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소설을 소개하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매너가 아니다.
대신 이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게 되었는지, 얼마나 충실히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민방위훈련에 안보교육이라는 시간이 있다.
극우세력의 안보장사에 기여하는 아주 신박한 헛소리들이 쏟아지는데, 이걸 듣고 앉아 있는게 아주 고역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안보교육도 좀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가 불가능한 것과 비슷한 이치로,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더욱 잘 들리고, 듣다보면 결국 짜증나고 마는 일이 민방위훈련때마다 반복되었다.
재밌는 책을 일부러 골라가기보다는 보통 그 즈음 읽던 책을 가져가곤 했는데, 귀를 뚫고 들어오는 헛소리를 막아내기엔 가져간 책마다 번번히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번 민방위훈련을 앞두고 신중히 선택한 책이 이 책이었다.
믿고 읽는 정유정이니까.
결과는?
이번 안보교육 한시간은 거의 완벽히 내 인생에서 지워졌다.
무아지경, 그리고 타임워프를 경험하고 싶다면 정유정의 소설을 추천한다.


덧. 무서운 책 싫어하면 읽지 마세요.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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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은행나무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씨가 2000년대에 나온 가장 재밌는 소설 두 권 중 하나로 이 책을 꼽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된 책이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독서팟캐스트를 진행할 정도의 독서광이 십년 넘는 기간동안 가장 재밌는 소설로 꼽았다면 읽어볼만하겠다 싶었다.
영화에 대한 극찬을 듣고나서 보면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대체로 실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2000년대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을 듣고나서 읽는지라 실망할만도 했으나, 다 읽고 났을 때에 이동진씨에게 낚였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소한 말 한 마디도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이만 자제하겠다.
소재가 독하고 분위기가 스산해서 널리 추천하기는 좀 그렇다.
그러나 잘 쓰여진 이야기의 압도적인 힘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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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기 읽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남의 여행기를 읽느니 직접 여행을 하지'라고 말하며 사실은 둘 다 잘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참 오랜만에 읽은 여행기다. 
<7년의 밤>과 <28>을 읽고 정유정 작가의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지인의 추천을 받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나와는 코드가 안 맞았는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오래 붙들고 있게 된 책이다. 결국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다.ㅋ
여행묘사가 잘 와닿지 않아 지루한 부분이 많았는데, 워낙 필력이 뛰어난 작가이니 글탓일리는 없겠고 히말라야 트래킹이 나에게 워낙 생소한 영역이어서 그랬던 거 같다.
하지만 추천대로 정유정의 매력과 유머감각이 철철 흘러넘치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히말라야 트래킹 이야기보다, 여행을 가게 된 동기와 여행을 마친 감상인 처음과 끝부분에 공감가는 게 많았다.
소진된 자신을 일으켜세우고 세상과 다시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의 여행으로 밀어넣은 작가의 그 절실함이 가슴뭉클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장을 덮는데 여행뽐뿌가 전혀 안 오는걸 보니 역시 여행기는 나랑 안 맞는거 같다.
대신 책을 덮는데 달리기뽐뿌는 강하게 왔다.
그래. 히말라야는 모르겠고 북악스카이웨이를 힘차게 달려보자꾸나.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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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로 영화 '감기'가 새삼 붐을 이루었다고 한다. 혹시 이 책의 판매량에는 변화가 없었는지 궁금하다.


치사율이 100%에 가까운 '빨간눈 괴질'이라는 무서운 질병이 소설 속 가상도시 화양을 휩쓸면서 순식간에 그 곳은 죽음의 땅이 된다. 
이 병이 사람과 개 사이에 전파가 가능한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양 전역의 개들은 무자비하게 살처분된다.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화양을 철저히 봉쇄하기로 한다.
화양 밖으로 나가는 모든 도로가 폐쇄되고, 산을 넘어 화양을 빠져나가려 했던 사람들은 군에 의해 사살당해 암매장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스포일러차단기작동‬


작가는 구제역파동 때에 수많은 돼지떼가 잔혹하게 살처분되는 영상을 보고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처럼 가축을 대규모로 서슴없이 살해하는 인간이 소위 반려동물이라는 개에게는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같은 인간에게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인 셈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극한상황에서의 인간본성, 생의 의미와 구원의 문제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며,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적 모티브도 담겨있어 더욱 의미심장하다.
재작년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피서용으로 이 책을 끼고 다녔다고 하는데,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단지 소설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부분이 많아 더욱 등골이 오싹하다.
나는 이 책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겪고 싶지 않다.
부디 소설 속 이야기에만 머물기를...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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