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한국이 싫어서><표백>의 작가 장강명의 작품이다.

<표백>과 마찬가지로 이십대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불행하게 살 수 없어 호주로 홀연히 이민을 떠난 한 20대 여성의 분투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표백>처럼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주인공의 좌충우돌 고생담을 오히려 밝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그려냈다.

그런데도 읽고나면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한국사회는 과연 젊은이들이 살아갈 만한 곳인가하는 묵직한 화두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던진다.

계속 주시하며 읽어야 할 작가다.

Posted by S. J. Hong
,


<표백>, 장강명, 한겨레출판

 

장강명의 이름을 널리 알린 문제작이다.

88만원세대, N포세대라 불리는 이삼십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세대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활발히 일어난 바 있다.

하지만 장강명의 <표백>은 어떤 사회학 이론과 통계자료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만들어낸다.

 

장강명이 소설 속의 한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우리 시대는 완성된 사회.

흠없이 완벽한 사회라는 뜻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싸워 얻어낼 대의나 이뤄야 할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산업화세대에 의해 시작된 경제성장도 이제는 거의 한계치에 이르렀고, 486세대에 의해 정치적 민주화 역시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물론 최근에 이명박근혜 정부와 같은 준독재정권도 출현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들도 민주주의시스템 안에서의 나쁜 정부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도 붙들지 못하고 어떠한 성취도 이루지 못하고 표류하는 젊은이들을 무색으로 표백된 상태에 빗대어 표백세대라 이름붙인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의 소설 속 인물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치밀하게 진행해 놓은 예비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추종자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에 의하면 그들의 자살은 삶을 비관해서 하는 일반적인 자살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의미와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죽음을 막을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도 있을 법한 이야기,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처절한 절규와 몸부림의 이야기가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내 나이도 내년이면 어느새 마흔이다.

88만원세대라 불리기 시작했던 세대의 맏형으로서 나는 이 책의 질문에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까?

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붙들고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복음과 교회 안에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표백된 젊은이들보다 더욱 허옇게 표백된 우리시대의 복음과 우리 시대의 교회가 그들에게 정말 와닿는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한없이 슬프다

Posted by S. J. Hong
,


<가면산장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기가 막힌 반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호기심에 읽어보았지만, 뭐랄까 그냥 밋밋했다.

국내에서 다소 과대평가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보다 앞서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들의 혼합물 같은 느낌을 받는다.

1인칭 서술트릭으로 범인을 감춘다는 점에서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연상되며,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공범이라는 점에서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떠오르고, 살인사건을 위장한 연극이라는 설정은 영화 <죽음의 만우절(April Fool’s Day, 1986)>과 유사하다.

좋은 재료들을 많이 섞어보았지만 결국 맛있지는 않은 음식과 같이 되어버렸다.

아쉬웠지만 저자의 초기작품임을 감안해서 보면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인칭 서술트릭을 잘 발전시켜서 이 책으로부터 6년 후에, 결국 <악의>라는 역작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저자의 성장과 발전의 증거로는 의미있겠으나, 희대의 대반전이 있는 작품이라는 식으로 알려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나처럼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S. J. Hong
,


<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포레

 

최근 일본추리소설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다.

검증된 작가들의 대표작 위주로 읽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

이 책 역시 노리즈키 린타로의 대표작이고 호평들이 많아 읽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이 책에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주요 장치는 결국 1인칭 서술트릭인 셈이다.

이 트릭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큰 반전이겠지만, 이제 추리소설에서 서술트릭이라는 요소가 꽤 흔해졌음을 감안하면 트릭을 잘 쓰는 것이 정말 중요해졌다고 본다.

1인칭 서술트릭을 활용하여 범인을 감추거나 독자의 허를 찌른 책 중에서 최고봉을 꼽으라면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들겠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트릭의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임이 분명한데다가 최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명실공히 최고봉이라 할만하다.

<악의(1996)><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과 무려 70년의 시간차가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70년 동안의 추리소설의 발전을 반영하여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현대에는 이 정도의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겐 1인칭 서술트릭을 활용한 책이 만족스러우려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보다 오래 된 작품이거나, <악의>보다 잘 쓴 책이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요리코를 위해>는 다소 아쉬운 책이었다.

서술 트릭의 완성도도 아쉬웠지만, 밝혀진 진상에서도 다소 논리적 비약이 느껴져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나에겐 이래저래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한 책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극찬이 쏟아지는 책이다

아쉬웠다는 나의 감상은 매우 주관적이며 소수의견에 해당함을 밝혀둔다.

Posted by S. J. Hong
,


<64>, 요코야마 히데오, 검은숲


요즘 일본 추리소설 삼매경입니다. 얼마전 제 인생 최고 추리소설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http://warinlife79.tistory.com/238가 갱신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악의>가 워낙에 역작이어서 이 순위는 당분간 바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만에 이 책이 <악의>를 밀어내고 제 마음 속 추리소설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입니다.

소설제목인 64는 미제사건으로 남아버린 쇼와64년의 여아유괴살해사건의 사건명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과 부서 간의 갈등, 그리고 언론을 비롯한 경찰 외부 조직과의 긴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루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범죄사건의 미스테리를 밝혀가는 요소 못지 않게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에, ‘경찰소설의 대가'로 불립니다.

<64>는 그가 잘 하는 이것을 가장 잘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4분의 3 정도가 경찰조직 내외부의 갈등과 그 안에서의 주인공의 고뇌를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서 마치 '미생 중년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로 출간해도 그 자체로 완성도 높고 재밌는 작품일 정도인데, 거기서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이 책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이렇게 소설이 마무리되어 가는구나 싶을 때쯤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터지며 그것이 64사건과 연결되어 결국 과거와 현재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는 소설의 마지막 4분의 1은 정말 압권입니다.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64>에 관련된 여러 글을 검색하고 드라마, 영화 등을 찾아보며 한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64앓이'라 부를 정도로, 저 같이 <64>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제 인생 최고의 추리소설 <64>를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장강명, 문학동네

 

공모전 싹쓸이(?) 작가 장강명의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시간순서를 뒤섞은 독특한 서술방식, ‘우주알이라는 SF스러운 소재의 도입 등 기법상 흥미로운 점이 매우 많은 소설이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독특하고 현란한 문학적 장치로만 승부하는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을 묵직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댓글부대>를 쓴 이가 <그믐>을 쓴 이와 동일인이라니, 작가의 스펙트럼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래서 장강명에 연달아 놀란 나는 이제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그의 소설 <표백>으로 향한다

Posted by S. J. Hong
,


<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창해

 

한 작가의 최고의 작품은 가장 마지막에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최고의 작품이 준 충격과 감동 때문에 기대치가 높아져버려 다른 작품들에 만족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독서는 매우 악조건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베스트로 인정하는 <악의>를 읽고나서 만난 동일저자의 첫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 악조건을 감안해서 본다면, 매우 훌륭한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했지만, 어떠한 낚시도 없이 모든 떡밥을 수거했다.

(나는 자신이 던진 떡밥을 모두 수습해내는 것을 추리소설작가의 최고의 미덕으로 본다. 그걸 못 해내면 미드 <로스트> 같은 꼴이 난다.)

이 책도 수작이다.

만루홈런의 감동 이후에 친 안타 역시 깨끗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훌륭한 작가다.

Posted by S. J. Hong
,


<사라진 이틀>, 요코하마 히데오, 들녘

 

존경받는 고위 경찰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수했다. 치매에 걸린 아내의 애원에 의한 촉탁살인이다.

그런데 범행 후 자수하기까지 이틀의 행적이 묘연하다.

그 이틀의 행적을 밝히려는 자들과 묻어두려는 자들 사이의 대결이 <사라진 이틀>을 이루는 스토리라인이다.

이런 단순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은, 결국 그 이틀의 전모가 드러날 때 독자에게 충격 또는 감동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납득할 만한가에 성패가 달려있다.

오직 사라진 이틀에 대한 것으로만 소설 전체를 끌고 가기에, 읽다보면 심지어 작가가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마무리를 잘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지...'

그럼 결말은 어떨까?

이 소설은 나오키상의 결선까지 올라갔다가 낙선했는데, 평론가들이 제시한 낙선사유가 '결말의 현실성 결여'였다고 한다.

이 낙선사유는 이후 평론가와 대중 사이의 논쟁으로까지 번져가기도 했으나, 이 소설은 그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10'에서 1위에 올라 작품성 논란을 불식시켰다(나오키 의문의 1).

이 일로 저자가 '나오키상과 결별선언'까지 했다고 하니, 이 분도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쓰고 한성깔한다고 읽는다...^^;)한 것 같다.

나 역시 나오키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결말은 나에게 매우 만족스러웠다. 충분히 수작이라 할만하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푹 빠져 있던 내게, <사라진 이틀>은 요코하마 히데오라는 이름은 내 뇌리에 분명하게 각인시킨 소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요코하마 히데오의 대표작<64>로 주저없이 내달린다.

 

Posted by S. J. Hong
,


<댓글부대>, 장강명, 은행나무

국정원 댓글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소설로서, 제3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내가 읽은 장강명의 첫 소설인데, 사람들이 왜 장강명 장강명 하는지 이 한 권으로도 충분히 알 것 같다.
이게 이미 일어난 일, 또는 앞으로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한 일을 가지고 쓴 소설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싶지만, 소설 속에 나타나는 유흥, 접대 문화에 대한 선정적인 묘사가 추천을 주저하게 만들기는 한다. 
굳이 그 정도의 분량과 횟수로 다루어야 했나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단지 독자의 흥미유발을 위해서만 넣은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댓글조작 배후에 있는 이들의 비도덕성, 그리고 댓글조작요원들의 찌질하고 안쓰러운 삶을 보여주는데 필요한 부분이었던 거 같다.

아무튼 강추한다.
읽고 '와, 이런 세상이구나' 깨닫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Posted by S. J. Hong
,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한창 붐일 때도 관심없었고 저자의 최근 강연꼬장사태 이후 더욱 관심없었는데, 스승님이 빌려주시면서까지 강추하셔서 읽게 된 책이다.


'(근대) 규율사회가 (후기근대) 성과사회로 전환되면서 타자에 의한 착취가 자기 착취로 바뀌었고, 그 자기착취의 결과로 나타나는 대표적 병리현상이 우울증'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매우 예리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타자에 의한 착취가 자기 착취로 바뀌었다는 진단에는 절반 정도만 동의하게 된다.
나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도 여전히 타자에 의해 착취당하는 사회다.
다만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더 쉽게 착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개인의 욕망과 두려움을 자극하여 스스로 열심히 자기착취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급모순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해소된 독일 같은 곳에서는 저자의 진단이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사회에는 차라리 오찬호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보여준 진단이 더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역시 대단한 통찰력을 가진 학자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느꼈다.

Posted by S. J. H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