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삼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과 싸웠던 김용철 변호사와 그를 도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패배는 돈과 권력이 결탁한 한국사회의 도덕적 붕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에 대한민국은 잘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 외엔 리더십도 정치철학도 도덕도 전혀 갖추지 못했던 한 부패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결국 그 단 하나의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이 일련의 사건이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맘몬에게 지배당한 한국 사회는 결국 풍요에 대한 거짓 약속으로 유혹하는 부패한 CEO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북어워드에서 "독자를 가장 열불나게 만드는 책"을 시상한다면 이 책이 1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땀흘려 성실히 일하는 삼성직원들이 이 문제로 인해 비난당하거나 피해를 입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탐욕스럽고 무도덕한 이건희 일가와 그 하수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또한 이 책은 재벌가의 어두운 뒷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분노만이 아니라 뿌리 깊이 병든 세상에 대한 애통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이다.
삼성문제를 도덕이슈로만 다루지 않고 경제이슈로도 설명해내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이 꽤 성실하게 쓰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 한국경제를 위험하게 한다는 무개념 우파와 수구언론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성공적으로 반박한 부분은 매우 통쾌하다(그러나 그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들을 귀없는 자는 결코 듣지 않는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채, 단지 Samsung이 세계적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고, 그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국내 내수경제도 견인해 내고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 간절히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통해 '비자금'과 '족벌경영'으로 요약되는 한국식 재벌시스템이 얼마나 한국사회와 경제를 뿌리깊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가령, 다른 나라보다 한국식 재벌 시스템이 특히 중소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아 경제의 전체적 건강도와 역동성을 잃게 만든다는 지적은 매우 예리하고 정확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사실 이 정도 두께에 이 정도 가격으로 나올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이 조금만 초점를 다르게 하여 계속해서 반복되는 느낌이다. 삼성비리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했다면 중반부를 스킵하고 3부로 넘어가도 될 듯 싶다.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 이라는 제목의 3부는 삼성 문제를 뛰어넘어 한국사회 전체의 청렴도과 투명성 제고을 위한 제언으로 확장한 내용인데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다. 3부는 정독할 가치가 있다. '삼성 바로세우기'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하며 저자의 괴로움과 고민이 그만큼 깊었던 듯 싶다. 그 고민이 꽤 깊이 있는 통찰로 녹아있다.
가령, 등록금문제가 지금처럼 격렬한 이슈가 되기 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삼성비자금 문제를 등록금 문제와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부분은 매우 예언자적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자녀 세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엄숙한 질문과 도전으로 끝맺고 있다. 맘몬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한국사회를 어떻게 다시 되돌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삼성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고민하며 함께 힘을 모아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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