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에서 김어준은 그 책을 쓰게 된 배경으로 아주 재미있는 썰을 푼다.
그는 돌연 진보진영의 스타로 떠오른 조국의 등장에 환호했으나, [진보집권플랜]을 집어들고는 서문만 읽고 덮고 말았단다.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재수 없다가 아니라.
그리고 재미, 없다.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전자는 위험하고 후자는 안타깝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진보집권플랜]에 대한 김어준의 커멘트이다(하지만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맥락상 심각한 비난이나 야유가 아니라 애정을 담은 조크임을 알 수 있다).
의미를 풀어본다면, ‘재수 없을 수, 있겠다’는 조국이 너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과 그의 고고함, 그리고 모범생스러운 자의식이 맞물리면 자칫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이며, ‘재미없다’는 그의 지나친 반듯함과 진지함이 흥을 떨어뜨린다는 우려이다.
그래서 그는 조국이 결여(?)하고 있는 재미와 천박함을 가지고 조국을 측면지원하기 위해 대담집 출간에 착수했단다(장르를 대담집으로 정한 이유는 진보집권플랜이 대담집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대담이 한창 진행되는 중에 조국신드롬이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았다. 그는 매우 뻘쭘했으나, 이왕 떠든 김에 하고 싶은 얘기 다 풀어내보자 해서 대담을 계속 진행했고 그래서 엮어진 책이 [닥치고 정치]였던 것이다. 매우 김어준스러운 집필동기가 아닐 수 없다 :)

약간 공감했다. 내가 이전까지 유일하게 읽은 조국의 책은 [성찰하는 진보]였는데, 너무 지당하고 반듯한 말씀을 하는 점이 오히려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진보집권플랜]이 화제가 되었을 때도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김어준의 글을 읽다가 이 철지난 책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드디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재수 없지 않았다. 그리고 재밌었다.”
사실 그 이상이었다. “자랑스러웠다.”
사전에 질문을 전달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진행된 대담에서 조국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인터뷰어 오연호의 말대로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림이 있음이 느껴졌다.
한국사회 전반의 이슈들에 대해서 앉은 자리에서 꽤 훌륭한 대안들을 쏟아내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전체적인 그림을 이 정도로 그려낼 수 있는, 이만한 인물이 진보진영에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조국신드롬은 계속되어야 한다. 정치인 조국을 기대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사회를 위해 앞으로도 의미있는 역할을 감당해주었으면 좋겠다.
전달력도 발군이었다. 이 분의 역량은 스스로 집필할 때보다 좋은 인터뷰어와의 대담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싶었다.

책의 말미에서 오연호는 보수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물론 이 책은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어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진보 개혁 진영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어떻게 집권 계획을 설계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보수 세력, 그래서 진보와 선의의 경쟁을 해보고 싶은 보수 세력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맞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그림이 진보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초 설계도가 되고, 보수에게는 자신들의 대안을 발전시키기 위한 신선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의 한가운데를 펴면 양쪽 페이지에 오연호와 조국이 마주본 얼굴이 꽉차게 담겨 있는 사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책 전체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짧은 대화가 실려 있다.

오연호: 20대 청년들 스스로 자기 세대의 문제를 가지고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조국: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 세력이든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못한다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진보집권플랜] 출간 후 1년... 정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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