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이 학교를 마치는 순간 공부가 끝이 되어서는 안될텐데, 계속해서 공부와 독서를 가이드해줄 스승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독서의 스승이 계신데, 얼마전 그 분이 페북에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올리셨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신 서문에 반하여 그날로 당장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저자인 박노자 선생님은 한국학을 전공한 러시아인이었는데, 한국으로 귀화하여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칼럼으로 이 분의 글을 접한 적은 종종 있었으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 역시 한겨레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주제별로 배열해 엮은 것이긴 하다.
책이 많이 무겁다. 경쟁과 착취를 통한 극단적 이윤추구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세상이 우리들을 어떻게 비인간화시키고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예리하게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논조를 가진 책들이 많이 있으나, 저자의 글은 다른 이들의 글에서는 얻기 힘든 독특한 통찰을 준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저자가 귀화한 외국인으로서 한국사회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서 내가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번도 미심쩍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전제, 문화, 관습 중에서 불합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한국을 '병영국가'라고 보는 인식에 매우 공감하게 된다.
둘째로, 저자가 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라 소비에트 사회를 배우고 경험했으며 여전히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고 사는 사회주의자라는 점 역시 그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통찰의 원천인 듯 싶다.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불편하게 읽히는 지점도 꽤 있다. 저자가 과연 사회주의의 공과 과를 공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의문이 드는 지점이 꽤 있다. 저자가 스탈린주의를 왜곡된 사회주의로 보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 속의 사회주의가 대부분 결국은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일당독재로 흘러가며 인민들의 사상의 자유를 속박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수없이 숙청했던 현실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가차없는 비판에 비해서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못 보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저자에게도 그 안에서 태어나 자라 사회주의의 모순을 못 보는 지점도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사회주의 이상이 온전히 실현된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 혁명에 있어서의 폭력의 불가피성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도 꽤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속물적 이념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깨우는 예언자로서 박노자의 글은 지속적으로 읽을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글의 내용에서도 배우는 게 많지만, 자본주의가 교조적으로 추앙받는 세상에서 용기있게 마이너리티의 길을 가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서도 느끼게 되는 점이 참 많다(책에서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대학교수를 통렬히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비판이 그토록 힘있게 들리는 것은 저자 스스로가 그 지식인의 책무를 엄숙하게 수행하고자 분투하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독서 스승께 감사드린다.
'책이야기 > 일반 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년이 온다>: 2014년 최고의 소설! (0) | 2015.04.14 |
---|---|
<화폐전쟁>: 음모론과 중국 패권주의의 씁쓸한 뒷맛~ (0) | 2015.04.10 |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 과시용 운동이 아닌 생존을 위한 운동제안!! (0) | 2015.03.24 |
<단속사회>: 고립과 과잉접속이 혼재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예리한 분석!! (0) | 2015.02.19 |
<폭력국가>: 빈곤을 끝내려면 폭력을 끝내야 한다!! (0) | 201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