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장강명, 한겨레출판

 

장강명의 이름을 널리 알린 문제작이다.

88만원세대, N포세대라 불리는 이삼십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세대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활발히 일어난 바 있다.

하지만 장강명의 <표백>은 어떤 사회학 이론과 통계자료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만들어낸다.

 

장강명이 소설 속의 한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우리 시대는 완성된 사회.

흠없이 완벽한 사회라는 뜻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싸워 얻어낼 대의나 이뤄야 할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산업화세대에 의해 시작된 경제성장도 이제는 거의 한계치에 이르렀고, 486세대에 의해 정치적 민주화 역시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물론 최근에 이명박근혜 정부와 같은 준독재정권도 출현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들도 민주주의시스템 안에서의 나쁜 정부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도 붙들지 못하고 어떠한 성취도 이루지 못하고 표류하는 젊은이들을 무색으로 표백된 상태에 빗대어 표백세대라 이름붙인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의 소설 속 인물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치밀하게 진행해 놓은 예비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추종자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에 의하면 그들의 자살은 삶을 비관해서 하는 일반적인 자살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의미와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죽음을 막을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도 있을 법한 이야기,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처절한 절규와 몸부림의 이야기가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내 나이도 내년이면 어느새 마흔이다.

88만원세대라 불리기 시작했던 세대의 맏형으로서 나는 이 책의 질문에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까?

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붙들고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복음과 교회 안에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표백된 젊은이들보다 더욱 허옇게 표백된 우리시대의 복음과 우리 시대의 교회가 그들에게 정말 와닿는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한없이 슬프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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