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톰 라이트, IVP

회가 직면한 여러 이슈들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존 스토트의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책이다.


존 스토트가 자신의 강점을 따라 각각의 이슈들을 다소 교의학적인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면,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는 성경의 전체이야기와 특정본문들을 넘나들면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썼다.


해당 주제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가 보여 온 주요한 입장들을 정리하는 면에서는 존의 책이 더 우위에 있고, 성경이 이 시대의 문제에 적실한 답을 준다는 확신과 격려를 얻는데는 톰의 책에 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존의 책이 강의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톰의 책은 설교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둘 다 읽으면 좋다는 뜻
이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모든 챕터가 각각 다른 곳에서 했던 강연이나 설교를 발전시킨 것이다보니 챕터끼리 내용이 비슷하게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군데군데에서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지루함을 유발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박학다식하긴 하지만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영역을 언급할 때는 다소 전문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좌뇌/우뇌 이론).
그리고 번역이 좀 아쉽다.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부정확한 문장이 간간히 눈에 띈다.


Posted by S. J. Hong
,


<연애 망치는 남자>, 도널드 밀러, 옐로브릭


저는 도널드 밀러의 책을 참 좋아합니다. 
일견 가벼워보이는 그의 글 속에는 삶을 변화시킬 만한 보석같은 지혜들이 가득합니다.
또한 그 지혜를 훈계조나 설교투가 아니라, 위트 넘치고 가슴 찡한 자기 이야기 속에 담아 진솔하게 전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 책은 밀러의 다른 어떤 책보다도 특히 좋았습니다.

사람 웃기는 재주는 여전합니다. 문화 차이와 번역의 문제, 책이라는 활자매체의 한계 등의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서구작가가 한국독자에게 책에서 개그드립을 쳐서 현웃터지게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 읽다가 여러번 현웃터졌습니다.
"돈, 너는 재활을 참 잘해" 
'그 뒤로 나는 가라데 사범이 좋아졌다' 

(이게 뭔지 궁금하면 서점으로...ㅋㅋㅋ)


한글제목이 <연애 망치는 남자> (원제는 "scary close")라 마치 연애에 관한 책일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어떻게 나는 나쁜 관계의 습관을 버렸나"라는 부제가 책의 주제를 더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지난 세월동안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가로막아온 생각, 신념, 가치관, 습관 등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 진짜 관계를 맺는 모험 속으로 어떻게 뛰어들게 되었는지 자신의 여정을 솔직하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진짜 사랑하며 사는 삶'이라는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와준 아내 벳시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와 더불어 책이 다루고 있는 영역은 연애, 결혼, 우정, 육아, 가족, 직장, 공동체 등 매우 다양합니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감정을 느꼈습니다.
저자의 옛날 모습과 내 현재 모습이 매우 비슷함을 보면서 고통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 사실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자를 진실한 삶으로 이끌어간 동료들을 보며 여러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있나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8년째 결혼생활을 해오지만 여전히 때로는 많이 삐걱거리고 갈등하며 그래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소중한 아내도 생각났습니다.
'아내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아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용기를 내어 부탁하자'는 결심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저자에게서 제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깨달음처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능력이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정직함에 달려있다면, 저 역시 노력해볼 수 있겠다는 격려도 받았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의 울림이 매우 컸습니다.
이 책이 제 마음의 표면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깊숙한 지점을 두드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는 책을 통해 마음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느냐 그냥 읽고 넘기느냐에 달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그 인도하심을 충실히 따라가서 지금보다 더 진실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생에서든 훗날 주님의 나라에서든 꼭 도널드 밀러를 만나 인사하고 싶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글을 써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재주없고 재미없는 사람들이 보통 취미가 독서라고 말한다는데 제가 그렇습니다. 
물론 독서광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 나이의 평균적인 사람들보다는 약간 더 많은 책을 읽은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읽었던 책들 중에서 제 인생의 가장 좋은 책 다섯 권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거기에 집어넣을만한 책입니다.
진실하게 사랑하며 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결심이 무뎌지고 삶의 초점이 흐려질 때, 간간히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제 책장 속 가장 손에 잘 잡히는 자리에 놔두고 싶은 책입니다.

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너무 극찬 일색이라 맘에 걸리지만 모두 진심이라 뺄 말이 없습니다.
도널드 밀러의 <연애 망치는 남자> 정말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오두막>은 이재영 대표가 들려주는 오두막공동체 이야기입니다.
(구매할 때 저자를 확인하세요. 윌리엄 영이 쓴 동명의 소설도 있습니다.^^)

대표 부부의 삶과 이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주는 울림이 어마어마합니다. 책을 덮고나도 이들의 삶이 주는 여운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좋은 간증집 한 권 읽은 것으로 넘겨버리지 말고 책이 주는 도전에 치열하게 응답해야겠다 마음 먹어보지만, 어느새 그간 살아오던 방식에 익숙해져서 상식선을 뛰어넘어 더 깊이 사랑하며 사는 삶에 대한 도전 앞에 막막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 부끄러움 위에 작은 변화가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함께 부끄러워 하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초청하고 싶습니다.
오두막.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박영돈, IVP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름 톰라이트빠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국내에 출간된 톰 라이트 책을 대부분 읽었고, 그를 비판하는 책이나 글도 꽤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박영돈 교수의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의 출간은 저를 매우 설레게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짧은 소감은, 제가 지금까지 접해본 톰 라이트 비평글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반부에서 톰 라이트의 바울 신학을 ‘E. P. 샌더스에게서 받은 영향’, ‘제임스 던에게서 받은 영향’, ‘톰 라이트의 고유한 주장으로 나누어 분석/정리한 부분은, 톰 라이트 본인보다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을 더 명료하게 정리했다고 느껴질만큼 탁월합니다.

에피타이저인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에 대한 요약 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게다가 메인디시인 톰 라이트 비평 파트 역시 매우 훌륭합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조직신학자인지라 성서주해보다는 교리논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그런 방식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신약성서학자를 상대할 수 없음을 존 파이퍼가 이미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본문에 대한 주해를 통해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요목조목 비판하는 저자의 논리는 매우 예리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톰 라이트의 기획은 역사적예수바울신학으로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역사적예수 분과에 있어서는 그의 주장에 거의 전부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울신학에 있어서는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에 입각한 자신의 신학적 전제들과 일관성 있게 짜맞추려다보니 그가 일부 본문에서 다소 억지스런 주해를 하고 있다고 느껴왔습니다.

몇몇 본문의 주해에서 느껴지는 뭐랄까 좀 과하다는 느낌, 저자는 그런 부분들을 매우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박영돈 교수의 주장대로, 바울의 글 중에는 새관점으로는 제대로 읽어낼 수 없고 옛관점으로 읽을 때에만 더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는 본문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텍스트에 대한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의 양자택일식 논쟁은 이제는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최근 많은 신약학자들이 인정하듯이, 1세기 유대교에는 언약적 신율주의와 율법주의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 위선과 공로사상, 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 둘 다에 대항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텍스트는 옛관점과 새관점을 함께 가지고 읽을 때에 가장 잘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김세윤 박사도 그의 책 <칭의와 성화>에서 힘있게 주장한 바 있고, 근래엔 톰 라이트 역시 옛관점과 새관점의 통합의 필요성을 깊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가에 있어서 김세윤 박사는 옛관점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톰 라이트는 새관점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톰 라이트의 바울 해석에서 나타나는 몇몇 억지스러움은 그가 대부분의 텍스트를 새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박영돈 교수도 이 책에서 바울해석에 있어서 주된 것은 옛관점이라는 전제 하에 새관점의 필요성도 부차적으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톰 라이트가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저자는 톰 라이트가 옛관점에 대해 그토록 부정적이면서 왜 몇몇 주해에서는 옛관점을 들여오는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톰 라이트는 옛관점만으로바울 텍스트를 읽어서 개인구원에만 매몰되어버리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 옛관점 자체에 대해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가 톰 라이트가 옛관점과 새관점을 아우르며 바울을 해석하는 것을, 필요할 때만 옛관점을 슬그머니 들여오는 비겁한 행동인 듯 말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비난입니다.

톰 라이트는 최근 저작으로 올수록 더욱 옛관점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여줍니다.

(최근에 그가 자신의 바울신학 안에 옛관점을 얼마나 많이 수용해냈는지는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철지난 떡밥 같은 이 옛관점/새관점 논쟁보다,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에서 가장 논란이 될만한 지점은 미래의 칭의에 관한 부분일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신자가 의롭다는 판결이 예수의 의를 힘입어 내려질 것인가, 성령과 동행하여 실제로 의로워진 그의 생애를 통해서 내려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안 그래도 톰 라이트를 달가워하지 않는 보수교회들이 그를 철저히 외면하게 할만큼 매우 민감하고 폭발력 있는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미래의 칭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 역시 쉽게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울만치 설득력 있습니다.

본론인 비평 파트를 읽으면서, 당대 최고의 신약학자의 주장을 이렇게 얇은 책으로 효과적으로 반박해낸 저자의 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바울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가 마구 쏟아져나옵니다.

개혁주의 공동체에게 이 부분은 교리공부하는 텍스트로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반부는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 요약, 중반부는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 비평, 후반부는 개혁신학 교리정리...

얇은 책이 이처럼 다양한 면모와 쓰임새를 가질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몇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톰 라이트가 1세기 유대교가 언약적 신율주의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비판하면서, 전문학자들이나 알만한 배경지식이 성서해석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성서는 학자나 무학자나 모두 올바르게 해석해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자 해석학적 유산이라는 것이지요.

주장의 취지는 일부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약성서는 1세기의 문서입니다. 1세기의 저자와 독자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현대 독자에게는 가려진 지식, 가치관, 사고방식, 전제, 문화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부분이 드러나 성서해석에 반영될 때 우리의 해석은 변화되고 수정되면서 성서에 대한 더 바른 이해로 나아갑니다.

성서신학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그러한 배경을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서 우리가 성경을 더욱 올바르게 읽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성서의 배경연구를 통해 우리가 당시의 시대상을 완벽히 복원할 수 없고, 잘못된 배경지식이 해석의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배경연구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문신학자만이 제시할 수 있는 해석은 바른 해석이 아니라는 주장은 성서연구분과에 있어서 자칫 신학 무용론으로 오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톰 라이트가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개인구원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전 세계를 새롭게 하시려는 위대한 구원 계획을 신실하게 성취하신다는 일관된 관점으로 바울의 복음을 해석하려는 라이트의 야심찬 기획에서, 하나님은 한 죄인을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시는 개인의 구원자라는 측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 박영돈,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p171

 

저는 이런 비판을 톰 라이트가 듣는다면 많이 억울해하리라고 봅니다. 톰 라이트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그의 바울신학만이 아니라 역사적예수 연구를 포함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바울 텍스트에 대한 몇몇 주해만을 바탕으로 그가 개인구원의 중요성에 대해 평가절하한다고 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저는 톰 라이트의 방대한 저작들을 힘에 부치게 따라갔던 그 여정에서,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로 사는 우리 각 사람에게 자유와 새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에 대해 깊이 깨닫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톰 라이트가 개인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몇가지 아쉬움을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정말 뛰어난 톰 라이트 비판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자가 후기에서 보여준 겸손하고 개방적인 태도 역시 인상깊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톰 라이트 위험해. 그러니 읽지마. .” 이 아니라, 이러한 비평과 상호대화를 통해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잘 알게 되고 하나님나라가 진보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 책이 그렇게 쓰이면 좋겠습니다.

신학했다는 이들 중에도 학자의 원전과 씨름해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소위 안전한 학자들과 위험한 학자들의 목록만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역시 톰 라이트는 위험해라는 선입견을 확증하는 근거로 손쉽게 쓰이지 않길 바랍니다.

톰 라이트의 칭의론 일부분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보여준 바울신학의 전체 그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예수 연구의 영역에서 역사비평이 해체해버린 복음서의 역사성을 수호해낸 톰 라이트의 위대한 업적은 지금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톰 라이트에게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비판서 한두권 읽고 쉽게 제껴버리는 건 참으로 아쉬운 선택입니다. 그는 아직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Posted by S. J. Hong
,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김형국, 포이에마


전도성경공부에 사용할 교재가 마땅치 않은 것이 늘 고민입니다.
그동안 사용해본 교재들은 요즘 시대에 사용하기엔 접근방식이 올드하고 와닿지 않거나 복음에 대한 이해가 협소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창세기 1-3장을 여전히 창조과학의 설명으로 풀어가려 한다던지, 회심의 의미를 개인구원에만 국한지어 제시한다던지 하는 식이지요. 
그래서 최근엔 교재보다는 복음에 대해 잘 설명해놓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잘 소개한 좋은 책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책의 경우엔 교재보다 상황이 낫지만, 여기서는 분량이 문제가 됩니다. 
얇은 책은 내용이 빈약하여 교재와 비슷한 한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고요. 반면 내용이 충실한 책은 분량이 적지 않아서, 모임 때마다 읽어와야 할 양이 많아 비신자가 부담스러워합니다.
결국 '복음을 잘 정리한 얇고 가벼운 책'이 필요한 것이지요(헐. 그게 가능해?).


현재까지 제가 본 책 중에 거기에 가장 근접한 책은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복음의 의미를 풍성히 담아내었는가 하는 면에서는 물론 더 좋은 책이 많지만, 분량까지를 고려한 종합적인 면에서 볼 때는 이 책이 전도성경공부에 가장 최적화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임 때마다 읽어와야 할 분량이 적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구요. 
또한, 구도자예배에서 오랫동안 말씀을 전하고 전도성경공부모임을 인도해 온 저자의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점이 참 좋습니다.
글의 한 줄 한 줄에서 비신자의 마음과 현재 상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매 챕터 끝에 있는 나눔질문들도 좋아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질문과 고민, 장애물 등이 모임에서 솔직하게 나눠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전도성경공부모임을 진행할 때, 개인적으로 지인에게 일대일로 복음을 전하는 모임을 하고자 할 때에 이 책을 활용할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전도모임교재로 쓰기에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10000원)입니다.
책의 질을 약간 떨어뜨리더라도 7-8000원 선에서 가격이 책정되었다면, 부담없이 더 많은 모임에서 사용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S. J. Hong
,


<기억의 종말>, 미로슬라브 볼프, IVP


<기억의 종말>은 평화와 화해의 신학자 볼프가 '기억'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쓴 책입니다.
볼프는 이 책에서 기억이라는 주제 전반에 대해 이러저러한 추상적 논의를 전개해 가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당한 피해자의 기억'으로 초점을 좁혀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 사유는 볼프가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군복무할 때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로 의심받아 G대위에게 비인도적인 함정수사 및 심문을 당했던 고통스런 기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볼프는 그 기억과 씨름하는 가운데, '가해자의 악행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피해자에게 진실하게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이러한 피해의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피해의 기억은 마지막 때에 어떻게 되는가' 등의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고 차근차근 답해 나갑니다.


이 책은 출간시점이 세월호2주기와 가까웠기 때문에 기억과 관련한 사회적 쟁점(세월호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등)과 관련하여 많이 회자되고 있는 듯 합니다. 
출간좌담회에서도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기억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포함되어 있던 걸 보면 출판사의 홍보방향도 그러했던 듯 합니다.
그런 거시적 안목으로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데 조금의 이의도 없지만, 저는 그보다 '나의 개인적인 상처의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 지금도 여전히 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때 내적치유를 주제로 한 책들을 탐독했었고, 일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확실히 검증된 책이 아니면 잘 읽지 않습니다. 
치유의 소망을 불어넣고서 믿음을 격려하며 마무리하는 천편일률적 패턴이 내용없는 말잔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치유하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피상성이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그 어떤 내적치유서적보다도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실하게 기억할 의무'에 대해 읽으며 나의 상처의 기억은 가해자에게 공정한가 돌아보기도 했고, 기억하기의 궁극적 목적인 용서와 화해를 위해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이 책 한 권과 진득하게 씨름하는 것은 좋은 내적치유수양회를 다녀온 것에 비견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가 이 책의 홍보컨셉을 '치유'로 잡아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의 미래'를 다루는 3부에서는 소망으로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될만한 부분은 3부입니다.
저자는 이 땅에서 있었던 악행의 기억이 천국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신학적 가설을 제안합니다. 
그는 성경적 신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예상되는 반론을 차분히 반박해갑니다. 
볼프의 가설이 옳음을 입증할 만한 성경적 근거가 충분히 명시적이지 않으므로 다르게 볼 여지도 있지만, 저는 잠정적으로 현재는 볼프의 가설에 동의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천국을 더욱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훗날 그 나라에서 나에게 해를 입힌 이들, 그리고 내가 해를 입힌 이들이 그 모든 아픔을 잊고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고 서로를 기뻐하는 비전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굉장한 책이며, 개인적으로는 다 읽고 눈물이 핑 돌만치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기억의 종말>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십자가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IVP


십자가에 대해 복음주의권에서 내놓은 최고의 답변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저마다의 생각들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N.T. 라이트의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이 두 권의 책을 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정리의 신' 존 스토트가 신약성경과 교회사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며 그간 복음주의 기독교가 십자가를 이해하려고 씨름한 발자취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십자가라는 무한에 가까울만치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어마어마한 주제를 인간계 정리끝판왕이 어느 정도까지 정리해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는 현존하는 최고의 신약학자 중 한 명인 톰 라이트가 진보신학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비평적 방법론'을 가지고 복음서의 예수가 바로 실제의 역사적 예수임을 논증해 낸 책입니다.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학문적으로 논증해낸 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논증의 과정에서 예수의 삶과 사역과 십자가 죽음에 대한 신선한 통찰과 해석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또한 이 두 권의 책은 겹치지 않고 서로를 잘 보완해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십자가에 대한 조직신학적 접근이라면,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는 성서신학적 접근에 해당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십자가에 대한 복음주의권의 주요이론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출간 이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최근 역사적 예수 분과에서 일어난 복음주의의 최고의 성과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 최고의 성과가 바로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권의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면, 복음주의자들이 십자가와 어떻게 씨름해왔는지에 대한 최근까지의 그림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책 제목 띄워놓고 정작 다른 책에 대해 떠드는 이상한 책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십자가란 무엇인가>는 어떤 책인가? 
'십자가에 대한 복음주의권의 답변 중 세 번째로 중요한 책이다'라는 주장을 하기엔 책의 볼륨으로 보아 여러 모로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그렇다면?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이제스트판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두께에 질려 엄두를 못 내던 분들, 아무리 정리를 잘 했다해도 뒷부분 읽다보면 앞부분이 기억 안나는 두께의 책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아주 훌륭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존 스토트가 십자가의 정수를 정리하는데 그 정도 두께의 책이 필요했는데, (물론 내용의 풍성함과 깊이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여하튼) 맥그라스가 이 얇은 책으로 십자가에 대해 이토록 훌륭하게 정리해내다니, 아마도 존 스토트 다음 세대의 '정리의 신'은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잘 알려주는 '가장' 얇은 책 <십자가란 무엇인가>를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예수 왕의 복음>, 스캇 맥나이트, 새물결플러스


지금까지 스캇 맥나이트의 책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건, 그가 단지 '톰 라이트의 대중적인 버전' 정도에 불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캇이 이류학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자로서의 그의 성취와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 겹치는 포지션에 톰 라이트가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핵심주장이 유사한 건 분명하지만, 톰 라이트의 애독자라 하더라도 스캇 맥나이트 역시 읽을 이유는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경제학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스캇은 톰 라이트의 대체제가 아니라 보완재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적어도 대중적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톰 라이트보다 월등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톰 라이트는 예수와 복음을 주제로 한 그의 여러 책들에서 자신의 핵심논지 - 복음은 개인의 죄사함과 칭의보다 큰 이야기이며, 예수를 왕과 주로 선포하는 이야기이다 - 를 압도적으로 치밀하지만 또한 압도적으로 장황한(?) 필치로 펼쳐나갑니다. 
톰 라이트의 장황함은 글의 분량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글쓰기 방식에 원인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멋들어지고 아름다운 글쓰기를 선호하는 듯 합니다. 다소 명료함과 효율성을 희생하더라도 예술적 글쓰기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의 도전(The challenge of Jesus)>이나 <기독교 여행(Simply christian)> 같은 얇은 책들을 읽을 때에도 -그의 아름답고 유려한 글쓰기에 감탄할 수는 있지만- 그의 논지를 한 번에 명확히 잘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스캇 맥나이트는 놀라운 솜씨로 그 비슷한 내용을 이 얇은 책에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해냈습니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톰 라이트의 대중적인 버전이라는 느낌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나 압도적으로 탁월하게 해냈기에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복음이 단지 죄사함의 메시지 이상의 무엇인지, 그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신자로서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알기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현재까지 이 책 이상으로 잘 정리된 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아담의 진화>, 피터 엔즈, CLC

<아담의 진화>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피터 엔즈의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다소 도발적인 이 책의 제목(원제 역시 "The evolution of Adam"이다)은 아담이 진화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담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진화해왔고 더욱 바람직하게 진화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이나 이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은 아니다(그런 독자에게는 하스마 부부의 <오리진>을 추천한다). 이 책은 인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증거와 성경해석을 어떻게 조화시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하나의 제안으로서, 사실은 성경해석학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작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에 대한 적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성육신...>에서 저자가 제시한 성경의 특성(성경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유비) 및 그에 따른 해석학적 원리를 창세기 1-11장과 바울의 아담 해석에 적용한다면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논리의 정교함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모든 단락은 뒷 단락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 되어, 그렇게 책 전체가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듯이 치밀하게 전개된다. 
어떤 영역에서 큰 논란과 다수의 반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입장을 개진하고 자리잡게 하려면 용기뿐만 아니라 저 정도의 명석함과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당연히 저자의 주장에 반대할 수 있으나, 반대하는 자는 그만큼의 노력을 들여 그만큼의 명료함을 가지고 반박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S. J. Hong
,




<하나님의 임재>, 달라스 윌라드 & 존 오트버그, IVP

영성 형성에 있어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저술가를 들자면 유진 피터슨과 달라스 윌라드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사이비 영성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가르쳐준 선생님이라면, 달라스 윌라드는 그런 영성을 '어떻게' 형성해 갈 것인지를 가르쳐준 선생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가르침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제 여정에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몇년 전 작고한 달라스 윌라드의 마지막 강연의 기록이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강연과 대담 모음집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그의 유작이라 할 순 없지만, 좋은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 담긴 책이기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책 몇 권 더 소개해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모략>

제 개인적 견해로, 달라스 윌라드의 최고의 책은 단연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무엇인가, 그 나라를 현재의 삶에서 경험하는 길은 무엇인가 등 그의 사상의 주요개념과 진수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산상수훈 강해서 중 하나입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책을 단 한권 읽으려는 분이라면 저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면 아마 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마음의 혁신>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모략> 후반부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한 챕터로 다루고 있는데, 워낙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더욱 자세히 다루는 별도의 책을 쓰게 됩니다. 그 책이 <마음의 혁신>입니다.
현대 저술가가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룬 수많은 책 중에서, 저는 <마음의 혁신>과 톰 라이트의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가장 탁월한 두 권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자신과 이웃의 변화와 성장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평생 추구해가야 할 이슈이지만 또한 우리 신앙을 가장 혼탁하게 만드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온갖 사이비 가르침이 난무하는 가운데, 저는 가장 건전하면서도 잘 정리된 가르침을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영성훈련>, <잊혀진 제자도> 등 주옥같은 책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위 책들을 통해서 그가 평생 동안 무엇을 말해왔는지를 강연요약과 대담을 통해 잘 정리한 책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는 달라스 윌라드의 마지막 책이지만, 달라스 윌라드 입문서로도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하나님의 임재> 출간을 계기로 위 책들과 씨름하면서 달라스 윌라드를 영혼의 스승으로 삼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S. J. H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