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부들 청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후마니타스


요 몇년새 청년에 대한 책들이 참 많이도 나왔다. 
아무리 그래봤자 청년들의 현실은 여전히 고되고 빈한한데, 청년담론으로 돈 버는 이들마저 대부분 청년이 아닌 현실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역시 최근 쏟아져 나온 청년에 대한 수많은 책 중 한 권이지만, 그간 청년담론에서 소외되어 온 고졸, 전문대졸, 지방거주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려 한 점이 이목을 끈다.
이생망, 똥통, 사축, 찍퇴, 청년 팔이, 쌍봉형 가난, 지옥비, 월 3백, ㅇㅈ, 다시 청년... 1부에서 한국 사회의 청년을 이야기하며 이 책이 제시하는 키워드들이다.
가독성 높은 쉬운 문체의 얇은 책이지만, 마음이 아파 책장이 쉬이 안 넘어간다. 
2부에서는 청년들이 정치를 해법으로 변화를 만들어낸 외국 사례들(일본, 타이완, 스페인, 독일)을 들고 있는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3부는 한국의 청년 정치의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저자들은 결국 청년의 정치 참여를 중요한 해법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투표 참여 정도를 넘어서 정치 영역에서 청년의 지분을 만들어내는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 말이다.
청년들의 진입장벽이 너무도 높은 한국정치판의 현실이 주는 암담함과 2017년 촛불에서 본 한줄기 희망이 교차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청년들도, 청년의 현실을 고민하는 이들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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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트렌드 리포트>, 학원복음화협의회 엮음, IVP


<청년 트렌드 리포트>는 학복협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한국 청년 생활 및 의식 조사'의 결과를 제시하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곁들인 책이다.
2017년 조사는 2012년 조사에 비해 조사대상과 지역을 확대하여 정확성을 높였고, 문항을 늘려 더 다양한 층위의 분석과 진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리포트를 통해서, 그동안 어림잡아 추정으로 이야기해오던 것들에 대해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어 매우 유용했다.
기존의 인식이 데이터로 확증된 것도 있지만,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대해서 의미를 곱씹고 생각을 수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후반부에는 리포트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이 실려 있는데 이 또한 유익하다. 
나는 IVF의 최보연 간사가 쓴 글이 특히 좋았다. 
예리하고 명민한 진단과 분석에 더하여, 한국교회가 귀기울여야 할 쓴소리도 담겨 있고, 청년들을 향한 애정도 느껴지는 아주 훌륭한 글이다.
글쓴이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개성도 담겨있지만 IVF 특유의 관점과 태도가 잘 녹아 있어서, 글쓴이를 가리고 읽었다 해도 IVF간사가 쓴 글임을 알 수 있었을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이런 좋은 관점과 태도를 가진 사역자를 길러낸 IVF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다음 번 조사가 있을 때까지 향후 몇년 동안 곁에 두고 참고할 만한 아주 유용한 책이다.
모든 기독 청년사역자, 관심자에게 추천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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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10>, 우석훈, 새로운현재

 

우석훈의 글을 좋아한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경제학을 하는 그의 학문적 포지션도 좋아하지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 글쓰기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경제학자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경제학에 관한 한 나는 학부 전공자 정도의 입문자이지만, 경제학 쪽에서 가방끈이 나보다 훨씬 긴 사람들 중에 우석훈에 대해 가볍고 경박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을 간혹 본다. 그런 이들은 우석훈의 학문적 수준에 대해서도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생각엔 학자적 소양으로 볼 때도 그런 소리 들을 정도 수준의 학자는 아니라고 본다.

추측컨대, 경제학자이면서도 자신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마치 사회학자와 같은 방식으로 펼쳐내는 그의 활동궤적이 같은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낮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석훈은 그간 청년세대를 향한 글을 많이 써 왔는데, 이 책 <불황 10>에서도 장기불황의 시대에 생존가능성을 높여주는 각종 노하우를 20-30대에게 전수하고자 한다.

세부사항에서는 동의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메인 아이디어에는 매우 동의한다.

보수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소위 '낙수효과'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허구적 캐치프레이즈인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불황을 탈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역시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논리가 자칫 개인이 국가를 위해 이용당하고 희생당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주류 거시경제학은 불황의 해법을 소비 증가를 통한 신규 수요 창출로 보는데, 그러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소득자들이 자신들의 재무구조를 악화시켜가며 지금보다 소비를 늘려야 하는가?

우석훈은 장기불황을 통과하며 오히려 소비를 잔뜩 줄이고 가계저축을 가파르게 증가시킨 일본의 경우를 반례로 제시한다. 불황을 통과하며 일본의 국가경제는 다소 약화되었을지 모르지만 일본 국민들의 가계경제는 더욱 튼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도 이처럼 개인경제, 가정경제를 튼실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의사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거, 저축, 소비, 창업, 교육 등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다른 파트도 도움이 되지만, 교육 파트에서 조기 외국어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반대하는 부분은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 그런 생각이긴 했지만, 모국어를 제대로 익히게 하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얻었다. 

영어 조기교육 신봉자라면 읽고 고민해보시라. 또는 주위에 그런 사람 있다면 이 책을 권해보아도 좋으리라 싶다.

  

경제학자가 거시지표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각 개인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며 메시지를 내는 경제학자도 한 명쯤 꼭 필요하다고 본다(사실, 더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20-30대에게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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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한국이 싫어서><표백>의 작가 장강명의 작품이다.

<표백>과 마찬가지로 이십대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불행하게 살 수 없어 호주로 홀연히 이민을 떠난 한 20대 여성의 분투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표백>처럼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주인공의 좌충우돌 고생담을 오히려 밝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그려냈다.

그런데도 읽고나면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한국사회는 과연 젊은이들이 살아갈 만한 곳인가하는 묵직한 화두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던진다.

계속 주시하며 읽어야 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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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장강명, 한겨레출판

 

장강명의 이름을 널리 알린 문제작이다.

88만원세대, N포세대라 불리는 이삼십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세대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활발히 일어난 바 있다.

하지만 장강명의 <표백>은 어떤 사회학 이론과 통계자료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만들어낸다.

 

장강명이 소설 속의 한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우리 시대는 완성된 사회.

흠없이 완벽한 사회라는 뜻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싸워 얻어낼 대의나 이뤄야 할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산업화세대에 의해 시작된 경제성장도 이제는 거의 한계치에 이르렀고, 486세대에 의해 정치적 민주화 역시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물론 최근에 이명박근혜 정부와 같은 준독재정권도 출현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들도 민주주의시스템 안에서의 나쁜 정부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도 붙들지 못하고 어떠한 성취도 이루지 못하고 표류하는 젊은이들을 무색으로 표백된 상태에 빗대어 표백세대라 이름붙인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의 소설 속 인물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치밀하게 진행해 놓은 예비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추종자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에 의하면 그들의 자살은 삶을 비관해서 하는 일반적인 자살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의미와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죽음을 막을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도 있을 법한 이야기,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처절한 절규와 몸부림의 이야기가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내 나이도 내년이면 어느새 마흔이다.

88만원세대라 불리기 시작했던 세대의 맏형으로서 나는 이 책의 질문에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까?

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붙들고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복음과 교회 안에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표백된 젊은이들보다 더욱 허옇게 표백된 우리시대의 복음과 우리 시대의 교회가 그들에게 정말 와닿는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한없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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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중독>, 엄기호 / 하지현, 위고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인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한국사회에서의 공부의 의미에 대해 논한 대담집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공부중'이라는 스테터스는 전가의 보도로 쓰이고 있다. 

공부는 개인에게는 현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유예하는 도피처 역할을 하고, 통치권력에게는 각 사람에게 충분한 자리를 배분해주지 못하는 것이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더 준비되어야 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과 통치권력의 필요들이 절묘히 맞아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공부중'인 상태에 머물러 삶의 다음 단계를 유예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저자들은 "공부중독사회"로 규정한다.

그러한 공부중독의 다양한 양상과 해악을 논한 후에, 삶을 유예시키는 공부가 아니라 용기있게 자기 몫의 삶에 부딪혀 살아가게 만드는 진짜 공부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책이다.

엄기호 선생이 주는 묵직한 통찰과 예리한 문제의식 그리고 하지현 선생의 박학다식함이 잘 어우러진 좋은 대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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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하는 저자로 알려진 강준만은 또한 지독한 자료수집광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쓰면서도 대체로 내용이 충실한 책들을 써낼 수 있는 비결을 저는 자료수집광으로서의 그의 면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던지, 그 주제에 관련된 사건과 인물에 대해 방대한 팩트(?)를 체계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강준만의 책이 읽을 가치와 소장가치를 얻는 지점입니다.


<입시전쟁 잔혹사> 역시 이러한 강준만식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무려 조선시대부터 2008년까지의 입시전쟁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입신양명'이라는 출세지향적 가치관이 강하게 작동하는 유교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토양에서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 등의 비극을 겪으며 태어난 한국사회는 공동체의식이 미천하고, 지배층에 편입되려는 욕망이 각개약진의 형태로 나타나는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영역이 대학입시입니다. 소위 SKY대학에 입성하여 지배계급을 획득/유지하려는 경쟁은 한국사회를 국민 전체가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하려는 역대정부들의 교육정책이 모두 실패한 것은 이 문제를 입시정책의 변화만으로 단기에 해결해보려는 조급함과 좁은 안목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입시정책의 변화는 대부분 그 정책에 담긴 좋은 의도를 무색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쟁을 유발해 왔습니다. 따라서 입시정책의 잦은 변화는 학생과 학부모의 피로도만 증가시켰을 뿐,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입시는 계급전쟁’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건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학벌시스템을 좁게는 서울대 중심, 조금 더 넓게는 SKY 중심의 1극체제로 정의하며, 이것을 다극화하는 것만이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본질적 해법이라 주장합니다. 거기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제안은 SKY대학의 정원감축(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소수정예화’)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한국사회의 공고한 학벌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명문대학의 다극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제안이 정말 그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여 나름 실제적인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는 학벌사회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도 비판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주의자들도 인정사정없이 비판합니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학벌사회에 대한 거부가 너무 강해서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를 ‘진보적 근본주의’라고 비판합니다. 


“학벌주의 완화에 대해 ‘하향평준화’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주문을 열심히 외워대는 사람들이 한국의 전형적인 엘리트로 행세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슬픈 건 변화를 염원하는 진보적 근본주의자들이 역사의 구조를 뛰어넘어 이론적 근본에 집착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의 동맹세력으로 기능하면서 변화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 <입시전쟁 잔혹사>, p321 


저자의 입장은, 변화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을 고수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실현가능한 변화를 조금씩 일으키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학벌폐지’보다는 ‘학벌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학벌폐지론자들을 진보적 근본주의자라고까지 혹평한 것은 다소 지나치다고 느껴지지만, 이상과 현실을 모두 감안하여 변화의 노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는 매우 공감하게 됩니다.

저도 제가 속한 단체를 통해 대학생들과 대학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변화를 바라는 이에게 필요한 좋은 태도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어 참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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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그리고 우리신학연구소가 한국사회 청년문제를 화두로 한 심포지움 이후 그것을 발전시켜 2010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여러 학자들의 글 모음집 형태를 띄고 있다.
최근 청년에 관한 책을 지겹도록 읽어제끼고 있다보니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라 식상한 점도 있었지만, 그런 맥락에서 읽지 않았다면 신선하게 읽힐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가령, 웹상에서 인기드라마에 대한 패러디창작물을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양산해내는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백소영의 글, 이말년 만화를 통해 20대의 웹툰이 가지는 사회학적 의미을 이야기한 김수환의 글은 매우 재밌었다.
그리고 책 전체를 안 읽더라도 두 편의 글만은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엄기호의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과 정용택의 "자기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세계와 적대하는 인간"은 이 책에서 발견한 엄청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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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 오찬호가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한국인 저자가 쓴, 비슷한 주제의 책으로는 서보명의 <대학의 몰락>이 있는데, 접근방식이 달라서 둘 다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될 것입니다.

<대학의 몰락>은 오늘날의 대학이 자본에 철저히 포섭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참된 공부란 무엇이며 대학의 본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논하는 다소 철학적인 책입니다. 책의 원래 목적이 현실 고발이 아닌데다가, 저자가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진격의 대학교>는 현재 국내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저자의 직접경험과,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언론에 나타난 사례와 각종 통계자료들을 기반으로 하여 자본에 집어삼켜진 대학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는 책입니다.

 

책이 보여주는 현실이 너무 암울하여, 읽는 내내 무거운 바위가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런 답답함을 느낀 건, <대한민국 부모> 이후 오랜만입니다. 그러고보니 두 책 모두 교육에 관한 책입니다. 책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암유발도서라 할만치 읽는 이의 마음이 짓눌리니 이 자체가 비극입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 있지만, 그래도 대학생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선교단체 간사들은 오늘날 대학생들이 맞닥뜨린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 대안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태도가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면서, 대안을 말하는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대학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역할을 100% 이상 해낸 책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혹시 <88만원 세대>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석훈의 <88만원세대>20대들의 연대와 저항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획된 책인데, 오히려 20대 독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각자도생을 모색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책도 워낙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책이다보니 책이 의도한 것과 반대방향으로 독자들이 질주하게 만들 위험성도 있어 보입니다. 가령, 대학이 영어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2장을 읽으며, 대학의 영어몰입이 진정한 배움과 소통을 방해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영어를 잘 해야 살아남는다. 당장 영어공부하자는 결론으로 향하는 것 같은 일 말입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2장을 읽으며 우리 아들 영어 어쩌지하며 잠시 멍 때리다가 화들짝 놀란 무려 두살배기아들 아빠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얄팍한 우리가 문제입니다.

결국 이런 책을 오독하지 않을 힘은 지성이나 이해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좆아 살아가는 삶의 내공과 진정성에 달려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읽으면 역주행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함께 읽읍시다.

대학마저 집어삼킨 자본의 진격은 거침없지만, 모여앉아 읽고 고민하는 작은 무리를 통해 변화는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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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일본의 한 사회학자가 일본 젊은이에 대해 쓴 책이다. 
일본에서 2년만에 15만부가 팔리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해 이른바 '사토리세대(득도세대)'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사토리세대 현상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개개인이 자신이 가진 작은 경제력에 만족하고, 또한 자신이 속한 작은 준거집단 속에서 충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것조차 부모세대의 경제적 지원이 젊은 세대의 빈곤을 어느 정도 상쇄해주기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이 있는데, 10-20년 후 부모들의 경제력이 감소하는 시점에 이 세대 또한 심각한 빈곤의 문제를 겪게 될 것으로 본다. 
즉, 그들의 행복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단지 유보된 불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토리세대를 낳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래 일본은 ‘느슨한 계급사회’의 모습을 띌 것이라 전망한다.
그렇다고 우석훈처럼 ‘젊은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비장한 논조는 아니며, 그냥 그렇다고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여러모로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내셔널리즘과 젊은이’에 대해 논하는 3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과거 일본은 내셔널리즘을 활용하여 수많은 자국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들을 전쟁의 참상 속으로 몰아넣은 전범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국가를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통계에 의하면, 일본 젊은이들 중 전쟁이 나면 도망치겠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일본의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모습에 개탄했겠지만, 저자는 이처럼 일본이 망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은 젊은이들의 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젊은이들이 적다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니 적어도 태도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저자에게서 내셔널리즘을 향한 강한 냉소가 느껴진다.
더 이상 내셔널리즘이 먹혀들지 않은 젊은이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을 위해 해주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애국심에 호소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경고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젊은이들을 위하지 않을 때,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런 면에서 이 책에 나오는 사토리세대라는 개념을 한국의 보수언론이 아전인수 격으로 써먹은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최근 조선일보는 특집기사를 통해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소개하며 '달관세대'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규정하려 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도 이십대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네. 왜 그런지 알아보자'는 것과 '거봐. 행복은 마음 속에 있는거야. 구조타령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너만의 행복을 찾아봐'라고 훈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사회학적 접근'이지만, 후자는 '개수작' 또는 '저열한 꼰대질'이다.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책이 바다 건너에서 이런 개수작에 이용된 것을 알면 얼마나 씁쓸할까 싶다.


이 책에는,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위한 거룩한 전쟁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생존과 안전을 도모했던 전시 일본의 기성세대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민족언론을 자처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언론으로 돌아섬으로서 그들의 애국심이 얼마나 알량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었던 조선일보 아니었나. 
그랬던 자들이 나중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애국심이데올로기를 얼마나 지겹도록 우려먹었는가. 
‘산업화의 역군’ 어쩌고 하며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선전도구로 말이다.

그들을 향해 이 책은 ‘더 이상 애국심에 호소해서 젊은이들 이용해먹을 생각하지 마라. 더 이상 일본을 위한 젊은이도, 대한민국을 위한 젊은이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책을 가지고 달관세대 어쩌고 떠들다니, 이건 대책없는 난독증인 걸까? 아니면 이해력 부족을 가장한 뻔뻔함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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