감성'이 있다. 그가 인위적으로 감동을 주려는 사람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그 감성은 더욱 호소력이 있다. 김어준이 왜 나꼼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을 아내에게 읽어주다 나도 울고 아내도 울었다.
김어준에게는 염치가 있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고 의리가 있고 '가슴'이 있다. 그래서 난 맨날 씨바씨바거리는 이 욕쟁이 아저씨가 좋다.

다 읽고 책을 덮는데 책의 마지막 장에 나보다 앞서 빌린 사람이 남긴 글이 눈에 띈다(감히 도서관 책에 낙서를!!ㅋ).
하지만 난 이 분 정말 이해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 후에 나 이후에 그 책을 빌려볼 사람에게 "당신도 읽으셨군요. 우리 잘해봅시다"라고 다정하게 말 걸고 싶은 책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여기 그런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불특정다수에게 '제발 이 책을 읽어 보세요'하고 떠들고 싶어진다. 그게 내가 여기서 떠들고 있는 이유이고...^_^; 

너무 많이 떠들었다. 암튼 이 책... 닥치고 읽어야 된다. 정말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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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한미FTA로 들끓고 있는 이 시점에, 나름 경제학 전공자로서 한두마디 보태봅니다(며칠 전 제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댓글로 후배들과 짧게 토론했던 내용을 약간 바꾸어 올립니다).

FTA찬성론은 데이빗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이라는 이론적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의 맹점은 장하준이 가장 설득력있게 반박하고 있습니다(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참고).
이 이론이 그 이론적 정합성만큼이나 현실에 부합하려면, 실제 노동시장이 절대적인 유연성을 띄고 있어야 합니다. 가령, FTA의 여파로 망하게 된 농민이 핸드폰이나 자동차산업, 여타 서비스업으로 신속하게 흡수될 수 있다면 자유무역이 교역국 양자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비교우위론은 현실에서도 잘 작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농민 할아버지가 2,3차...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되는 절대유연한 노동시장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허구의 개념입니다(즉시 투입되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영구적으로 투입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 이득이란 것은 결국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다른 누군가의 이득일뿐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잃는 쪽은 이미 가난했던 사람이고 얻는 쪽은 이미 부했던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그런 점을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 등을 조합해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하지만 그 이론이 얼마나 빈약한 현실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보면 놀랄 정도입니다.
그리고 현재 FTA의 독소조항이 악용될 가능성은 단지 비교우위론의 비현실성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문제입니다.

제가 현재의 한미FTA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존의 저의 정치적 입장과 선호 때문도 아닙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한미FTA반대집회에 참석하러 시청광장에 나갔습니다. 거기서 이 불평등협정에 반대하는 농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국익’이라는 개념은 사실 허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유지해도 우리나라에도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뭐가 국익일까요? GDP수치가 오르면 국익일까요? 농민들의 피눈물과 핸드폰, 자동차 판매량을 바꾸면 그게 국익인걸까요?
만약 우리나라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상대적 빈국과 불평등협정을 시도한다면 저는 지금의 간절함으로 그 협정을 반대합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당장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그 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보시고 그 울부짖음을 들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의 FTA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협정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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