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하는 저자로 알려진 강준만은 또한 지독한 자료수집광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쓰면서도 대체로 내용이 충실한 책들을 써낼 수 있는 비결을 저는 자료수집광으로서의 그의 면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던지, 그 주제에 관련된 사건과 인물에 대해 방대한 팩트(?)를 체계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강준만의 책이 읽을 가치와 소장가치를 얻는 지점입니다.


<입시전쟁 잔혹사> 역시 이러한 강준만식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무려 조선시대부터 2008년까지의 입시전쟁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입신양명'이라는 출세지향적 가치관이 강하게 작동하는 유교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토양에서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 등의 비극을 겪으며 태어난 한국사회는 공동체의식이 미천하고, 지배층에 편입되려는 욕망이 각개약진의 형태로 나타나는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영역이 대학입시입니다. 소위 SKY대학에 입성하여 지배계급을 획득/유지하려는 경쟁은 한국사회를 국민 전체가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하려는 역대정부들의 교육정책이 모두 실패한 것은 이 문제를 입시정책의 변화만으로 단기에 해결해보려는 조급함과 좁은 안목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입시정책의 변화는 대부분 그 정책에 담긴 좋은 의도를 무색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쟁을 유발해 왔습니다. 따라서 입시정책의 잦은 변화는 학생과 학부모의 피로도만 증가시켰을 뿐,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입시는 계급전쟁’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건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학벌시스템을 좁게는 서울대 중심, 조금 더 넓게는 SKY 중심의 1극체제로 정의하며, 이것을 다극화하는 것만이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본질적 해법이라 주장합니다. 거기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제안은 SKY대학의 정원감축(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소수정예화’)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한국사회의 공고한 학벌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명문대학의 다극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제안이 정말 그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여 나름 실제적인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는 학벌사회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도 비판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주의자들도 인정사정없이 비판합니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학벌사회에 대한 거부가 너무 강해서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를 ‘진보적 근본주의’라고 비판합니다. 


“학벌주의 완화에 대해 ‘하향평준화’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주문을 열심히 외워대는 사람들이 한국의 전형적인 엘리트로 행세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슬픈 건 변화를 염원하는 진보적 근본주의자들이 역사의 구조를 뛰어넘어 이론적 근본에 집착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의 동맹세력으로 기능하면서 변화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 <입시전쟁 잔혹사>, p321 


저자의 입장은, 변화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을 고수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실현가능한 변화를 조금씩 일으키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학벌폐지’보다는 ‘학벌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학벌폐지론자들을 진보적 근본주의자라고까지 혹평한 것은 다소 지나치다고 느껴지지만, 이상과 현실을 모두 감안하여 변화의 노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는 매우 공감하게 됩니다.

저도 제가 속한 단체를 통해 대학생들과 대학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변화를 바라는 이에게 필요한 좋은 태도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어 참 유익했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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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이 책의 의의를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 
먼저, 한 저자에 의해 1945년부터 2009년까지의 역사를 통일성 있게 정리한 거의 유일한 작업이라는 것을 들 수 있겠다(총 23권). 이것은 지독한 자료수집광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라도 그간 축적해 온 자료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을 방대한 작업이다. 
엄밀하게 따져볼 때에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저자가 독자들에게 현대사를 소개할 가장 권위있는 적임자이지는 않다. 그러나 저자는 어설프게 역사학의 권위자 행세를 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전공분야를 십분 활용하여 이 시리즈만의 독특한 차별성을 만들어내었다. 
가령, 언론 보도나 관련자들의 공적 증언, 통계 자료 등을 직접 인용하는 것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방법으로 채택한 것을 들 수 있다. 인물비평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저자답게 자료 사이사이를 예리한 분석과 비평으로 채우고 있긴 하지만, 책의 주된 서술방식은 자료에 대한 직접인용이다. 인용이 과도하다 싶을만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컴플레인이 있었던 것인지, 시리즈 중간쯤의 한 서문에서 객관성을 위해 인용을 많이 나열하는 방식을 채택했으니 양해해달라는 해명을 덧붙이고 있을 정도다. 
그것을 통해 저자는 해석 이전에 먼저 역사적인 팩트를 제시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오늘날 대중 일반의 한국 현대사 이해를 살펴보면 대체로 “팩트는 부실, 해석은 과잉”이다. 부실한 근거 위에 감정적이고 편향적인 해석의 언어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독자들이 1945년부터 2009년까지의 역사적 팩트의 기본 골격을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가급적 공정하게 쓰려 한 노력도 돋보인다. 가령, 2000년대 편에서 나타나는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이 냉정하고 철저하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의의를 들자면, 시리즈 내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서의 '언론의 역할과 영향'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다. 이것은 신문방송학 전공자인 저자가 오히려 다른 역사학자들에 비해 가지는 특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정치/사회 분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책들과 달리 어림잡아 30%에 해당하는 꽤 많은 분량을 대중문화 분석에 할애하고 있다는 것도 이 시리즈를 다른 역사연구서들과 구별짓게 해주는 독특한 차별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완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으며 소장가치도 매우 높다. 분량은 많지만 술술 읽힌다.
벌써부터 “5.16혁명, 5.18폭동” 운운하는 표현들이 방송을 타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대학생들에게 이번 겨울방학에 함께 모여 스터디할 책으로 강추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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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강남 좌파'라는 화두를 처음 제기했던 장본인인 강준만이다.
그런데 용어의 저작권(?)을 가진 원조가 쓴 강남좌파론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강남 좌파에 대한 비난도 아니며 그렇다고 옹호론도 아니다. 게다가 강남 좌파에 대한 기존의 개념정리 자체를 뒤엎어버린다. 심지어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란다.
이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라는 도발적 주장은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전혀 공통점을 가늠해볼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들만큼이나 혼란스럽다(이들이 모두 강남좌파? 심지어 박근혜까지??!!).

그가 강남 좌파를 말할 때의 '강남'은 지리적인 개념을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엘리트, 부유층,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상징언어이다. 강남 좌파의 ‘좌파’ 역시 이념적으로 반드시 왼쪽으로 분류된다는 뜻이 아니라 - 그것이 위선이든 진정성 있는 것이든 간에 - 다수의 서민대중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태도를 표명하는 것을 뜻하는 상징언어이다. 이 프레임을 받아들인다면 왜 그가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고 주장하는지 비로소 납득할 수 있게 된다.
한국사회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고학력과 거기서 비롯된 상류층 인맥, 그리고 중산층 평균을 훨씬 웃도는 재력으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 이 ‘강남’이라는 상징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에 정확히 들어맞는 인사들이다. 또한 정치인들은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바, 민생을 돌보고 서민경제를 안정시키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게 되는데, 그러할 때에 - 실제로 그들이 취하는 노선이 좌이든 우이든 간에 - 그들은 좌파적 상징언어를 구사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모든 정치인은 자신의 생활양식(강남)과 정치적 슬로건(좌파)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 사이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겠다(물론 각각의 정치인들에게 나타나는 이 괴리의 편차는 매우 크다. 그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 같은 부류로 싸잡아 버리는 것이 저자의 의도는 결코 아니다).

저자는 강남 좌파의 정의를 이와 같이 확대한 후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인들(그의 분류에 따르면, 대부분 강남 좌파들이다)을 하나씩 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의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별 분석(대부분 미래의 유력대권주자)은 책의 본론이라기보다는 부록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출간된 책이므로 저자는 유력대권주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시해주고 그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이 책의 본론이라면 그가 책의 서두에서 강력히 주장했던, ‘한국 정치는 인물 중심의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순된다고 할 수 있겠다.
풍부한 자료제시를 바탕으로 한 강준만 특유의 흥미진진한 글쓰기는 이 책의 매우 큰 강점이다. 고 노무현, 문국현, 조국,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에 대한 그의 흥미진진한 썰(?)풀기는 독자로 하여금 시간 가는줄 모르고 빠져들게 한다.
특히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일부 친노인사들의 과오에 대해 매우 강도높게 비판하는데 새겨들을만한 부분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현실정치의 복잡함을 좀 더 직시하게 된 것도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사실상 그가 부각시키고자 하는 논점은 -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이 -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이념논쟁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엘리트들 간의 밥그릇 싸움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 거칠게 말하자면, 강남 좌파로 불리게끔 만든 좌파 담론 또는 제스처가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을 무슨 심각한 이념 투쟁인 양 포장하는 효과를 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 정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엔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니다. 출세한 사람과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싸움일 뿐이다. 어느 정당 소속이건 다선 의원이 낙선한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물어보라. 어디에서건 “그만 하면 많이 해먹었잖아!”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출세, 입신양명, 인정욕구 충족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엘리트는 모두 ‘강남파’일 수밖에 없다. 강남 좌파에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제한된 정치적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승자 독식 상황에서 이념과 노선은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경쟁 세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정략적 도구의 성격이 강해진다.“  - <강남 좌파> p394

그가 이 책을 통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마지막 장 - chapter11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입시전쟁(강남 좌파는 학벌 좌파) - 에서 드러난다. 그는 정치판에서 우리사회에 만연한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의 병폐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본다.
명문대 인맥을 통해 서로 얽히고 설켜있는 엘리트들이 유력인사에게 줄서기와 줄대기를 통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선거 한판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뒤바뀌니 거기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승패가 갈리고 곧이어 승자와 승자에게 줄선 자들의 권력 독식이 이어진다. 결국 정치가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이 되는 것의 이면에는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몸통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학벌주의를 얼마나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실명을 통한 인물비평으로 이름을 날린 그였지만, '이 사람이 좋으냐 저 사람이 좋으냐'하는 품평보다는 우리의 정치 풍토와 한국 사회의 에토스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 이 책의 의의가 있다 하겠다. 
그의 문제의식은 깊이가 있으며 해법 제시 역시 매우 예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결론이 용두사미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 결론이 틀려서가 아니라 이런 책 한권으로는 꿈적도 하지 않을 뿌리 깊은 학벌주의의 거대한 벽을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로 그 견고한 벽에 작은 균열이라도 일으키려는 시도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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