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2, 3>, 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드디어 <모방범>을 완주했다.

<모방범>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의 필생의 역작으로서, '추리소설은 <모방범><모방범> 아닌 것으로 나뉜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독자들의 호들갑스러운 극찬이 쏟아지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경우가 워낙 많아 내심 염려도 있었다.

각 권 모두 오백 페이지가 넘는 책 세 권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다 읽은 후의 감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천오백페이지에 쏟아부은 나의 시간과 노력은 어쩌나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이 작품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64>http://warinlife79.tistory.com/244와 더불어 내 인생 최고의 추리소설 자리에 성큼 올라섰다.

<64>와의 우열은 가리기가 정말 쉽지 않은 듯 하다.

<64>도 결코 볼륨이 작은 책은 아니지만, <모방범>은 그보다 거의 세배에 가까운 분량이다.

그러므로 대작이 주는 묵직한 감동과 여운이라는 면에서는 <모방범>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볼륨 대비 재미의 양, 그러니까 소위 '가성비'의 관점에서 보면 <64>의 승리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당신이 추리소설에 흥미가 있는 편이라면, 반드시 둘 다 읽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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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요코야마 히데오, 검은숲


요즘 일본 추리소설 삼매경입니다. 얼마전 제 인생 최고 추리소설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http://warinlife79.tistory.com/238가 갱신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악의>가 워낙에 역작이어서 이 순위는 당분간 바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만에 이 책이 <악의>를 밀어내고 제 마음 속 추리소설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입니다.

소설제목인 64는 미제사건으로 남아버린 쇼와64년의 여아유괴살해사건의 사건명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과 부서 간의 갈등, 그리고 언론을 비롯한 경찰 외부 조직과의 긴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루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범죄사건의 미스테리를 밝혀가는 요소 못지 않게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에, ‘경찰소설의 대가'로 불립니다.

<64>는 그가 잘 하는 이것을 가장 잘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4분의 3 정도가 경찰조직 내외부의 갈등과 그 안에서의 주인공의 고뇌를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서 마치 '미생 중년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로 출간해도 그 자체로 완성도 높고 재밌는 작품일 정도인데, 거기서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이 책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이렇게 소설이 마무리되어 가는구나 싶을 때쯤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터지며 그것이 64사건과 연결되어 결국 과거와 현재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는 소설의 마지막 4분의 1은 정말 압권입니다.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64>에 관련된 여러 글을 검색하고 드라마, 영화 등을 찾아보며 한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64앓이'라 부를 정도로, 저 같이 <64>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제 인생 최고의 추리소설 <64>를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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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요코하마 히데오, 들녘

 

존경받는 고위 경찰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수했다. 치매에 걸린 아내의 애원에 의한 촉탁살인이다.

그런데 범행 후 자수하기까지 이틀의 행적이 묘연하다.

그 이틀의 행적을 밝히려는 자들과 묻어두려는 자들 사이의 대결이 <사라진 이틀>을 이루는 스토리라인이다.

이런 단순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은, 결국 그 이틀의 전모가 드러날 때 독자에게 충격 또는 감동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납득할 만한가에 성패가 달려있다.

오직 사라진 이틀에 대한 것으로만 소설 전체를 끌고 가기에, 읽다보면 심지어 작가가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마무리를 잘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지...'

그럼 결말은 어떨까?

이 소설은 나오키상의 결선까지 올라갔다가 낙선했는데, 평론가들이 제시한 낙선사유가 '결말의 현실성 결여'였다고 한다.

이 낙선사유는 이후 평론가와 대중 사이의 논쟁으로까지 번져가기도 했으나, 이 소설은 그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10'에서 1위에 올라 작품성 논란을 불식시켰다(나오키 의문의 1).

이 일로 저자가 '나오키상과 결별선언'까지 했다고 하니, 이 분도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쓰고 한성깔한다고 읽는다...^^;)한 것 같다.

나 역시 나오키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결말은 나에게 매우 만족스러웠다. 충분히 수작이라 할만하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푹 빠져 있던 내게, <사라진 이틀>은 요코하마 히데오라는 이름은 내 뇌리에 분명하게 각인시킨 소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요코하마 히데오의 대표작<64>로 주저없이 내달린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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