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 한국교회탐구센터, IVP

저와 함께 신학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있는 한국교회탐구센터는 정기적으로 포럼을 개최해서 그 결과물을 꾸준히 책으로 출간해오고 있습니다. 이 포럼시리즈가 어느덧 열 권이나 나왔는데 (모두 좋은 책들이겠지만) 가장 최근에 나온 세 권인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혐오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은 정말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들입니다.

그 중 마지막 책인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국 개신교의 극우화 현상에 대한 연구서입니다.
책의 절반 가까이는 보수 개신교인의 내면세계 및 정치의식에 대한 설문/면접 조사의 결과와 그 해설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이 조사는 기독교 내부 연구로서만이 아니라 극우세력을 연구하는 일반 연구자에게도 참고자료로 꽤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문뿐만 아니라 실려있는 모든 글들이 좋습니다. 특히 김현준 님의 "복음주의는 반지성주의적 영성을 가졌는가"는 이 책의 백미입니다. 스스로를 소위 기독지성(운동)으로 정체화하는 이들 안에서도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글인데, 제가 속한 단체와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제 안에서 두 방향의 변화를 발견합니다. 극우적 사고와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 커졌습니다. 반면, 극우 성향을 가진 이들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상에 대해서는 더욱 경계하게 만들되 사람은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면, 극우 개신교에 대해 쓴 책이 이끌어낼 수 있는 결과가 이보다 더 바람직할 수 있을까요?
하여, 저처럼 극우 개신교를 보며 염려하고 속상해 하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소개하고 열렬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S. J. Hong
,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제임스 스미스 외 24인, IVP

최근 기독출판계에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다룬 저작들의 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반갑습니다.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는 과학과 신앙 이슈 중 가장 뜨거운 주제인 '하나님의 창조와 진화가 양립 가능한지'를 다룬 책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방법으로 진화의 메커니즘을 사용하셨다고 믿는 입장을 "진화적 창조론 (또는 유신진화론)"이라 합니다. 
이 책은 진화적 창조론을 믿거나 또는 적어도 수용적인 입장을 가진 25인의 그리스도인 과학자, 신학자들의 글을 모은 책입니다. 
대부분의 글이 이 이슈에 대한 각 개인의 여정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있어, 진화적 창조론 자체를 공부하려면 이론적으로 잘 정리해놓은 다른 책들을 먼저 읽어보길 권합니다.
그럼 이 책의 쓰임새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풍성한 정보를 주는 책도 이론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책도 아니지만, 이 분야를 탐험할 때 꼭 필요한 격려와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창조과학이 주일학교에서부터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한국교회 현실에서 진화적 창조론은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낮설게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설득력이 있어보이긴 하는데, 그간 배웠던 것과 많이 다르네. 이거 받아들여도 될까?' 이렇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이 분야의 쟁쟁한 전문가 스물다섯명이 다양한 목소리로 "why not?"을 외쳐줍니다.
그 "why not?"의 하모니에 귀기울이다 보면, 스스로의 신앙적 지적 양심으로 성실히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로 진화적 창조론의 입장을 가지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이에게 진화적 창조론으로의 회심(?)이 굳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 입장을 가진 그리스도인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만 가질 수 있어도 큰 수확입니다.
간증집(?)이라 머리 싸매고 읽을 필요도 없이 술술 읽힙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큰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신학블록버스터 7화에서 소개한 책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fti0TRj8

Posted by S. J. Hong
,

<혐오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김선욱&최종원&김회권&송인규&송진순&정재영, IVP

한국교회탐구센터의 아홉번째 교회탐구포럼 발제문들을 엮은 책이다.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훌륭한 필자들이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니 역작이라 할 만한 책이 나왔다. 
굳이 한두 글을 찍어 별도로 언급할 수 없을만치 모든 필자의 모든 글이 좋다. 

<혐오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은 사실 절반의 진실밖에 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가 혐오를 만들어내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태도가 '기독교'라는 공통분모로 묶여 나도 모르게 나를 대표하고 있는 현실에 당황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이 책을 읽고 주위에 권하는 운동을 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한국교회는 타자를 향한 혐오의 태도로 인해 망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주위사람 한두명에게 책을 권하는 소박한 노력일지라도, 모이면 교회를 치유하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일단 읽으시라. 읽고나면 주위에 권하고 싶어질 것이다.

신학블록버스터 12화에서 소개한 책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1EeKBvIH2w

Posted by S. J. Hong
,


<만남>, 송인수, IVP

<만남>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대표의 설교를 엮어낸 책입니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실한 해석, 설교자가 살아온 래디컬한 삶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명설교집입니다. 강추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평신도 설교에 대한 제 단상을 나누는 글입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나서 결혼식 주례를 한번 해보았습니다.
마흔도 채 되기 전에 했던 인생 첫 주례가 제 인생에서 가장 부담스럽고 긴장되었던 순간 중 하나로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때 얘기만 나오면 매번 지금처럼 앓는 소리를 하지만, 정작 주례를 준비한 그 시간을 통해 저는 너무나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주례 설교를 준비하며 몇 번이고 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결혼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 때문에 결혼했으며 어떻게 결혼생활을 해왔는지, 나에게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고 아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수없이 묻고 또 물으며 성찰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이후 저의 결혼생활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중한 기회를 목사들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면 좋지 않을까.’
결혼식과 관련하여 점점 다양한 형태와 선택지들이 생겨나는 추세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리스도인 커플이 결혼할 때 목회자가 주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그로 인한 폐해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쪽과 독점하는 쪽 모두가 경험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얻지 못하는 쪽은 두렵고 떨림으로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마음을 새롭게 할 소중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독점하는 쪽은 ‘익숙함이 주는 무감동과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가령 제가 앞으로 수십 차례의 주례를 하게 된다면 분명 제 마음은 처음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몇 편의 썩 괜찮은 주례설교가 만들어진다면 돌려막기가 시작되겠지요. 돌려막기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매 결혼식마다 새로운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태도는 건조하고 직업적인 것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저는 결혼식 주례를 부수입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는 가능한 한 주례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누군가 주례 부탁을 해오면 그들에게 주례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솔직한 마음을 물어볼 생각입니다.
제가 주례를 설만큼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들이 알고 있는 목사 중에 그나마 부탁할만한 사람이었던 것인지를요.
만약 후자라면 반드시 목사가 주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저보다 더 그들에게 의미있는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라고 권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러한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솔직하게 던져서 그 질문을 통과한 커플들의 주례만 선다면 저의 주례 경험은 평생 다섯 번 이내가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러기를 바래봅니다.^^
주례의 권한과 책임을 목사가 독점하지 않고 평신도들과 공유한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자기 생에 한두 번 정도의 주례를 해 볼 수 있다면 그 경험은 이후 우리의 삶에 큰 유익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교회예배에서의 설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설교가인 목회자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급적 많은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나누어지는 것은 당사자와 교회에 큰 유익이 되리라 믿습니다.
반드시 형식이 설교일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공부 인도도 좋고 공동체에 유익이 될만한 주제에 대한 강의도 좋고 간증도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공동체를 향해 말씀하시는 통로가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충만을 구하게 될 것이고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더욱 힘쓰게 될 것입니다. 
아내가 조만간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물론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지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제 생각이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권위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염려하며 개탄합니다.
그 우려에 일면 공감합니다. 저는 건강한 권위는 공동체에 필요하다 믿습니다.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권위를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권위주의의 대안은 ‘권위의 제거’가 아니라 ‘권위의 공유’라고 믿습니다.
어찌되었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메시지를 독점하는 것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은, 교회에서 메시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 권한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 모두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되는 교회를 꿈꿉니다.


물론 모든 평신도가 송인수 대표처럼 설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만남>을 통해 평신도 설교의 전범을 보았습니다.
‘평신도가 무슨 자격과 역량으로 설교를 하겠냐’고 말하는 목사가 있다면 저는 말없이 그에게 이 책 <만남>을 선물하겠습니다.


Posted by S. J. Hong
,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김용규, IVP


김용규 선생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개정증보판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작년에 IVP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는 <신>의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강연했던 내용을 엮어낸 작은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접적인 답변은 얻을 수 있지만, 제목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책은 아닙니다.
책의 요지는 머리말에 나오는 다음 문단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나는 먼저, 기독교 신학은 지난 2천 년 동안 성서의 계시와 시대의 인문학,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즉 서로 이질적이고 때로 상반되는 둘이 만나 빚어낸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신적 구조물임을 밝힐 것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 안에는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의 통합과 융합을 이뤄 낼 수 있는 논리, 지식, 지혜, 경험이 쌓여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오직 기독교 신학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분열과 투쟁과 파국의 시대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차례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저자는 기독교 이천년 역사에 나타난 사상의 흐름을 간단히 (그러나 탁월하게) 훓어간 후에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까지 내달립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기독교가 제공할 수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 모든 일을 고작 문고판 110페이지만에 해낸 이 분은 대체...


물론 '오직 기독교만이 시대를 구원한다'는 자의식 과잉의 서사가 더이상 유효하게 작동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전하는 확신에 찬 소망이 저에게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신학블록버스터 2화에서 소개한 책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181IZglChw

Posted by S. J. Hong
,


<신학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복있는사람

 

복 있는 사람에서 2014년에 출간한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5판입니다.

국내에서는 그만큼 널리 읽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영미권 신학생들의 서재에는 웬만하면 한권씩은 꽂혀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신학입문서의 미덕은 깊이 있고 자세한 서술보다는 최대한 많은 논의를 다루는 포괄성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방대한 내용들 간에 계통을 잘 잡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정리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야말로 신학입문서를 쓰기에 적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역시 맥그래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신학입문서입니다.

 

이 책의 장점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째, 알차고 충실한 내용입니다. 입문서라 해서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았고, 입문 단계에서 알아야 할 내용을 최대한 담아낸 백과사전수준의 책입니다. 그러다보니 1100페이지가 넘는 무지막지한 벽돌책이 되버린 것이 함정입니다-.-;;

둘째, 기억하고 정리하는데 효율적인 구성입니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1부에서 교회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 중심의 자세한 서술이 아니라 사상과 인물 중심으로 간략하게 개관한 것입니다만, 이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이후 이어질 신학적 주제들이 시대별로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파악할 수 있는 통시적인 틀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나서 2, 3부에서는 일반적인 교의학의 순서를 따라 신학의 주요 주제들을 다루어 갑니다.

이런 구성을 취할 경우 해당주제가 자리잡은 통시적 위치와 공시적 위치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나투스 논쟁은 1부에서 교부시대에 다루어진 후 3부에서 교회론을 배울 때 다시 나옵니다. 이로서, 독자들은 도나투스 논쟁이 교부시대에 일어난 일이고 교회론에 관련된 내용임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뿐 아니라 이런 구성을 취하면 동일한 내용이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기억하는데도 효과적인 건 덤입니다.

단권으로 된 신학입문서 중에선 현재로서 가장 추천할만한 책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용도로도 좋고, 때마다 필요한 내용을 찾아 읽는 레퍼런스 용도로도 좋습니다.


P.S. 찾아보면 신학에 입문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반지성주의를 극복하려면 신학이 학자와 목회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접근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것이 되도록 신학의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들이 최근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그 시도들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학BlockBuster 1화 https://youtu.be/ycZungwllU8)
열심히 준비해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이 책을 신학블록버스터 13화에서 소개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u5BxsHdrbA


Posted by S. J. Hong
,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헬무트 틸리케, IVP


헬무트 틸리케가 교의학 첫 수업을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했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얇지만 뼈를 사정없이 때리는 책이다.
신학생과 기독교전임사역자라면 읽고 고민해봐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더구나 교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이 2인칭으로 생각하기보다 3인칭으로 생각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지는 않는지 똑바로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것은 가장 심각하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목회 질병의 초기 단계입니다. 목회자는 흔히 한 본문을 대할 때 마치 그에게 온 서신을 대하듯 열어 보기가 좀처럼 어려우며 "이 본문을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눌린 채로 그 본문을 읽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안셀무스가 <프로슬로기온>을 기도로 시작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그의 교의학은 기도하는 교의학이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그저 신앙심을 북돋우는 머리말이요 남다른 신앙을 보여주는 표지로 본다면 우리는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이를 다름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지극히 타당한 규범, 즉 신학 사상이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라는 공기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는 규범을 표현한 것으로 봅니다."


Posted by S. J. Hong
,

<살아있는 신>, 티머시 켈러, 베가북스

(현재 이 책의 판권은 두란노출판사로 넘어가서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 대략 10년 동안, 편식이라 할만치 독서에서 기독교 변증서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습니다. 
국내외 저자 가리지 않고 꽤 알려진 변증서는 닥치는 대로 다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읽다보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어 요즘은 잘 손이 가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후 줄곧 현재까지도 기독교변증은 항상 저의 중요한 관심사 중에 하나입니다.


최근 팀 켈러의 기독교 변증서 <살아있는 신, The Reason for God>을 읽었습니다.
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살아있는 신>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으로는 제가 지금껏 읽은 모든 변증서 중에 가장 훌륭한 책입니다.
(학문영역에서의 변증으로 눈을 돌리면, 가장 탁월한 사례는 단연 톰 라이트의 역사적 예수연구 3부작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 대작 시리즈를 통해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가 실제 역사에 거의 부합함을 학문적으로 논증해냈습니다. 
그 중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은 팀 켈러의 이 책에서도 예수의 부활에 대해 논증하는 부분에서 극찬과 함께 매우 많이 인용됩니다. 
예수사건의 역사성을 학문적으로 탁월하게 논증해낸 신약학자의 결과물이 동시대 가장 뛰어난 변증가의 책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니 감격스럽습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믿지 못할 이유로 제시하는 것들에 대해 대답을 주고 2부에서는 기독교를 믿어야 할 이유에 대해 설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Q&A라는 단조로운 구성으로 이렇게 훌륭한 책을 써내다니요...ㅠㅠ).


팀 켈러는 무신론자들을 향해 무신론적 세계관이 가진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엄밀하게 적용한다면 그들은 어떠한 도덕, 윤리, 가치판단, 신념 등도 가질 수 없음을 힘있게 논증합니다.
무신론의 논리적 귀결과 무신론자들이 실제 삶을 영위하는 방식 사이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팀 켈러만의 독창적인 시도는 아닙니다.
프란시스 쉐퍼(또한 그의 스승 반틸)에서부터 C.S. 루이스, 존 스토트 등 기라성 같은 20세기 변증가들이 모두 시도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팀 켈러의 강점은 그것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도록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보여주는 기독교에 대한 조망이 매우 넓고 깊고 풍성하다는 점입니다. 
변증서의 목적이 개인의 회심을 돕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변증서들이 복음이 인간 개인에게 갖는 의미에 국한하여 접근하는 것을 봅니다. 
일단 예수를 믿도록 돕고, 믿은 이후에 복음이 가진 더 넓은 의미(사회적 함의, 우주적 함의)를 가르쳐 줄 수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선택과 집중인 셈이지요.
하지만 팀 켈러의 변증에서는 개인의 회심뿐만 아리라 이 세상 전체를 회복해가시는 하나님나라 복음의 관점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복음과 기독교를 온전하게 이해하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또한 이 책은 비신자들뿐만 아니라 신자들을 향해서도 매우 강력한 도전을 줍니다. 
팀 켈러가 복음의 정수를 깨닫지 못하고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을 향해 얼마나 적실한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개정판 제목 <탕부 하나님>)이라는 작은 책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신자들이 진짜 복음을 믿고 회심(?)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입니다. 어쩌면 신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팀 켈러의 <살아있는 신>,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일본 기독교에 대한 공부의 일환으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소설은 천주교가 일본에 전래된 후 가장 혹독한 박해의 시기였던 17세기, 두 명의 포르투갈 수사가 일본에 잠입해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수사가 배교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박해를 피해 숨어있는 일본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그 중 한 수사의 눈을 통해 당시 일본의 숨은 그리스도인의 고단한 삶과 신앙, 배교와 순교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냅니다. 
수사는 자신이 돌보던 신자들이 잔인하게 죽임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배교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며 페레이라 수사 배교의 진실에 점차 접근해갑니다.
스포일러는 자제하겠습니다.


읽고나서 <침묵>이 왜 좋은 책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처럼 ‘인간의 고난과 고통에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라는 질문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이지만, 그 외에도 신앙, 교회, 인간의 본성, 십자가의 의미 등 많은 것에 대해 깊은 통찰을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고난의 문제에 대해 그 나름의 신정론적 답변을 주고 있지만, 함께 고난당하는 하나님, ‘밟히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통해 알게 된 오직 그 하나님뿐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Posted by S. J. Hong
,

<뜻밖의 회심>, 로자리아 버터필드, 아바서원

 

이 책은 그리스도인을 경멸했던 어느 레즈비언 영문학자의 믿음의 여정이라는 표지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신앙으로 인해 이른바 탈동성애를 하게 된 레즈비언 여성의 수기입니다.

탈동성애자의 수기라고 하는 순간,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기존 입장에 따라 이 책에 대한 사전판결이 내려질 것이 예상됩니다.

누군가는 읽기 전부터 이 책을 환영하고 다른 누군가는 기각할 것입니다.

저는 그 점이 참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양쪽 입장을 가진 사람 모두의 허를 찌르는 이 책의 의외성 때문입니다.

그 의외성 몇 가지를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저자는 탈동성애자이지만 반동성애자라기엔 딱 들어맞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속했던 퀴어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교회와 퀴어공동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동역하기를 기대합니다.

심지어 한 강연에서 그녀는 자신이 목회자의 아내가 된 현재 행하고 있는 손님 초대와 환대의 많은 부분은 자신이 이전에 속했던 퀴어공동체에서 배웠던 것이라고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저자의 존재는 소수의 탈동성애자들이 반동성애의 기수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우리가 가지게 된 선입견에 도전합니다.

 

또한 저자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담담히 기술할 뿐, 다른 동성애자들을 교정 또는 교화하려는 의도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며 동성애자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온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으며 그 신앙 여정에 동행해 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어떠하든 간에 성소수자들에게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따라서 들어야 할 메시지는 듣지 않고 이 책을 탈동성애가 가능함을 지지하는 증거자료 정도로 사용하는 것은 저는 오독이자 오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모든 동성애자들의 탈동성애가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비약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동성애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책을 읽고 내린 제 판단으로는, 저자는 성향상의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신념에 의해 레즈비언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이거나 또는 양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측해봅니다.

 

한편, 동성애에 대해 긍정의 입장인 이들은 이 책을 싫어하리라 예상됩니다.

실제로 책 제목을 듣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에게도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모든 탈동성애는 성소수자의 자기다운 삶에 대한 위협이자 억압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저자의 탈동성애는 누구의 강요나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탈동성애한 후의 저자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읽는 이가 기존에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든 간에 묵직한 도전과 질문 앞에 서게 하는 이 책은 이 이슈에 대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참고해야 할 매우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S. J. H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