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기독교>, 미로슬라브 볼프 & 라이언 매커널리린츠, IVP 


이 책의 서문에서 공저자인 볼프와 그의 제자 라이언은 이 책을 <광장에 선 기독교>의 자매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작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기독교가 공적영역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정치 전략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소개했던 볼프는, 이 책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공적 신앙을 실천할 때 각 영역별로 어떤 그림이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개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루는 영역은 부, 환경, 교육, 일과 안식, 가난, 대출과 대부, 결혼과 가정, 새 생명, 건강과 질병, 노후의 삶, 생의 종말, 이주, 치안, 형벌, 전쟁, 고문, 종교와 무종교의 자유로 매우 다양합니다. 

얇은 책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때려넣다보니(?) 한 주제에 10쪽 미만의 짧은 분량밖에 할애하지 못했지만, 그 안에 필수적인 내용을 오롯이 담아내는 저자들의 내공이 놀랍습니다.

책의 두께에 눌려서 존스토트의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도전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대체재가 될 거 같습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 책이 출간되어 참 시의적절하다 싶습니다. 

투표는 기독인의 공적 참여 중 가장 중요한 실천 중 하나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와 정당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독신앙의 공공성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해가며 이 책을 읽는 것도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각 장 끝에는 독자들의 더 깊은 공부를 돕기 위해 해당주제에 대해 추천할만한 책과 자료들을 소개해두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저작들이라는 점입니다.

이에 출판사가 각 주제별로 추천할만한 국내출간도서의 목록을 덧붙여 두었는데, 이 목록이야말로 이 책의 보물입니다.

이 목록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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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종말>, 미로슬라브 볼프, IVP


<기억의 종말>은 평화와 화해의 신학자 볼프가 '기억'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쓴 책입니다.
볼프는 이 책에서 기억이라는 주제 전반에 대해 이러저러한 추상적 논의를 전개해 가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당한 피해자의 기억'으로 초점을 좁혀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 사유는 볼프가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군복무할 때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로 의심받아 G대위에게 비인도적인 함정수사 및 심문을 당했던 고통스런 기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볼프는 그 기억과 씨름하는 가운데, '가해자의 악행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피해자에게 진실하게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이러한 피해의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피해의 기억은 마지막 때에 어떻게 되는가' 등의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고 차근차근 답해 나갑니다.


이 책은 출간시점이 세월호2주기와 가까웠기 때문에 기억과 관련한 사회적 쟁점(세월호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등)과 관련하여 많이 회자되고 있는 듯 합니다. 
출간좌담회에서도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기억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포함되어 있던 걸 보면 출판사의 홍보방향도 그러했던 듯 합니다.
그런 거시적 안목으로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데 조금의 이의도 없지만, 저는 그보다 '나의 개인적인 상처의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 지금도 여전히 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때 내적치유를 주제로 한 책들을 탐독했었고, 일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확실히 검증된 책이 아니면 잘 읽지 않습니다. 
치유의 소망을 불어넣고서 믿음을 격려하며 마무리하는 천편일률적 패턴이 내용없는 말잔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치유하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피상성이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그 어떤 내적치유서적보다도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실하게 기억할 의무'에 대해 읽으며 나의 상처의 기억은 가해자에게 공정한가 돌아보기도 했고, 기억하기의 궁극적 목적인 용서와 화해를 위해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이 책 한 권과 진득하게 씨름하는 것은 좋은 내적치유수양회를 다녀온 것에 비견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가 이 책의 홍보컨셉을 '치유'로 잡아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의 미래'를 다루는 3부에서는 소망으로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될만한 부분은 3부입니다.
저자는 이 땅에서 있었던 악행의 기억이 천국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신학적 가설을 제안합니다. 
그는 성경적 신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예상되는 반론을 차분히 반박해갑니다. 
볼프의 가설이 옳음을 입증할 만한 성경적 근거가 충분히 명시적이지 않으므로 다르게 볼 여지도 있지만, 저는 잠정적으로 현재는 볼프의 가설에 동의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천국을 더욱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훗날 그 나라에서 나에게 해를 입힌 이들, 그리고 내가 해를 입힌 이들이 그 모든 아픔을 잊고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고 서로를 기뻐하는 비전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굉장한 책이며, 개인적으로는 다 읽고 눈물이 핑 돌만치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기억의 종말>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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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를 꼽는다면 거기에 미로슬라브 볼프를 뻬놓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볼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통해서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몸소 체험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볼프를 평화와 폭력, 배제와 용서의 문제에 천착하게 만들어 <배제와 포용>, <베품과 용서> 같은 명저를 쓸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동유럽 출신의 볼프는 북미와 서유럽 학자들의 관심과 의제설정이 지배하는 신학계에 비주류의 관심과 사유를 불어넣어주는,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광장에 선 기독교>는 볼프가 공적 신앙에 대한 담론을 간결하게 펼쳐보인 얇은 책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사사화에 반대하여 신앙의 공공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신학적 기획은, 기독교윤리학 분야에서 '공공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크게 붐업된 바 있습니다.
공공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는 막스 스택하우스인데, 저는 신대원 시절 스택하우스의 신학을 개략적으로 공부해보았습니다.
기독교신앙이 사회의 에토스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택하우스의 신학은 기독교윤리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신학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에 세례를 준 '신자유주의 어용신학'이 아니냐는 의혹과 비판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이러한 비판을 하는 이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저는 이 비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입니다).
볼프의 담론은 신앙의 공공성 실현을 이야기하는 것이 꼭 스택하우스의 공공신학과 같은 방식이 아니어도 됨을 훌륭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겐 스택하우스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거부감을 힐링(?)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볼프가 신앙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역시나 볼프 특유의 관심이 철저히 녹아 있습니다.
종교갈등으로 인한 긴장이 점점 커져만 가는 시대에 공적영역에서 신앙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발하면서도 어떻게 타종교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볼프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제안합니다(그게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911과 이라크 전쟁을 경험한 북미에는 매우 절실한 주제이고, 한국사회에도 점점 더 논의의 필요성이 커져가는 주제입니다.


볼프의 대표작 <배제와 포용>과 다루는 주제가 꽤 겹치지만 이 책이 훨씬 얇고 간결하므로, <배제와 포용>을 읽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신앙의 공공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볼프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어느 책으로 시작할까 고민이셨던 분들은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 듯 합니다.
아마도 이 책을 통해 볼프에게 푹 빠지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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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사회와 교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가 가득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배제의 세상에서 어떻게 포용의 삶을 살아낼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깊이있는 신학적, 철학적 탐색이다. 저자는 포용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성서신학, 근대철학, 포스트모던철학과의 흥미진진한 비판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근대철학에 대한 비판은 수많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을 요약하여 되풀이하고 있는거라 그다지 새로울 것 없지만, 포스트모던철학에 대한 저자의 반론은 너무 예리하고 정확하여 이에 대한 설득력있는 반론이 과연 가능한가 싶을 정도다.

이 책은 포용을 말하면서도 이런 책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포용과 정의의 문제 사이의 긴장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는 드문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어느새 자신의 적들의 모습을 닮아버린 이들, 반대로 포용이라는 명목으로 무색무취의 중립의 자리에 안주하고자 하는 이들 양쪽 모두를 뒤흔들어놓고 괴로움을 던져주는 책이다.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괴로웠고 혼란했다. 하필 이 책을 읽었던 기간이 남북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고, 차별금지법 반대, 박성업 동영상 등 한국교회 일각의 극단적 배제의 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시기였던 탓도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고민은 여전하고 명확한 답이 내려진 것은 없지만, 이 책이 던져준 화두를 붙들고 이 책이 어렴풋하게 비추어준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가야겠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와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늘 그렇듯이 문제는 '대중성'이다. 이 탁월한 책의 엑기스만을 뽑아낸, 쉽고 얇은 책이 있으면 여기저기 싸들고 다니며 권할텐데 말이다.
그런 책 있다면 누가 좀 댓글에 추천해주시길...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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