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이학사

 

철학을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생겨, 쓸만한 서양철학사 책을 찾아 한동안 여러 서점과 도서관의 철학 코너를 뒤지고 돌아다녔습니다.
고된 리서치와 발품 끝에 선정한 서양철학사 원픽 도서는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입니다.

공저자인 군나르 시르베크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이 책은 이들이 일반 대학생을 위한 교양 철학 교재로 쓴 책입니다.
입문서라면 비전공자가 조력자 없이 텍스트만 읽고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철학 문외한도 정신줄만 단단히 붙잡고 읽으면 이해 못할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있습니다.
대가의 쉽고 간결한 설명에 여러번 감탄하며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책입니다.
벽돌책 단권 분량의 서양철학사 중에서 가독성은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시대별 분량 배분도 알맞고, 현대철학에서 유럽과 영미철학의 분량 배분도 적당합니다. 또한 그 어떤 서양철학사 책보다 연관학문들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철학 입문서로서 여러 면에서 균형과 적절함을 보여주는 흠잡을 데 없는 책입니다.

한 블로거가 우스갯소리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인지도'라고 하더군요.
철학비전공자가 이 정도 볼륨의 서양철학사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테니 이왕이면 러셀이나 렘프레히트, 힐쉬베르거 등을 읽는게 어디 가서 생색내기 더 좋지 않겠냐는 거지요.(ㅋㅋㅋ)
독서의 목적이 어디 가서 젠체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신경쓸게 없는 단점이 되겠네요.^^
이 책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이 책이 앞서 언급한 유명한 서양철학사 책들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하나 하자면, 이 유일한 단점은 10년 내에 사라질 것입니다. 이 책은 향후 10년 이내에 렘프레히트, 또는 스텀프의 책을 끌어내리고 입문서의 왕좌에 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러셀의 책은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많이 받고 있지만 이미 하나의 인문학 고전이자 브랜드가 되어 있으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일독의 유익도 상당했지만, 다 읽었을 때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다섯번 정도는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대부분의 인문학의 토대가 되는 학문입니다.
관심분야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쌓을 목표로 철학에 도전하기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옥명호, 옐로브릭

최근 여러 사상가들은 인간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몸에 각인된 좋은 습관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진정한 사랑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습관에서 나온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는 많지만, 자녀를 위해 십년 이상 매일 밤 책을 읽어준 부모는 흔치 않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좋은 아빠됨을 고민하던 때 읽어서인지 울림이 매우 큰 책이었다.
저자는 원양어선 선원이었던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랐다. 먼 바다에서 돌아와 아들에게 책 한권을 건네고 간 '부재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마음 짠하게 다가왔다. 
보통은 자신이 경험한 부재를 그것을 대물림하는 핑계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하는 아버지를 경험 못 해서 자녀와 어떻게 함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저자는 매일밤 책읽기를 통해 자녀들에게 '함께 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묵묵히 실천했다. 야근 많은 고단한 편집자의 삶이 얼마든지 부재의 명분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심지어 출장을 가면서도 미리 책읽기를 녹음해서 남겨두고 간 저자의 성실함이 참 놀랍다. 아이들은 녹음된 아빠 목소리를 듣다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책을 읽어주면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된다느니 하면서 부모의 욕심을 자극하는 말들이 아니어서 참 좋았다.
함께 함을 실천하는 '사랑의 책읽기'냐 공부 잘 하는 자녀를 만들려는 '욕망의 책읽기'냐에 따라, 외형은 같아보이는 실천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 올 것이다. 
후자는 결국 자기 욕망을 위한 제사이며 그 욕망에 시달리는 자녀는 불행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은 '책읽기'라는 컨텐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읽기가 아닌 무엇이어도 좋다. 자녀와 함께 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삶의 습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부재의 핑계와 명분이 넘쳐나는 아빠들이 꼭 귀기울여 들어야 할 메시지다.
그래서 제목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밤에 아들에게 책읽어주기를 실천한지 두 주가 지났다.
워낙에 잠 자는 걸 싫어했던 아들은 아빠가 책을 읽어주니 그만큼 잠을 미룰 수 있어 신났다.
이 녀석이 책을 듣다가 스르르 잠드는 모습을 과연 주님 오시기 전에 볼 수 있을지...
책을 읽어줄수록 점점 더 흥분하여 불을 끄고나서도 한참을 더 떠들다가 잔다. 삶이 더 피곤해졌다.
고되고 힘들지만 아들과 나 둘 다에게 습관이 되도록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언젠간 아빠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이 녀석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나이가 될 것이다. 
그 때 나를 함께 있으려 꾸준히 노력했던 아빠로, 성실히 사랑하려 노력했던 아빠로 기억해주길 바래본다.

 

 

Posted by S. J. Hong
,


<처음 읽는 독일현대철학>, 철학아카데미, 동녘

앤터니 티슬턴의 <두 지평> 스터디모임을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독일현대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할 때 읽을 입문서로 제격이다.
맑스, 프로이트, 니체, 후설, 로자 룩셈부르크,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가다머, 하버마스, 악셀 호네트를 다루고 있다. 
각 사상가들을 전공한 국내학자들이 입문자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알기 쉽게 써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 한나 아렌트를 다룬 부분이 크게 유익했다.
특히 로자 파트에서 '혁명에 있어서 대중은 어떻게 능동적 주체가 되어가는가'를 다룬 부분은 복음주의학생운동에서의 학생자발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Posted by S. J. Hong
,


<부들부들 청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후마니타스


요 몇년새 청년에 대한 책들이 참 많이도 나왔다. 
아무리 그래봤자 청년들의 현실은 여전히 고되고 빈한한데, 청년담론으로 돈 버는 이들마저 대부분 청년이 아닌 현실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역시 최근 쏟아져 나온 청년에 대한 수많은 책 중 한 권이지만, 그간 청년담론에서 소외되어 온 고졸, 전문대졸, 지방거주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려 한 점이 이목을 끈다.
이생망, 똥통, 사축, 찍퇴, 청년 팔이, 쌍봉형 가난, 지옥비, 월 3백, ㅇㅈ, 다시 청년... 1부에서 한국 사회의 청년을 이야기하며 이 책이 제시하는 키워드들이다.
가독성 높은 쉬운 문체의 얇은 책이지만, 마음이 아파 책장이 쉬이 안 넘어간다. 
2부에서는 청년들이 정치를 해법으로 변화를 만들어낸 외국 사례들(일본, 타이완, 스페인, 독일)을 들고 있는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3부는 한국의 청년 정치의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저자들은 결국 청년의 정치 참여를 중요한 해법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투표 참여 정도를 넘어서 정치 영역에서 청년의 지분을 만들어내는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 말이다.
청년들의 진입장벽이 너무도 높은 한국정치판의 현실이 주는 암담함과 2017년 촛불에서 본 한줄기 희망이 교차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청년들도, 청년의 현실을 고민하는 이들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Posted by S. J. Hong
,


<언리더십>, 닐스 플레깅, 흐름출판


<언리더십>이 말하는 좋은 조직은 중앙집권적/위계적 조직이 아닌 현장중심적/수평적 조직입니다. 
경영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조직이 더 옳고 건전할 뿐만 아니라, 또한 더 효율적이고 성공적이라고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합니다.
저는 평소 수평적 조직이 더 건전하고 좋은 조직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조직이 더 효율적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수평적인 조직이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 면에서도 더 좋은 조직임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언리더십>은 이러한 조직을 만드는 12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원칙들 사이에 서로 겹치는 내용도 많아 후반부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감이 다소 있지만, 리더십에 대한 독자의 기존 관념들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초중반부의 힘은 매우 강력합니다. 
저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경영의 종말'이라 불릴만한 이 책의 핵심주장은 실제로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리더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되니 패러다임 전환은 확실히 하게 해주는 책이 분명합니다.^^;
물론 리더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화와 변명으로 이 책의 내용을 잘못 적용하면 안 되겠지만, 이 책의 기본적인 통찰은 매우 유효하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리더는 스스로 답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답은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 리더입니다. 
현장에 있는 팀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이 잘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리더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에 좋은 나침반과도 같은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참 감사합니다.
읽고 ‘맞다, 그러하다’ 맞장구치는 것을 넘어, 진짜 그런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Posted by S. J. Hong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박찬국, 21세기북스

저자 박찬국은 하이데거에 대해 알기 쉽게 가르치는 것으로 정평이 난 학자입니다.
최근 출간된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동저자의 이전 저서인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http://warinlife79.tistory.com/264와 굳이 두 권 모두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내용이 겹칩니다.
하이데거 입문서로는 국내에 이 저자의 책만한 것을 찾기 힘드니 둘 사이의 차이점을 기준으로 어느 책을 읽을지 정하면 될 듯 합니다.
하이데거의 사상을 그의 생애와의 연관성 속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가 낫겠고, 사상만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가 더 낫습니다.


Posted by S. J. Hong
,


<생각의 시대>, 김용규, 살림

저자에 따르면, 기원전 8~5세기 그리스에서 이후 서양문명의 토대를 놓은 다섯가지 '생각의 도구' -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 - 들이 출현했다.
저자는 정보와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것을 종합하여 활용할 능력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은 우리 시대야말로 이 생각의 도구들에 다시 주목하고 활용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책의 대부분은 다섯가지 생각의 도구들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야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고, 아들 세대를 생각하며 읽으니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얻게 된 유익한 독서였다.
책은 두껍지만 쉽고 재밌게 술술 읽힌다.


재밌었던 포인트 두 가지.

1. 저자는 '원리' 파트에서 가추법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추론능력이 새로운 생각을 얻은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그러면서 추론능력향상을 위한 훈련법 몇가지를 소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추리소설 읽기'였다.
추리소설에 파묻혀 살았던 중고등학생 시절이 나의 추론능력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추론한다. (엉?)
암튼 추론능력향상하고 싶은 분들 연락하시라. 
누군가를 추리소설의 세계로 인도할 소스는 무궁무진하다.ㅋㅋ


2. 저자는 '문장' 파트에서 '문장의 구조가 정신의 구조를 만든다'며 다양한 형식의 문장을 연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꽃게 도식'이라 부르는 문장구조파악 및 구성훈련을 제안하는데 이게 PBS의 '구문분석'과 정확히 똑같다.
그동안 우리는 강화체 PBS를 통해 생각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ㅋㅋ

Posted by S. J. Hong
,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박찬국, 동녘

 

시니어간사님들과 앤터니 티슬턴의 <두 지평>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첫 모임을 마치고 난 후에 확실히 깨달은 것은, <두 지평>이 다루는 주요사상가 4-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 - 에 대한 전이해 없이는 저와 이 책 사이에서 지평융합(?)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이데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하이데거를 이 정도 노력으로 제대로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입문 수준의 이해에라도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 책 저 책 더듬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만난 좋은 책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입니다.

저자 박찬국 교수는 국내에서 하이데거를 가장 명료하게 가르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학자입니다.

그가 하이데거의 사상을 더 잘 풀어낸 다른 책도 있지만, 하이데거의 사상만이 아니라 생애와 주요사건도 함께 다룬 책을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생애를 전기와 나치 참여 시기, 그리고 후기로 나누어 간단히 다루고, 각 시기별로 나타난 그의 사상의 요체를 대표적인 저작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하이데거도 하이데거지만, 오히려 저자인 박찬국 교수에게 감탄했습니다.

무언가를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하이데거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해석 역시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하겠지만, 그 난해한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토록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저자의 내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워낙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저도 주워들은 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이해를 유보(?)한 채 머릿속에 남아 있던 주워들은 말의 파편들을 서로 꿰어주고 하이데거 사상의 큰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이데거가 현대철학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철학자로 평가받는 이유를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이데거를 통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유익뿐만 아니라, 의외로 신앙에 대한 자극과 통찰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이데거는 철저히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철학을 전개하지만, 그의 사상에는 기독교사상과 조응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하이데거의 사유 역시 그보다 앞선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는데, 하이데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근현대철학자로 보통 니체, 키에르케고르, 후설을 꼽습니다.

이 중 키에르케고르의 영향력이 가장 덜 언급되지만, 그의 사유 곳곳에는 생각보다 키에르케고르의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근본기분으로서의 불안’, ‘죽음에의 선구’, ‘존재의 개현등의 아이디어는 키에르케고르의 핵심사상인 절대자 앞에서의 실존적 결단의 탈신앙적 버전이라 할만치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하이데거를 공부하다가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존재가 되어갈 것인가등의 우리 신앙의 묵직한 질문들에 대해서, 저는 하이데거의 사유를 기독교적으로 전유할 때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유익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불트만이 했던 것이 그 작업이긴 하지만, 보수 기독교는 불트만의 사상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복음주의권에서도 폭넓게 수용될 만한 새로운 버전이 나타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는 참으로 위대한 사상가이지만, 어두운 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긴 나치 참여 전력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있고 팩트에 대해서도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초기에는 그가 히틀러와 나치의 실체를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동조하다가 나치의 실상을 알게 된 후 점차 소극적 동조 내지 소극적 비판으로 돌아선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이데거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이로 인해 그는 나치에게 감시당했고 2차대전 말 참호공사에 동원되는 등의 탄압을 받았다고 합니다(이 주장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나치 초기부터 다른 많은 지성인들은 이미 나치의 문제점을 깨닫고 반대했는데 당대 최고의 지성이 한 때 나치에 적극 협력하여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 동참하게 만들었다는 점, 나치의 실상을 깨닫고 나서도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침묵에 가까운 소극적 태도에 머물렀다는 점, 죽는 날까지 명확한 사죄나 참회 없이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것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나치 협력 시기의 하이데거가 철학하는 민족으로서의 독일인의 우월성과, 그에 따른 사명과 책임을 믿었다는 점이 그가 나치에 참여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하나의 이유였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를 헛똑똑이로 전락시킨 것이 철학하는 자신, 그리고 철학해온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이었음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평생 겸손히 배우며 죽는 날까지 많이 안다 현명하다 생각지 않기를,

깨어 기도하며 눈을 부릅뜨고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살기를,

그래서 부지중에라도 악에 힘을 보태는 삶 살지 않기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망해봅니다.

Posted by S. J. Hong
,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한겨레출판사

 

얼마 전,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주례를 서게 되면서 부담이 많았다.
주례를 준비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서 이 책 저 책 읽어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장강명의 <5년 만에 신혼여행>이었다.

장강명의 소설을 참 좋아하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개인적 삶, 가령 결혼 스토리라던지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 등이 궁금했고, 결혼에 대한 그의 생각도 알고 싶었다.

읽어보니 결혼에 대해 그닥 심오한 사상을 드러낸 책은 아니었지만, 결혼에 대한 에세이로나 여행에세이로나 편하게 술술 읽히는 괜찮은 책이었다.

이 책이 장강명 소설의 애독자들에게 주는 깨알 같지만 귀중한 정보는 그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이들 부부의 결혼 전 상황을 글재료로 하여 쓴 작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이 책을 읽거나, 이 책을 읽고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 한층 더 재밌는 독서를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Posted by S. J. Hong
,


최근 저는 영어공부를 재밌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어로 된 소설을 읽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뒷내용이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어야 중간에 포기하지 않겠다 싶어서 이왕이면 추리소설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검색하다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시건(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 time)>을 알게 되었습니다.

쉬운 영어로 된 짧은 추리소설이라 영어공부에 좋다는 평이더군요.

영어책과 한글책을 각각 한권씩 빌려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책을 읽다가 의미가 헷갈리는 문장이 있으면 한글책을 참고하는 방식입니다.

과연 소문대로, 저같은 영어 초급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쉬운 영어로 되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쉬운 영어로 쓰여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반트 증후군을 가진 자폐청소년인 크리스토퍼의 관점에서 쓰여진 1인칭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상한 이해력과 암기력을 가지고 있어서 과학과 수학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늘어놓는 부분이 곳곳에 나오는데, 이 부분에는 전문용어와 어려운 표현들이 다소 나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그 외 일상의 대화에서는 아주 쉽고 간단한 언어를 구사합니다.

그의 세상에 대한 이해 역시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크리스토퍼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쉽고 간단한 영어로 되어 있어 읽고 이해하기 편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통적 의미의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소개하는 글들을 읽고, 천재적 능력을 가진 자폐아가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인 걸로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가 대단한 추리를 요하는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사건을 통해 크리스토퍼가 하게 된 모험이 그를 어떻게 성장하도록 이끌었는지를 잔잔하게 사실적으로 그린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문단에서는 2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 할 정도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오락성보다는 예술성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S. J. H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