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 오찬호가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한국인 저자가 쓴, 비슷한 주제의 책으로는 서보명의 <대학의 몰락>이 있는데, 접근방식이 달라서 둘 다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될 것입니다.

<대학의 몰락>은 오늘날의 대학이 자본에 철저히 포섭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참된 공부란 무엇이며 대학의 본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논하는 다소 철학적인 책입니다. 책의 원래 목적이 현실 고발이 아닌데다가, 저자가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진격의 대학교>는 현재 국내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저자의 직접경험과,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언론에 나타난 사례와 각종 통계자료들을 기반으로 하여 자본에 집어삼켜진 대학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는 책입니다.

 

책이 보여주는 현실이 너무 암울하여, 읽는 내내 무거운 바위가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런 답답함을 느낀 건, <대한민국 부모> 이후 오랜만입니다. 그러고보니 두 책 모두 교육에 관한 책입니다. 책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암유발도서라 할만치 읽는 이의 마음이 짓눌리니 이 자체가 비극입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 있지만, 그래도 대학생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선교단체 간사들은 오늘날 대학생들이 맞닥뜨린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 대안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태도가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면서, 대안을 말하는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대학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역할을 100% 이상 해낸 책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혹시 <88만원 세대>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석훈의 <88만원세대>20대들의 연대와 저항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획된 책인데, 오히려 20대 독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각자도생을 모색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책도 워낙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책이다보니 책이 의도한 것과 반대방향으로 독자들이 질주하게 만들 위험성도 있어 보입니다. 가령, 대학이 영어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2장을 읽으며, 대학의 영어몰입이 진정한 배움과 소통을 방해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영어를 잘 해야 살아남는다. 당장 영어공부하자는 결론으로 향하는 것 같은 일 말입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2장을 읽으며 우리 아들 영어 어쩌지하며 잠시 멍 때리다가 화들짝 놀란 무려 두살배기아들 아빠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얄팍한 우리가 문제입니다.

결국 이런 책을 오독하지 않을 힘은 지성이나 이해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좆아 살아가는 삶의 내공과 진정성에 달려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읽으면 역주행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함께 읽읍시다.

대학마저 집어삼킨 자본의 진격은 거침없지만, 모여앉아 읽고 고민하는 작은 무리를 통해 변화는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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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일본의 한 사회학자가 일본 젊은이에 대해 쓴 책이다. 
일본에서 2년만에 15만부가 팔리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해 이른바 '사토리세대(득도세대)'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사토리세대 현상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이 가진 작은 경제력에 만족하고, 또한 자신이 속한 작은 준거집단 속에서 충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것조차 부모세대의 경제적 지원이 젊은 세대의 빈곤을 어느 정도 상쇄해주기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이 있는데, 10-20년 후 부모들의 경제력이 감소하는 시점에 이 세대 또한 심각한 빈곤의 문제를 겪게 될 것으로 본다. 
즉, 그들의 행복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단지 유보된 불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토리세대를 낳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래 일본은 ‘느슨한 계급사회’의 모습을 띌 것이라 전망한다.
그렇다고 우석훈처럼 ‘젊은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비장한 논조는 아니며, 그냥 그렇다고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여러모로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내셔널리즘과 젊은이’에 대해 논하는 3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과거 일본은 내셔널리즘을 활용하여 수많은 자국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들을 전쟁의 참상 속으로 몰아넣은 전범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국가를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통계에 의하면, 일본 젊은이들 중 전쟁이 나면 도망치겠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일본의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모습에 개탄했겠지만, 저자는 이처럼 일본이 망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은 젊은이들의 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젊은이들이 적다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니 적어도 태도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저자에게서 내셔널리즘을 향한 강한 냉소가 느껴진다.
더 이상 내셔널리즘이 먹혀들지 않은 젊은이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을 위해 해주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애국심에 호소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경고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젊은이들을 위하지 않을 때,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런 면에서 이 책에 나오는 사토리세대라는 개념을 한국의 보수언론이 아전인수 격으로 써먹은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최근 조선일보는 특집기사를 통해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소개하며 '달관세대'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규정하려 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도 이십대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네. 왜 그런지 알아보자'는 것과 '거봐. 행복은 마음 속에 있는거야. 구조타령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너만의 행복을 찾아봐'라고 훈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사회학적 접근'이지만, 후자는 '개수작' 또는 '저열한 꼰대질'이다.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책이 바다 건너에서 이런 개수작에 이용된 것을 알면 얼마나 씁쓸할까 싶다.


이 책에는,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위한 거룩한 전쟁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생존과 안전을 도모했던 전시 일본의 기성세대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민족언론을 자처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언론으로 돌아섬으로서 그들의 애국심이 얼마나 알량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었던 조선일보 아니었나. 
그랬던 자들이 나중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애국심이데올로기를 얼마나 지겹도록 우려먹었는가. 
‘산업화의 역군’ 어쩌고 하며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선전도구로 말이다.

그들을 향해 이 책은 ‘더 이상 애국심에 호소해서 젊은이들 이용해먹을 생각하지 마라. 더 이상 일본을 위한 젊은이도, 대한민국을 위한 젊은이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책을 가지고 달관세대 어쩌고 떠들다니, 이건 대책없는 난독증인 걸까? 아니면 이해력 부족을 가장한 뻔뻔함인 걸까?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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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펼쳐들었다가 책 앞부분에 오찬호 씨가 쓴 해제를 읽고 반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 책은 해체에서 멈추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갈아탔습니다.
(필꽃힘 갈아탐 성공적)


20대 보수화의 원인에 대한 여러 진단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만큼 이 문제에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사회시스템으로부터 가장 철저히 홀대받는 세대가 어쩌다 그 시스템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있는가?"
부모의 정치성향의 대물림, 편향된 언론지형 등에 주목하는 여러 정치적 접근들이 있지만, 저는 이 책의 분석이 20대 보수화의 핵심을 가장 잘 짚어내었다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중심논지가 완전히 새롭고 참신한 주장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통찰을 주는 책입니다.
앞으로 이곳 저곳에서 이 책을 무척 많이 언급하게 될 듯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제 소감 몇 마디 읽고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며 관심을 접을까봐 그만 쓰려 합니다.
정말 강추합니다. 
특히 20대라면 정말 꼭 읽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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