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따비


저는 엄기호 선생의 책을 참 좋아합니다. 추상적인 관념들의 말잔치가 아니라 현실에 뿌리박은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안에서 유의미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 좋습니다.
그는 통계수치와 데이터 몇 가지에 현학적인 학술용어를 적당히 버무려가며 책상 위에서만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 위에 글을 써나가는 사회학자입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철학에서 비롯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학교는 다시 가르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에서 저자는 '말하기-듣기'와 비교해가며 '가르치기-배우기'의 참 의미를 논합니다(289-319쪽). 
누군가를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통찰입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학교에 대한 책입니다.
이 책 역시 매우 엄기호답게 쓴 책입니다. 
수많은 교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는 생생한 학교현장 이야기에 자신의 사회학적 통찰을 더하여 썼습니다.
우리 교육의 답없는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분투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짠하고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책을 읽어갈수록 네 살된 아들을 생각하며 벌써부터 한숨이 깊어집니다.
'다시 학교가 배움의 장이 되게 하는데 한 사람의 학부모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결국 '탈'공교육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게 아닐까.'
만만치않은 독서입니다.
암울한 정도가 <대한민국 부모> 못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교육의 회복이든, 탈공교육이든, 현실을 아파하며 고민하는 주체들을 통해서만 변화가 시작될 수 있기에,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을 이 암울하고 심난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독서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대한민국 부모>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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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중독>, 엄기호 / 하지현, 위고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인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한국사회에서의 공부의 의미에 대해 논한 대담집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공부중'이라는 스테터스는 전가의 보도로 쓰이고 있다. 

공부는 개인에게는 현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유예하는 도피처 역할을 하고, 통치권력에게는 각 사람에게 충분한 자리를 배분해주지 못하는 것이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더 준비되어야 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과 통치권력의 필요들이 절묘히 맞아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공부중'인 상태에 머물러 삶의 다음 단계를 유예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저자들은 "공부중독사회"로 규정한다.

그러한 공부중독의 다양한 양상과 해악을 논한 후에, 삶을 유예시키는 공부가 아니라 용기있게 자기 몫의 삶에 부딪혀 살아가게 만드는 진짜 공부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책이다.

엄기호 선생이 주는 묵직한 통찰과 예리한 문제의식 그리고 하지현 선생의 박학다식함이 잘 어우러진 좋은 대담집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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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그리고 우리신학연구소가 한국사회 청년문제를 화두로 한 심포지움 이후 그것을 발전시켜 2010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여러 학자들의 글 모음집 형태를 띄고 있다.
최근 청년에 관한 책을 지겹도록 읽어제끼고 있다보니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라 식상한 점도 있었지만, 그런 맥락에서 읽지 않았다면 신선하게 읽힐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가령, 웹상에서 인기드라마에 대한 패러디창작물을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양산해내는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백소영의 글, 이말년 만화를 통해 20대의 웹툰이 가지는 사회학적 의미을 이야기한 김수환의 글은 매우 재밌었다.
그리고 책 전체를 안 읽더라도 두 편의 글만은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엄기호의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과 정용택의 "자기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세계와 적대하는 인간"은 이 책에서 발견한 엄청난 보물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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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단속사회"는, 타자성, 타인의 고통 등 낮선 것과는 접촉을 끊어버리고, 같은 취향, 동질성 등에는 과잉접속되어 있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사회는 결국 사회의 필수요건인 유대와 연대, 상호참조의 체제를 파괴해서 결국은 '사회 아닌' 상태가 되고 맙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고립과 과잉접속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저자의 분석이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얼마나 통찰들이 훌륭한지 문단을 통째로 옮겨와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은 책입니다. 
저자가 책을 통해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대면하는 삶, 연대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공부깨나 했다는 학자들이 참 많은 세상인데, 저런 이야기를 하게 하는 공부라면 참 가치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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