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박찬국, 동녘

 

시니어간사님들과 앤터니 티슬턴의 <두 지평>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첫 모임을 마치고 난 후에 확실히 깨달은 것은, <두 지평>이 다루는 주요사상가 4-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 - 에 대한 전이해 없이는 저와 이 책 사이에서 지평융합(?)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이데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하이데거를 이 정도 노력으로 제대로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입문 수준의 이해에라도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 책 저 책 더듬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만난 좋은 책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입니다.

저자 박찬국 교수는 국내에서 하이데거를 가장 명료하게 가르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학자입니다.

그가 하이데거의 사상을 더 잘 풀어낸 다른 책도 있지만, 하이데거의 사상만이 아니라 생애와 주요사건도 함께 다룬 책을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생애를 전기와 나치 참여 시기, 그리고 후기로 나누어 간단히 다루고, 각 시기별로 나타난 그의 사상의 요체를 대표적인 저작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하이데거도 하이데거지만, 오히려 저자인 박찬국 교수에게 감탄했습니다.

무언가를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하이데거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해석 역시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하겠지만, 그 난해한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토록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저자의 내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워낙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저도 주워들은 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이해를 유보(?)한 채 머릿속에 남아 있던 주워들은 말의 파편들을 서로 꿰어주고 하이데거 사상의 큰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이데거가 현대철학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철학자로 평가받는 이유를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이데거를 통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유익뿐만 아니라, 의외로 신앙에 대한 자극과 통찰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이데거는 철저히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철학을 전개하지만, 그의 사상에는 기독교사상과 조응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하이데거의 사유 역시 그보다 앞선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는데, 하이데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근현대철학자로 보통 니체, 키에르케고르, 후설을 꼽습니다.

이 중 키에르케고르의 영향력이 가장 덜 언급되지만, 그의 사유 곳곳에는 생각보다 키에르케고르의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근본기분으로서의 불안’, ‘죽음에의 선구’, ‘존재의 개현등의 아이디어는 키에르케고르의 핵심사상인 절대자 앞에서의 실존적 결단의 탈신앙적 버전이라 할만치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하이데거를 공부하다가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존재가 되어갈 것인가등의 우리 신앙의 묵직한 질문들에 대해서, 저는 하이데거의 사유를 기독교적으로 전유할 때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유익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불트만이 했던 것이 그 작업이긴 하지만, 보수 기독교는 불트만의 사상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복음주의권에서도 폭넓게 수용될 만한 새로운 버전이 나타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는 참으로 위대한 사상가이지만, 어두운 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긴 나치 참여 전력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있고 팩트에 대해서도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초기에는 그가 히틀러와 나치의 실체를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동조하다가 나치의 실상을 알게 된 후 점차 소극적 동조 내지 소극적 비판으로 돌아선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이데거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이로 인해 그는 나치에게 감시당했고 2차대전 말 참호공사에 동원되는 등의 탄압을 받았다고 합니다(이 주장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나치 초기부터 다른 많은 지성인들은 이미 나치의 문제점을 깨닫고 반대했는데 당대 최고의 지성이 한 때 나치에 적극 협력하여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 동참하게 만들었다는 점, 나치의 실상을 깨닫고 나서도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침묵에 가까운 소극적 태도에 머물렀다는 점, 죽는 날까지 명확한 사죄나 참회 없이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한 것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나치 협력 시기의 하이데거가 철학하는 민족으로서의 독일인의 우월성과, 그에 따른 사명과 책임을 믿었다는 점이 그가 나치에 참여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하나의 이유였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를 헛똑똑이로 전락시킨 것이 철학하는 자신, 그리고 철학해온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이었음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평생 겸손히 배우며 죽는 날까지 많이 안다 현명하다 생각지 않기를,

깨어 기도하며 눈을 부릅뜨고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살기를,

그래서 부지중에라도 악에 힘을 보태는 삶 살지 않기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망해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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