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TEPS를 공부하며 미드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그후 지금까지 적지않은 미드를 보았지만, 영어가 정말 늘었는지는 의문이다^^;
암튼, 미드계의 여러 걸작들을 지나 내가 최근 다다른 곳은 막장드라마로 유명한 "Glee"다.
나이 서른넷에 하이틴 합창드라마가 웬말인가 싶지만, 난 고딩들 영어니 쉽고 잘 들릴 줄 알았을 뿐이고...(그런데 웬걸.. 얘네들 slang 엄청 쓴다. 그래서 실패!ㅠㅠ)
그런데 이 드라마..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일단 명성대로 줄거리의 유치함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간간히 나오는 멋진 노래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작에 집어치웠을 거다.
사실, 제작자가 아무리 뻔뻔해도 그렇지, 아무런 믿는 구석없이 저 정도의 유치한 플롯을 시청자들에게 디밀수는 없다고 본다. Glee에서는 그 믿는 구석이 '음악'과 '퍼포먼스'다.
알고보니 글리는 스토리에 음악을 맞추는게 아니라 음악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스토리를 짜맞추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니 완성도 높은 스토리가 나오기는 어려울수밖에 없다. 그것을 사전에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인지시켜서 스토리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대신 음악과 퍼포먼스를 기대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던 듯 하다. 글리의 믿는 구석인 '음악'과 '퍼포먼스'는 엉성한 스토리를 커버하고도 남을만큼 훌륭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글리의 더 큰 강점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 유치찬란한 '이야기'가 의외로 깊은 울림을 준다는 데 있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 효과는 더욱 강력하다.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루저'들이 글리 클럽에 모였다. 그들은 거기서 윌 슈스터라는 좋은 리더를 만난다. 그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선생님이다. 외모와 능력으로 서로를 평가하여 철저히 서열화시키는 고교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글리 클럽 안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를 친구로 대하는 법을 배워간다. 음악을 통해서 그들은 점차 '진짜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 진부하고 상투적인 스토리 안에서 글리는 우리 시대 십대들의 모습을 잘 담아내 보여주고 있다.
또래집단의 반응에 매여 살아가는 삶, 소외에 대한 두려움와 외로움, 진실한 우정에 대한 갈증과 소속에 대한 갈망, 참된 스승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부모의 모습까지...(극중 좋은 부모의 모델인 커트의 아버지는 정말 최고다. 나올 때마다 가슴 찡한 명장면을 마구 쏟아내주신다).
이와 같이 글리는 십대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과 가치관, 열망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음악과 함께, 나는 이것이 이 드라마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글리를 보면서 지미 롱의 <새로운 청년사역이 온다(원제: Emerging Hope)>가 떠올랐다. 글리에는 그 책에서 지미 롱이 말했던 밀레니엄 세대의 모습이 매우 분명히 나타난다.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그 책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글리를 보며 꿈꾸고 도전받았다. 그리고 소망하게 되었다. 교회가 우리 시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글리 클럽 같은 공동체가 되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 세대가 그들에게 윌 슈스터 같은 진실한 멘토가 되어 줄 수 있기를...
글리 시즌1 명장면 중 하나!(최고의 장면이라기엔 커트의 아버지가 너무 강력하다...^^;)
글리 클럽 해체를 앞두고, 학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윌 선생님에게 부르는 노래...
"To Sir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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