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 톰 라이트, IVP


요한계시록이 얼마나 힘있고 감동적인 책인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적실한 메시지를 주는 책인지를 보여주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BST 요한계시록>을 통해서는 요한계시록의 구조와 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반면,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주석시리즈인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은 (장르 불문하고 묵상집 형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 시리즈의 특성상) 구조 파악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강점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건전한 해석과 좋은 묵상에 깊이 잠길 수 있다는 점이다.
매번 느끼지만, 톰 라이트는 글을 정말×7 잘 쓴다.
BST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게 되었고, 에브리원주석을 통해 요한계시록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두 책을 BST, 에브리원 순서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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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복음이다>, 톰 라이트, IVP

톰 라이트 책에 대해서는 그간 너무 많이 떠들었는지라 몇 가지 소감 정도면 족하겠다.


1. 의외로 감동적인 책이다. 
'톰 라이트가 쉬워졌다' '톰 라이트 입문서로 제격이다' 등의 찬사를 많이 들은지라 얼마나 쉽게 잘 요약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건조한 태도로 읽다가 마지막에 가슴이 막 쿵탕쿵탕 뛰었다.
이런 복음, 이런 초대라니... 가슴 벅차다ㅠㅠ


2. "톰 라이트가 쓴 수많은 책들 중 단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는 김종호 대표님의 추천사에 매우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면 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을거라는게 함정이다.

3. 마지막 장 압권이다!
이 책의 8장 '좋은 소식을 기도하다'는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대한 주해를 통해서 하나님나라 복음의 풍성함을 보여주려는 시도다.
타고난 천재가 다작을 통해 부단히 글쓰기훈련까지 하면 어느 정도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볼 수 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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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시대 교회의 사명>, 톰 라이트, IVP

톰 라이트는 워낙 다작하기로 유명한 데다가, 명성과 인기에 힘입어 저서의 국내출간도 꽤 활발한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최근 몇 년간 그의 책은 읽기에 힘이 부칠 정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한 때는 톰 라이트의 국내 출간된 모든 저서를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지만 어느새 책 나오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낙오해버렸습니다.
그래도 기독서적에서 단일저자의 책으로는 가장 많이 읽은 것이 톰 라이트의 책일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 책이 그 책 같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새로운 책이 나오면 집어들어 읽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상의 시대 교회의 사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고나서 내린 결론은 '그 많고 많은 톰 라이트의 저작 중에서 이 책은 반드시 추천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몇 가지 지점을 소개합니다.


1. 이 책은 신간이 아니라 1992년에 발표된 아주 오래된 책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반세기 전에 이미 그 시대와 앞으로 올 시대를 정확하고 예리하게 읽어냈으며, 오늘날에도 귀 기울여 들을만한 도전을 던지고 있음에 매우 감탄했습니다. 
톰 라이트가 학자들만의 리그를 위한 학자가 아니라 교회와 세상을 위해 연구하고 말하는 학자임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 이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이 책에는(특히 초반부) 톰 라이트의 사상이 쉽고 명료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992년은 그의 학자로서의 커리어에서 비교적 초반에 해당합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불후의 명저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을 시작으로 해서, 이후 그는 치밀한 연구를 통해 유대세계, 예수, 바울, 교회에 대한 종합적이고 개연성 있는 큰 그림을 그려내는 방대한 작업을 해냅니다(현재 그 시리즈는 1,2,3권을 통해 역사적 예수를 정리하고 4권인 바울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리는 당시에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이 큰 그림의 윤곽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유대, 예수, 그리고 교회로 이어지는 대략의 그림을 간략하게 제시한 이 책의 전반부는 톰 라이트의 사상에 대한 훌륭한 요약입니다.


3. 이 책은 놀랍게도 '절기에 맞춘 묵상집'입니다. 
유익한 절기묵상집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복음주의권에서 나온 것들은 개인적 성찰로만 이끄는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톰 라이트는 재의 수요일에서 삼위일체주일로 끝나는 이 절기묵상집에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시대정신과 우상을 분별하고 교회의 사명을 자각하라는 초청을 합니다. 
때로는 내용보다 형식 자체가 더 효과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절기묵상집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절기의 의미를 개인 신앙에 적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는 보수 기독교권을 향해 '절기를 따라 우리는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을 붙들고 씨름해야 한다'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 됩니다. 
그것은 이 책 전체의 주장과도 아주 잘 맞아 떨어지며 그 자체로 참 '톰 라이트스럽습니다'.


4. 이 책의 '에필로그'는 역대급입니다.
예수기도를 보완한 '삼위일체 기도'를 제안하는 이 책의 에필로그는 책 전체를 완독한 후의 마무리로 읽을 때에 더 깊이있게 다가오지만, 시간이 없다면 에필로그만이라도 꼭 읽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그가 제안하는 기도는 매우 심오하며 실천적입니다. 
이 삼위일체를 향한 기도에 푹 잠겨 이 풍성한 복음을 살아내는 교회의 한 지체로 살고 싶습니다.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읽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살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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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시여,
당신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세우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성령,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숨이시여, 
저와 온 세상을 새롭게 하소서.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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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톰 라이트, IVP

회가 직면한 여러 이슈들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존 스토트의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책이다.


존 스토트가 자신의 강점을 따라 각각의 이슈들을 다소 교의학적인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면,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는 성경의 전체이야기와 특정본문들을 넘나들면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썼다.


해당 주제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가 보여 온 주요한 입장들을 정리하는 면에서는 존의 책이 더 우위에 있고, 성경이 이 시대의 문제에 적실한 답을 준다는 확신과 격려를 얻는데는 톰의 책에 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존의 책이 강의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톰의 책은 설교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둘 다 읽으면 좋다는 뜻
이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모든 챕터가 각각 다른 곳에서 했던 강연이나 설교를 발전시킨 것이다보니 챕터끼리 내용이 비슷하게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군데군데에서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지루함을 유발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박학다식하긴 하지만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영역을 언급할 때는 다소 전문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좌뇌/우뇌 이론).
그리고 번역이 좀 아쉽다.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부정확한 문장이 간간히 눈에 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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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박영돈, IVP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름 톰라이트빠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국내에 출간된 톰 라이트 책을 대부분 읽었고, 그를 비판하는 책이나 글도 꽤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박영돈 교수의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의 출간은 저를 매우 설레게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짧은 소감은, 제가 지금까지 접해본 톰 라이트 비평글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반부에서 톰 라이트의 바울 신학을 ‘E. P. 샌더스에게서 받은 영향’, ‘제임스 던에게서 받은 영향’, ‘톰 라이트의 고유한 주장으로 나누어 분석/정리한 부분은, 톰 라이트 본인보다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을 더 명료하게 정리했다고 느껴질만큼 탁월합니다.

에피타이저인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에 대한 요약 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게다가 메인디시인 톰 라이트 비평 파트 역시 매우 훌륭합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조직신학자인지라 성서주해보다는 교리논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그런 방식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신약성서학자를 상대할 수 없음을 존 파이퍼가 이미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본문에 대한 주해를 통해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요목조목 비판하는 저자의 논리는 매우 예리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톰 라이트의 기획은 역사적예수바울신학으로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역사적예수 분과에 있어서는 그의 주장에 거의 전부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울신학에 있어서는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에 입각한 자신의 신학적 전제들과 일관성 있게 짜맞추려다보니 그가 일부 본문에서 다소 억지스런 주해를 하고 있다고 느껴왔습니다.

몇몇 본문의 주해에서 느껴지는 뭐랄까 좀 과하다는 느낌, 저자는 그런 부분들을 매우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박영돈 교수의 주장대로, 바울의 글 중에는 새관점으로는 제대로 읽어낼 수 없고 옛관점으로 읽을 때에만 더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는 본문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텍스트에 대한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의 양자택일식 논쟁은 이제는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최근 많은 신약학자들이 인정하듯이, 1세기 유대교에는 언약적 신율주의와 율법주의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 위선과 공로사상, 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 둘 다에 대항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텍스트는 옛관점과 새관점을 함께 가지고 읽을 때에 가장 잘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김세윤 박사도 그의 책 <칭의와 성화>에서 힘있게 주장한 바 있고, 근래엔 톰 라이트 역시 옛관점과 새관점의 통합의 필요성을 깊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가에 있어서 김세윤 박사는 옛관점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톰 라이트는 새관점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톰 라이트의 바울 해석에서 나타나는 몇몇 억지스러움은 그가 대부분의 텍스트를 새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박영돈 교수도 이 책에서 바울해석에 있어서 주된 것은 옛관점이라는 전제 하에 새관점의 필요성도 부차적으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톰 라이트가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저자는 톰 라이트가 옛관점에 대해 그토록 부정적이면서 왜 몇몇 주해에서는 옛관점을 들여오는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톰 라이트는 옛관점만으로바울 텍스트를 읽어서 개인구원에만 매몰되어버리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 옛관점 자체에 대해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가 톰 라이트가 옛관점과 새관점을 아우르며 바울을 해석하는 것을, 필요할 때만 옛관점을 슬그머니 들여오는 비겁한 행동인 듯 말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비난입니다.

톰 라이트는 최근 저작으로 올수록 더욱 옛관점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여줍니다.

(최근에 그가 자신의 바울신학 안에 옛관점을 얼마나 많이 수용해냈는지는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철지난 떡밥 같은 이 옛관점/새관점 논쟁보다,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에서 가장 논란이 될만한 지점은 미래의 칭의에 관한 부분일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신자가 의롭다는 판결이 예수의 의를 힘입어 내려질 것인가, 성령과 동행하여 실제로 의로워진 그의 생애를 통해서 내려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안 그래도 톰 라이트를 달가워하지 않는 보수교회들이 그를 철저히 외면하게 할만큼 매우 민감하고 폭발력 있는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미래의 칭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 역시 쉽게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울만치 설득력 있습니다.

본론인 비평 파트를 읽으면서, 당대 최고의 신약학자의 주장을 이렇게 얇은 책으로 효과적으로 반박해낸 저자의 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바울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가 마구 쏟아져나옵니다.

개혁주의 공동체에게 이 부분은 교리공부하는 텍스트로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반부는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 요약, 중반부는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 비평, 후반부는 개혁신학 교리정리...

얇은 책이 이처럼 다양한 면모와 쓰임새를 가질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몇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톰 라이트가 1세기 유대교가 언약적 신율주의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비판하면서, 전문학자들이나 알만한 배경지식이 성서해석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성서는 학자나 무학자나 모두 올바르게 해석해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자 해석학적 유산이라는 것이지요.

주장의 취지는 일부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약성서는 1세기의 문서입니다. 1세기의 저자와 독자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현대 독자에게는 가려진 지식, 가치관, 사고방식, 전제, 문화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부분이 드러나 성서해석에 반영될 때 우리의 해석은 변화되고 수정되면서 성서에 대한 더 바른 이해로 나아갑니다.

성서신학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그러한 배경을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서 우리가 성경을 더욱 올바르게 읽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성서의 배경연구를 통해 우리가 당시의 시대상을 완벽히 복원할 수 없고, 잘못된 배경지식이 해석의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배경연구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문신학자만이 제시할 수 있는 해석은 바른 해석이 아니라는 주장은 성서연구분과에 있어서 자칫 신학 무용론으로 오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톰 라이트가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개인구원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전 세계를 새롭게 하시려는 위대한 구원 계획을 신실하게 성취하신다는 일관된 관점으로 바울의 복음을 해석하려는 라이트의 야심찬 기획에서, 하나님은 한 죄인을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시는 개인의 구원자라는 측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 박영돈,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p171

 

저는 이런 비판을 톰 라이트가 듣는다면 많이 억울해하리라고 봅니다. 톰 라이트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그의 바울신학만이 아니라 역사적예수 연구를 포함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바울 텍스트에 대한 몇몇 주해만을 바탕으로 그가 개인구원의 중요성에 대해 평가절하한다고 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저는 톰 라이트의 방대한 저작들을 힘에 부치게 따라갔던 그 여정에서,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로 사는 우리 각 사람에게 자유와 새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에 대해 깊이 깨닫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톰 라이트가 개인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몇가지 아쉬움을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정말 뛰어난 톰 라이트 비판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자가 후기에서 보여준 겸손하고 개방적인 태도 역시 인상깊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톰 라이트 위험해. 그러니 읽지마. .” 이 아니라, 이러한 비평과 상호대화를 통해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잘 알게 되고 하나님나라가 진보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 책이 그렇게 쓰이면 좋겠습니다.

신학했다는 이들 중에도 학자의 원전과 씨름해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소위 안전한 학자들과 위험한 학자들의 목록만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역시 톰 라이트는 위험해라는 선입견을 확증하는 근거로 손쉽게 쓰이지 않길 바랍니다.

톰 라이트의 칭의론 일부분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보여준 바울신학의 전체 그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예수 연구의 영역에서 역사비평이 해체해버린 복음서의 역사성을 수호해낸 톰 라이트의 위대한 업적은 지금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톰 라이트에게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비판서 한두권 읽고 쉽게 제껴버리는 건 참으로 아쉬운 선택입니다. 그는 아직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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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왕의 복음>, 스캇 맥나이트, 새물결플러스


지금까지 스캇 맥나이트의 책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건, 그가 단지 '톰 라이트의 대중적인 버전' 정도에 불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캇이 이류학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자로서의 그의 성취와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 겹치는 포지션에 톰 라이트가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핵심주장이 유사한 건 분명하지만, 톰 라이트의 애독자라 하더라도 스캇 맥나이트 역시 읽을 이유는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경제학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스캇은 톰 라이트의 대체제가 아니라 보완재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적어도 대중적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톰 라이트보다 월등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톰 라이트는 예수와 복음을 주제로 한 그의 여러 책들에서 자신의 핵심논지 - 복음은 개인의 죄사함과 칭의보다 큰 이야기이며, 예수를 왕과 주로 선포하는 이야기이다 - 를 압도적으로 치밀하지만 또한 압도적으로 장황한(?) 필치로 펼쳐나갑니다. 
톰 라이트의 장황함은 글의 분량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글쓰기 방식에 원인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멋들어지고 아름다운 글쓰기를 선호하는 듯 합니다. 다소 명료함과 효율성을 희생하더라도 예술적 글쓰기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의 도전(The challenge of Jesus)>이나 <기독교 여행(Simply christian)> 같은 얇은 책들을 읽을 때에도 -그의 아름답고 유려한 글쓰기에 감탄할 수는 있지만- 그의 논지를 한 번에 명확히 잘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스캇 맥나이트는 놀라운 솜씨로 그 비슷한 내용을 이 얇은 책에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해냈습니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톰 라이트의 대중적인 버전이라는 느낌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나 압도적으로 탁월하게 해냈기에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복음이 단지 죄사함의 메시지 이상의 무엇인지, 그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신자로서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알기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현재까지 이 책 이상으로 잘 정리된 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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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N.T. 라이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톰 라이트.
맨스플레인의 끝판왕. 

설명하고 싶다. 이미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


열 페이지 넘는 논증을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할 땐, 신학책이라기보다는 호러물에 가깝게 느껴진다.
인간이 무언가를 자세히 설명하기로 작정하면 얼마나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극의 지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하지만.
시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논증.
본문석의에 있어서의 치밀한 근거와 압도적인 설득력.
자신을 향한 모든 비판을 반박할 기세의 패기쩌는 각주들.
인사이트를 주는 문장에 형광펜을 긋다가 거의 페이지 전체를 형광펜으로 도배하기를 수차례...

(노란 형광펜 두 개 주황색 형광펜 하나 소진)
중요한 페이지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포스트잇을 잘라 표시를 해놨더니 옆면은 온통 포스트잇 투성이...

(모든 페이지가 중요한 책에는 중요한 곳을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책을 보증하는 말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톰 라이트의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필적할 만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뻔한 얘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 Bruce W. Longenecker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정도의 찬사를 남발하나 싶었지만, 다 읽고나서 "아멘"으로 화답하게 되었다.

지난 몇 달간 나에게 다른 모든 독서의 종말을 가져온 책.
하지만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닌 책.
역시 명.불.허.전.
현재까지 신학부분 단연 내 인생서적.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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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있어 소개하고 싶었는데 장황해졌습니다.^^;

 

PBS이야기로 시작해보렵니다.

제가 IVF를 하면서 얻은 가장 귀한 유산 중 하나가 PBS(Personal Inductive Bible Study; 개인 귀납적 성경연구)입니다.

하지만 학생 때 저는 PBS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PBS가 요구하는 성실함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렇게 열심히 PBS를 해서 얻는 깨달음이 QT를 통해서 얻는 것에 비해 뭐가 그리 다른가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셀모임에 PBS를 제대로 해 간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PBS예찬론자가 되어있고, 여기저기서 PBS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으니 인생은 알 수 없는 거 같습니다^^

 

저는 PBS를 제대로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것이 성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훌륭한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쯤이었네요, IVF간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는데 그러려면 PBS라는 산을 결국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간사시험 중에 PBS과목이 있습니다^^*).

PBS에 관한 한 지독한 뺀질이였던 저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PBS에 달려들었습니다.

 

그 때 제가 했던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PBS워크북에 있는 견본을 따라서 수없이 반복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단계를 수없이 반복하자, 전에는 별 의미없이 복잡해보이기만 했던 각 단계들이 가지는 역할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리와 기능을 이해하자 그 후로는 제 스타일에 맞게 변형, 단순화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러자 PBS를 하는 시간도 비약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PBS를 가르칠 때, 일단은 정석대로 많이 해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많이 반복해서 각각의 단계가 익숙해지고 이것을 왜 하는지 알고 나야 그때부터 자기만의 약식방법론이 나온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약식으로 할 궁리부터 하게 되면 PBS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둘째는, 그 시점까지 출간된 BST(Bible Speaks Today)시리즈를 전부 읽는 것이었습니다.

PBS를 할 때에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PBS방법론 자체에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어서 PBS를 하기만 하면 탁월한 해석을 해내고 놀라운 통찰을 얻게 될 거라는 기대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PBS를 배우기 전에 PBS에 흥미를 가졌던 것도 그 기대 때문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PBS를 배우고나서 곧 흥미를 잃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간사님이 PBS를 가르치면서 예를 들어주시는 걸 들으면 참 흥미롭고 놀라운데 정작 내가 하면 그렇게 안 되네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좋은 Input이 있어야 좋은 Output이 있는게 모든 학습의 원리일진대 PBS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스스로 좋은 성경해석을 해내기 위해서는 좋은 성경해석을 그만큼 많이 접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해석에 있어 검증된 강해집인 BST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PBS를 할 때 곧장 주석과 강해집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PBS를 할 때가 아니라 평소에 좋은 성경해석을 계속해서 접해서, 좋은 해석의 프로세스와 그 감을 자기 안에 새겨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그 본문을 PBS하게 될 때 그 내용이 생각나기를 의도하고 읽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본문을 연구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성경해석이 자기 머리 속에 있느냐가 아니라, 좋은 성경해석의 원리와 감각을 자기 안에 체화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두가지 훈련은 저에게 매우 유익했고, 그것을 통해 PBS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PBS를 가르칠 때에 많이 반복하라좋은 강해집을 많이 읽어라이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그렇게 PBS의 참맛을 경험하고나자 PBSIVF가 제 인생에 준 가장 값진 유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결국 좋은 강해집을 읽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말하고 싶어서 이 장황한 얘기를 했네요(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나이들면서 점점 말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문제는좋은 성경해석의 모범을 제공해주어 읽는 이의 성경연구의 역량을 키워줄 정도로 탁월한 성경강해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위 요건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강해집 시리즈 둘만 소개하겠습니다.

일단, 설명이 필요없는 BST시리즈가 있습니다. (진짜 설명 안 합니다'믿고 읽는' BST. 꼭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에 필적할만한 강해집 시리즈가 하나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주석입니다.

현재까지 국내출간된 것들 중에 세 권 빼고 모두 읽어본 제 개인적 소감은 (저자가 신약학자라서 시리즈가 신약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BST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강해집이라는 것입니다.

대중성이라는 면에서는 심지어 BST보다 더 낫습니다.

BST보다 문체가 쉬운데다가 문단마다 본문해석과 관련된 예화 하나씩을 꼭 넣어서 읽는 재미까지 더해줍니다

성경에 흥미와 관심이 많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BST시리즈 전체를 독파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에브리원주석시리즈는 술술 읽히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해볼만합니다.

현재 나와있는 시리즈만 모두 읽어도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서신을 읽는 좋은 관점과 틀이 형성될 것입니다.

하여,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주석시리즈에 대한 추천을 여기에 내놓습니다! (이거 에브리원주석 서문에서 톰 라이트가 미는 유행어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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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한국IVP가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를 가열차게 출판 중입니다. 

라이트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학계에 내놓는 것과 더불어 그것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알리는 저술도 병행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에브리원주석 시리즈는 주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쉽고 재밌는 강해서로서, 후자의 목적을 가진 저술입니다. 
저는 워낙에 톰빠인지라 처음 한동안은 이 시리즈라면 나오자마자 열심히 읽었습니다. 사복음서와 로마서 그리고 그 후 몇 권까지 그럭저럭 따라갔는데, 출간속도가 워낙 빨라서 어느 순간 낙오해버렸습니다^^;
그 후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에브리원 주석 중 "사도행전"을 얼마 전 꺼내 읽었습니다. 새 학기 간사모임에서 바울에 대한 성경연구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읽은 에브리원 주석 중 가장 좋았습니다.
사복음서의 경우엔 저자의 역사적예수연구의 결과물을 대중적 수준으로 쉽고 재밌게 잘 풀어낸 수작이지만,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등을 통해 이미 밝힌 내용이라 신선함이나 새로움은 덜 했습니다. 
로마서의 경우엔 (제 개인적 견해로는) 이 시리즈의 목표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바울신학을 대중적 눈높이로 쉽고 재밌게 전달했는가 하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사도행전>은 쉽고 재밌게 사도행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면서도, 저자 고유의 관점으로 해석과 묵상에 있어 신선한 통찰을 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읽는 동안 여러 차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재밌게 통독하고, 사도행전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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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책 중에 유일하게 원서로 읽었던 책입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원서로 책을 읽을 때의 유익은 한글로 된 책을 읽을 때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추측컨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는 별 차이가 없겠지요. 그래서 영어를 못 하면 원서를 읽을 때 더 큰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영어를 잘 못 하는 상태를 힘써(?) 유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엉?

주기도문에 대한 책은 워낙 많습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에 관심이 많은 저는 주기도문에 대한 책을 일부러 찾아서라도 많이 읽은 편입니다. 그 중 역대급 주기도문 강해집을 꼽자면,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주여 기도를 가르쳐주소서>와 김영봉 목사님의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책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는 그 두 권과 같은 반열에 사뿐히 올라설 만한 책입니다.
<주여 기도를...>이 윤리학자가 읽어낸 주기도문, <가장 위험한...>이 목회자이자 영성가가 읽어낸 주기도문을 보여준다면,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는 신약학자이자 역사적예수연구가가 읽어낸 주기도문입니다(물론 김영봉 목사님도 신약학자이긴 하나 <가장 위험한...>은 그보다는 목회적 관점이 더 강하게 드러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주기도문 해석에 있어서 톰 라이트의 강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의 4장은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에 대한 해설을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달리는 아버지의 이미지에서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죄 용서'와 연결지어 감탄할 만큼 훌륭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위 두 권의 책과 더불어, 톰 라이트의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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