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어제 나가수를 무한반복 리플레이 하고있다. 
이 사람들, 다들 어쩌려고 이 정도까지 했는지...ㅜㅜ 
한 500번은 돌려듣게 될 거 같은 노래가 다섯 곡은 된다.

그 중 최고의 무대는 나에게 단연 YB의 <내 사람이여>였다.
탈락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탈락 발표되기 전부터 이미), YB의 무대에는 다른 무대와는 차원이 다른 울림이 있었다.

명예졸업이 걸린 마지막 무대에서 지난 경연 7위라면, 순위를 올리기 위한 현란한 테크닉이나 감정과잉창법을 시도하고자 하는 유혹이 매우 컸을 것이다(사실 순위를 올리기로 작정하면 밴드가 시도할 수 있는 건 정말 많다). 
그런 압박 속에서도 가사가 주는 감동에 귀기울일 수 있도록 담백하게 편곡하고 노래한 YB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진정 노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노래...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로 활동하시는 백창우 님이 만든 노래란다.
지난 6월에 홍순관 "춤추는 평화" 100회 기념공연에 갔었는데, 그 날 백창우와 윤도현이 나란히 함께 게스트로 나왔었다. 기인같은 포스를 풍기던 백창우 님은 알고보니, 입만 열면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만드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그 때만 해도 두 달 후에 윤도현이 백창우가 만든 노래를 부르며 나가수 무대를 떠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우림의 김윤아는 "YB의 에너지는 분출하는 에너지... 이런 강렬한 에너지의 근본은 좋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 곡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고 말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평화콘서트에 달려와주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에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갖다 쓰세요!"라고 말하던 윤도현.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부르며 사는 백창우.

어린이를 사랑하는 고운 마음씨로 만든 노래를 좋은 마음을 가진 밴드가 어떠한 기교도 부리지 않고 진심을 담아 불렀다. 
그래서 어제 YB의 무대에는 순위를 넘어서는 최고의 감동이 있었다... 


내 사람이여 

                                      백창우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
너 가는 곳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
음 눈물이 고인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내가 너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노래 고운 한 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주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이토록 더운 사랑 하나로 네 가슴에 묻히고 싶네
그럴 수 있다면, 아아 그럴 수 있다면
네 삶의 끝자리를 지키고 싶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너무 멀리 서 있는 내 사람이여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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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힘을 갖고 있다. 특히 교리보다 이야기가 선호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기독교 진리를 담고 있는 좋은 이야기는 명제적 교리가 줄 수 없는 깊은 감동과 내면의 울림, 그리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소설 <오두막>은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이 책은 고통과 악의 문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 의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 천국과 지옥, 구원과 용서의 문제 등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이야기 안에 잘 담아낸 탁월한 소설이다. 저자는 풍부한 신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며 깊은 묵상과 탁월한 글재주의 소유자이다. 저자는 세상과 기독교 진리에 대해 소통하려고 사려 깊고 신중하게 이 책을 쓴 듯하다. 주인공 맥은 깊은 아픔을 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너무도 잘 반영하고 있어서 그가 경험한 치유와 회복은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동일한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제공한다. 거기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재미와 흡입력에 감동까지 갖추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탁월한 이야기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탁월한 이야기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에 매료될 때 우리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그 이야기 전체를 진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 앞에서 차가운 논리의 메스를 들이대어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가려낸다는 것은 뭔가 낭만적이지 않고, 좋은 이야기에 보여야 할 합당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저자의 신학적 통찰과 깊은 묵상이 주는 풍성한 양분을 섭취하면서 그와 동시에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신학적 오류와 왜곡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섭취하게 될 수 있다. 여기서 건강한 교리가 필요하다.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교리가 폐기 처분되는 것은 아니다. 교리와 이야기는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를 향해 말씀하시는 통로로서 건전한 교리와 좋은 이야기는 서로를 돕고 세우며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두막>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독교 진리의 소통 수단으로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건전하고 균형잡힌 해설서 역시 더욱 필요하다.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책이다. 저자인 로저 올슨은 신학적 건전성과 성실성에서 충분히 검증된 신뢰받는 신학자이다. 게다가 저자 자신이 <오두막>의 맥처럼 역기능 가정 경험을 통해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오두막>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가 <오두막>의 애정 어린 지지자라는 사실이 이 책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오두막>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읽었기 때문에 일부 내용은 현재 논란거리가 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관점으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저자는 <오두막>에서 논란거리를 제공한 많은 부분들이 실제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오히려 성경의 진리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탄탄한 신학적 기반과 성경적 근거로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분명히 언급해야 할 일부 신학적 오류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오두막>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필자의 생각과 비슷해서 참 반가웠다. 필자는 <오두막>을 정말로 좋아한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료되었으며 <오두막> 전도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이미 추천한 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면 약간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을 읽고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오두막>과 함께 읽는다면 부족한 2%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이다. <오두막>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권하게 될 모양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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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오래전(1989)에 쓰여졌지만 경제학 입문서로서 지금까지 커다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하버드에서 했던 '경제사상사'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그 강의로 하버드대 '최우수강의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왜 저자의 강의가 최우수강의상을 수상했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얇다고 볼 수 없는 이 책을 나는 단 하루만에 읽어치웠다. 어떠한 의무감이나 목표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빠져들어서 말이다. 미드에 비하자면, '24'나 '프리즌 브레이크' 정도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행위와 사회의 경제현상을 연구하므로 매우 불확실성이 큰 학문이다. 따라서 최고의 경제학자 한 명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 속에 나타난 수많은 거장과 천재들의 통찰에 힘입어 오늘의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경제사상사 연구가 의미를 가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목적은 - 책의 제목처럼- 한 세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독자는 각각의 거장들이 던져주는 위대한 통찰을 통해 배우고 또 그들이 간과했던 것들을 통해 배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경제학자들과 학파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애덤 스미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칼 마르크스, 앨프레드 마셜, 소스타인 베블런, 겔브레이스, 구제도학파, 신제도학파, 케인즈, 밀턴 프리드먼(통화주의자), 제임스 뷰캐넌(공공선택학파), 합리적 기대이론학파.
참으로 잠을 부르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의 삶과 경제이론을 그 흔한 그래프 하나 사용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책을 덮을 때면 저자의 놀라운 역량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게 된다.

  모든 학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특별히 두명의 학자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소스타인 베블런과 제임스 뷰캐넌이다.
베블런의 유한계급에 대한 분석, 그리고 현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 경제력으로 나뉘어진 신계급주의 사회에 대한 가장 예리한 경제학적 설명 중 하나일 것이다. 베블런은 다른 사람을 착취하여 자신의 지갑을 불리고 안락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죄성과, 과시적 소비를 통해 특권의식과 차별성을 표출하려고 하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파헤쳐 준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이론이 나에게 준 통찰일뿐, 베블런은 전혀 비판적 어조없이 철저히 가치중립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고 하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도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가장 인상적인 책 중에 하나였는데, 언젠가는 꼭 직접 읽어봐야할 책이다.
제임스 뷰캐넌은 공공선택학파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뷰캐넌은 정부가 공익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반드시 그렇게 행할 것이라는 순진한 경제학적 가정에 도전한다. 정부 자체가 이익집단이며, 또한 정부는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로비와 압력에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정부는 소수 특권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이익에는 반하는 정책을 선택할 수도 있다(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경제를 정치와 분리해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정치 - 정치가와 이익집단들의 자기 이익 추구 - 는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변수 중 하나이다. 뷰캐넌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이 사실을 경제이론을 통해서 훌륭하게 설명해 냄으로서, 정치게임이 야기하는 분배불균형과 부정의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초를 놓았다.

  이 두 학자들의 영향력이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에 비할바가 못되며, 또한 막상 그들의 결론이그들에게서 내가 얻은 통찰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로 인한 분배의 왜곡을 지적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비로소 경제학의 참된 존재의의를 보게 된다(물론 이들보다 훨씬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경제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들도 있다).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이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저자는 각각의 입장들을 공정하게 다루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분배정의를 강조하는 입장들에 대한 인색한 평가가 간간히 눈에 띈다(큰 약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관점에 갖혀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공정하려고 꽤 노력한 책인 듯 하다).

  가령, 저자는 리카도의 지대론을 다루면서 헨리 조지를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헨리 조지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매우 피상적이며 평가는 박하다. 나는 그가 헨리 조지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또한 마르크스의 경우는 삶과 이론 모두 지나치게 희화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마르크스가 묘사한 자본주의 말기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여 섬뜩하기까지 한데, 저자의 태도에서는 승자의 조소가 느껴질뿐이다(1989년의 시대적 상황의 영향이기도 한 것 같다).
또한 베블런과 뷰캐넌의 이론에 대해서는 그러한 경제적 불평등과 분배왜곡을 인정하면서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식의 얼버무림이 느껴진다.

  저자가 자신의 관점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경제학자들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책을 마무리할 때쯤 나타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피해자가 나온다고 해서 좋은 경제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압력에 굴복하면 경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좋은 경제정책이란 수혜자가 피해자보다 많은 정책이다. 천둥이로부터 빼앗아 돌쇠에게 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부가 늘어나는 게임이다. 즉, 좋은 경제정책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회전체가 누리는 혜택이 증가하는 정책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 p411  

  저자가 너무나 위트넘치고 놀라운 글솜씨를 가졌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동의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저런 진술에 대해서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좋은 독자라고 생각한다. "좋은 경제정책이 단지 수혜자와 피해자의 숫자 비교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가? 이미 풍족했던 수혜자는 지갑이 좀 더 두툼해졌고 가난했던 피해자는 경제력을 상실하고 길거리로 나앉았다면 그 정책은 좋은 정책인가? 경제성장률, GNP 등의 수치 증가는 정말로 국민들의 행복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기업의 금고에 더 많은 돈이 쌓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가?"
이 책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경제학 입문서이지만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에는 장하준이나 스티글리츠, 또는 짐 월리스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대답은 책에서만이 아니라 치열한 세상 읽기와 참여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관점을 펼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경제사상사를 매력적으로 소개하여 경제학의 큰 그림을 잡아주는 경제학입문서로서의 목적을 이 책은 200% 이상 달성했다. 초보 경제학도들이나 쉽고 재밌게 경제학의 큰 그림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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