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기 좋은 날>은 이성교제/결혼 전문강사이며 <사랑하기 좋은 날>의 저자인 김지윤의 두번째 책이다.

(그녀는 전직 IVF간사로 나의 선배간사님이시기도 하다. 그러나 이 추천이 나에게 주는 경제적인 이익은 조금도 없으며, 저자가 나의 선배이신 것은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전작 <사랑하기 좋은 날>이 싱글자매들을 위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싱글형제들을 위한 책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저자는 여러 교회로 이성교제와 결혼 강의를 다니면서 수많은 형제들 안에 있는 깊은 필요와 갈망을 발견한 후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나는 이성교제와 결혼을 다루는 훌륭한 번역서들을 꽤 읽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성경적 원리라는 게 존재하니 외국저자에 의해 쓰여진 양서들은 물론 유용하다. 그러나 이 주제야말로 우리의 상황을 반영한 우리의 이야기가 더욱 많이 들려져야 하는 분야다. 성경적 가치관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삶의 희노애락을 알고, 여러 인생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국내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랑하기 좋은 날>을 읽었을 때 그런 책을 발견한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러했다.


이 책은 재밌다. 저자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딱 맞는 사례를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며, 저자 특유의 유머감각과 톡톡튀는 표현으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읽으며 피식피식 키득키득 웃게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어서 대중교통에서 읽기엔 위험하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읽다가 웃음이 터졌는데 <고백하기 좋은날>이라는 큰 제목 밑에 "하나님,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라고 써있는 책을 읽으며 낄낄거리는 내 모습이 민망해서 제목을 슬그머니 가렸다(누님, 죄송해요. 책이 부끄러웠던 건 아닙니다).


또한 이 책에는 감동이 있다. 나는 결혼 4년차 기혼 남성이다. 그러니 이 책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기보다는 공동체의 싱글형제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차츰 책을 읽는 내 태도가 바뀌어가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사역자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한 명의 남자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아내를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더욱 감사할 수 있었고 아버지로 인해 아파하기도 했다. 이 책은 내 마음을 두드렸고 위로해주었고 새 힘을 주었다.

각자 살아온 인생이 달라 공감대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의 후반부는 정말 압권이었다. 피식피식 웃다가 눈물이 핑 돌고...(울다가 웃으면??ㅋㅋ 매우 위험한 책이다.)


<사랑하기 좋은 날>, <고백하기 좋은 날> 두 권의 책 모두 진심으로 강추한다.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이성교제 책이 남,녀용으로 모두 출간되어 매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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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짐 월리스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열혈팬이라고하여 그의 책을 읽는 것이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몇 년 전, 참된 복음에서 멀어져 있는 내 삶을 돌아보며 부끄러움과 회개로 몸서리치게 만들었던 그의 책 <회심>은 그 해 나에게 하나의 사건이었고 한 권의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이었다.

고난주간에 다시 짐 월리스의 책 <부러진 십자가(원제: Agenda for Biblical People)>를 집어들었다. 1976년에 출간된 책이니 현재 환갑을 넘긴 짐 월리스가 서른도 되기 전에 쓴 책이다.
놀랍다. 4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연도를 몰랐다면 당연히 신작이라 생각했을만큼 오늘날 신자유주의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으며 그 흐름에 타협하고 순응한 교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40년 전 미국 땅에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라고 외쳤던 이십대의 젊은 예언자는 이 책을 통해 수십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로 와서 미국을 너무도 닮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와 교회를 향해서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보수적 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 양쪽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의제에 맞추어 복음을 재단하고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하며, 교회가 세상권세의 우상숭배적 본질을 폭로하는 복음의 참 의미를 회복해야 함을 역설한다.
복음을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교회를 향한 메시지로 보며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 보여주는 대안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제세례파신학자들의 메시지와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것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촘스키에 버금가는 예리한 비판을 미국을 향해 쏟아내는 그는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현실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해 활발히 발언하고 행동하는 시민운동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타임>으로부터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의 책 <하나님의 정치>는 2008년 대선에서 미국 보수신앙인들을 설득해내어 그들의 정치 행태를 꽤 많이 바꾸어낸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같이 짐 월리스는 어느 하나의 틀로 규정될 수 없는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매우 철저한 보수적 복음주의신앙에 기반해 있지만, 우리의 기존 선입견 안에서는 진보적 기독교로 분류될만한 강조점을 가지고 그런 실천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맞다. 온전한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반쪽짜리 복음을 좆는 자들이 만들어낸 소위 보수적/진보적 기독교라는 진영구분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짐 월리스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 책의 국내출간이 반갑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짐 월리스가 조엘 오스틴보다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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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존 파이퍼와 톰 라이트 간의 유명한 칭의에 대한 논쟁에서, 파이퍼에 대한 답변으로 라이트가 쓴 책이다. 
공개논쟁에 처해 있는 학자가 반박의 글을 쓸 때면 그는 반대의견을 접한 독자들을 설득해야 하므로 자신의 모든 지성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글을 쓰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톰 라이트는 자신의 칭의론의 핵심골격을 러프하게 기술했던 이전 논문 "What St. Paul really said?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에클레시아북스 역간)"에서보다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한층 더 예리하고 선명하게 가다듬었으며 또한 더욱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논쟁을 직접 접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라이트는 칭의론에 있어서 파이퍼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파이퍼의 주장은 옳지만 그가 말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바울의 칭의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전통 속에서 형성된 교리를 다시 본문에 들이대어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읽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바울의 시대에 대한 연구와 본문에 대한 성실한 석의를 거쳐 바울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반복해서 역설한다. 
성경에 나타난 구원에 대한 풍성하고 다양한 설명 가운데에서 우리는 이신칭의의 위대한 교리를 발견할 수 있다(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래서 라이트도 이신칭의를 믿고 인정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적어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의롭다(dikaios 어근을 가진 언어들)'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의미했던 바는 종교개혁의 렌즈로 읽어낸 '이신칭의'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속하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의 신실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본문에 대한 치밀한 석의를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어서 라이트는 그간 이신칭의에 부여한 과도한 짐을 덜어주고 바울의 메시지를 바른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바울신학의 이른바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의 갈등을 넘어서는 길이며, 구원의 수직적 의미(개인구원)와 수평적 의미(사회구원) 사이의 오랜 양자택일식 대립을 넘어서는 길임을 주장한다.
본문석의에 있어서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칭의론에 있어서 그의 핵심적인 주장과 그가 그려낸 전체적인 그림에는 매우 동의하게 되었다. 라이트이 주장이 올바로 이해되어진다면, 그가 복음의 총체적이고 온전한 의미가 회복되는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이 책에 대한 추천사에서 "존 파이퍼는 결국 우리를 위해 훌륭한 일을 저지른 셈이 되었다. 그가 톰 라이트를 비판한 책을 낸 반응으로 라이트가 이렇게 훌륭한 책을 출간하는 결과를 얻어냈으니 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 그 글을 읽으며 ‘이번엔 맥클라렌이 좀 짖궂었네’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난 후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단순히 논적의 글에 대한 반박서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과 그의 나라의 장엄한 비전에 매료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책이다. 

책을 덮으며 문득 바울의 위대한 찬양이 떠올랐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 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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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성경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더 나은 접근이다.
저자는 성경과 선교의 관계를 말할 때에 대위임령(마28:18~20)이나 그 밖의 몇몇 근거구절찾기로 접근하는 소위 "선교의 성경적 기초" 방식은 성경의 선교적 함의를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선교의 산물로 이해하는 '선교적 성경신학' 내지는 '선교적 해석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주장이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저자는 신구약 전체를 오가며 방대한 논증을 편다. 따라서 이 책이 다루는 수많은 본문들에 대한 석의를 관련구절들을 꼼꼼히 찾아가며 정독하는 것은 때로는 지루하며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매우 가치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덧붙일 만한 이 책의 장점은 선교신학에 있어서 구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선교학에서는 신약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며 상대적으로 구약은 형식적으로 다루어온 측면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저자가 구약학자로서 이 분야에 아주 의미있게 기여한 점이라 생각한다.
둘째, 이 책의 또 하나의 의의는 '총체적 선교'에 대해서 복음주의권에서 나온 매우 훌륭한 답변이라는 점이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에서 복음전도가 가지는 수위성 문제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진영 사이에, 그리고 복음주의권 내부에서도 오랜 갈등을 일으킨 주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복음전도의 ‘수위성’이나 ‘우선성’이 아니라 복음전도의 '궁극성'을 주장하여 총체적 선교를 위한 훌륭한 이론적 기초를 제시했다(p398). 그런 점에서 김지찬 교수의 짧은 추천사는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예리하게 짚어냈다.
"...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최신작 [하나님의 선교]는 오랜 동안의 복음주의 내 학문적 공백을 메워줄 뿐 아니라 진보적인 비평주의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대안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는 저서다."

이 책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 중에 ‘데이비드 보쉬의 [변화하고 있는 선교] 이후 가장 중요한 선교학 서적’이라는 평가는 현재로서는 다소 과장되었을지라도 이 책이 앞으로 얻게 될 위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앞으로도 [변화하고 있는 선교]를 대체할 책이 아니라 보완할 책으로 보여진다. 두 책 사이의 차이점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변화하고 있는 선교]는 선교의 성경적 기초를 위해 신약 본문을 일부 다루고 있지만(마태복음, 누가-사도행전, 바울서신 등), 책의 대부분은 교회사 속에 나타난 다양한 선교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것에 할애한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선교신학으로 교회사 꿰뚫기’라 할 수 있겠다.
에 반해 [하나님의 선교]는 신구약 전체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보인 후 그것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앞서 말한 단순화를 취하자면, ‘선교신학으로 신구약 꿰뚫기’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분야를 공부함에 있어서 이 두 권의 책을 차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들은 서로를 보완해주어 읽는 이로 하여금 선교신학에 대한 매우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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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왈쉬와 실비아 키이즈마트의 [제국과 천국]을 읽었다.

본서의 저술의도는 로마제국 치하의 교회들에게 읽혔던 골로새서의 혁명적인 메시지가 오늘날 소비만능주의의 경제제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들려지게 하는 것이다. 
먼저 이것을 위해 저자들이 사용한 글쓰기 방식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포스트모던시대의 창의적 글쓰기의 매우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다(골로새서의 현대적 탈굼, Q&A, 눔바와 오네시모의 관점에서 쓴 가상 내러티브 등). 
하나의 책 안에 다양한 문체와 시점, 심지어 장르까지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포스트모던적이다. 그리고 얼핏 산만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다양한 변주곡들은 함께 모여서 '골로새서의 현대적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탁월하게 이루어낸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다. 책의 초중반에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분석과 포스트모던 인식론을 성서 해석학에 연결시키는 것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었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론적 중추이지만 포스트모던 담론에 익숙치않은 독자들의 낙오를 유발할 수 있는 지점이다. 저자들이 골로새서의 혁명적 메시지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했다면, 이 부분에서 좀 더 일반독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글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초중반 낙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책읽기 모임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실천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도 함께 읽는 공동체가 있다면 매우 좋을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탄탄한 이론적 기초를 세우면서도 매우 "실천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골로새서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지만 고민하게 하는 부분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박득훈 목사님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본서의 저자들처럼 골로새서를 읽고 실천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 안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대적인 지각변동'이라는 용어가 과도한지 아닌지는 읽어보면 알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이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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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벨처의 <깊이 있는 교회>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현재 북미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통 교회와 이머징 교회 사이의 소모적인 논쟁과 감정대립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워낙 관심사였던터라 읽기 전부터 책 내용이 무척 궁금했고, 읽자마자 금새 책에 빨려들어갔습니다.
책을 읽으며 정성스럽게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이 주제와 관련하여 저자가 고민하고 책읽고 연구하고, 현장방문하고 목회자와 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자신의 교회에서 실천한 내용들로 쓰여졌습니다.

저자는 양측의 논쟁점들을 '인식론, 전도, 복음, 예배, 설교, 교회론, 문화관'의 일곱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각각의 범주에 대한 이머징교회의 주장과 이에 대한 전통교회의 반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양측의 주장을 소개하고 평가함에 있어서 제가 그간 읽었던 어떤 책보다 가장 공정하게 다루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이머징교회 비판서로는 D.A.카슨의 <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가 가장 좋았는데 이 책은 그것을 가뿐히 뛰어넘을만한 책입니다. 물론 목회자인 저자가 카슨이 가진 학문적 엄밀성을 보여줄순 없었지만, 저자는 제3의 길에 서서 전통교회와 이머징교회를 바라보므로 전통교회 입장에서 쓴 카슨에 비해 이머징교회를 더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강점으로 인해 이 책은 이 주제에 있어서 앞으로 오랫동안 공히 인정받는 가장 중요한 책 중 한 권이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저자는 전통교회와 이머징교회를 뛰어넘는 제3의 길로 '깊이 있는 교회'를 제시합니다. '깊이 있는 교회'라는 용어는 C.S.루이스에게서 빌려왔으며, 그 모델로 본인이 목회하는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의 리디머 장로교회를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제시합니다.
책을 읽고 정리해 본 깊이있는 교회란 '가장 개방적이고 유연한 전통교회'로도 볼 수 있고 또는 '가장 온건한 이머징 교회(책에서 소개된 이머징 교회의 ‘연결주의자’ 진영보다 더 온건한)'로도 볼 수 있는 교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두루뭉실한 양시론적 결론을 제시하거나 또는 중간에서 만나는 어설픈 절충주의를 시도한 것은 아닙니다. 양시론과 절충주의는 이론상으로는 좋게 느껴지나 현실에서는 공허한 슬로건이 됩니다.
그에 반해 저자가 제시하는 깊이 있는 교회는 위의 일곱 카테고리에 있어서 어느 범주에서는 보다 전통 교회와 가깝고 다른 범주에서는 보다 이머징 교회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기준에는 소위 ‘어느 것이 통할까’ 하는 실용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성경과 전통에 충실하며 현대문화와의 접촉점을 잃지 않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저자의 치열한 노력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매우 신뢰감을 주는 책입니다. 목회철학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끄는 힘도 있고 목회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통찰도 많습니다.
좋은 책이 나왔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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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IVP를 통해 톰 라이트의 에브리원 주석이 하나둘씩 출간되고 있습니다(저자는 주석이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일반대중과 괴리되어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 시리즈에 의도적으로 주석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실제로 이 시리즈는 강해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톰 라이트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가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읽기를 풍성하게 하는데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천년 기독교신학의 역사 속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탁월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대작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그것을 여러 대중서적을 통해 일반독자의 눈높이로 흥미롭게 풀어내는 감각을 보면 아마 대부분 제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이 주석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저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시리즈를 보며 군침을 흘리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이었습니다.

엊그제 드디어 첫 책으로 <마가복음>을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기대 이상입니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방대한 결과물이 충실히 반영된 주석입니다.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로 엮여진 수천페이지 분량의 연구가 주석 한 줄 한 줄에 알알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방대한 내용들을 대중적인 언어로 이처럼 노련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연구 3탐구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입니다('3탐구'라는 용어도 그가 제안한 것이지요). 
역사적 예수 연구의 2탐구는 비유대적인 예수상을 주로 제안하였는데, 상이성의 원칙을 극단적으로 적용할 경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상이성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예수에 대한 전승이 유대교 전승이나 초기기독교회의 전승과 상이성을 보일 때 더욱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유사성을 보일 경우에는 유대교나 교회의 생각이 덧입혀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유대적인 예수와 기독교적인 예수를 배제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그리고 굳이 왜 그래야 할까요?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고 예수님을 통해 기독교가 생겨났는데 오히려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3탐구는 유대인으로서의 예수에 주목하며 예수 운동을 1세기 유대교의 맥락 위에 위치시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3탐구는 필연적으로 신구약 중간사, 신약성서 배경사,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를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1세기 이스라엘에서 예수 사건이 가졌던 의미를 깊이 이해하면서 복음서를 읽기 위해서는 이 3탐구 계열의 학자들의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긍정하는 가운데,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장 완성도 높고 설득력 있는 전체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 학자가 톰 라이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풍성한 배경사와 본문에 대한 해석들은 쉬운 말로 풀어쓰고는 있지만 오랜기간 수행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깊은 내공에서 뽑아낸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마가복음 본문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고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높은 학문적 성취와 대중적 명성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의 예수 연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유대적 배경에 집착하여 인위적인 일관성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결과 예수 이해가 협소해졌다는 비판이 있습니다(저는 이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연구에 있어서 그의 소위 '새 관점'은 존 파이퍼를 필두로 복음주의권의 맹폭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였던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이만큼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을 논증해내어 논의의 흐름을 되돌린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학문적 영역에 남겨두는데 만족하지 않고, 신학과 삶의 현장을 실제적으로 통합해내고자 줄기차게 노력하는 학자가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그것이 제가 톰 라이트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저 역시 톰 라이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해야만 그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복음서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현재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된 상태입니다). 그 시리즈를 통해 저자가 이 책 <마가복음>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해석들이 연원하고 있는 방대하고 탄탄한 학문적 기초와 논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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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되자마자 단박에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한국사회가 얼마나 정의에 큰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허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은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정의’가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끝없이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그로인한 제3세계 기아와 질병 문제, 종교와 이념과 빈부 문제로 빚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과 테러, 인류공멸의 가능성까지 예상하게 만드는 심각한 환경파괴 등으로 인해 인류는 점차 진보의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들이 얼마나 불의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뼈져리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 역시 그 가르침과 실천을 통해 정의의 문제에 대해 어떠한 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앞으로 지금보다도 더욱 빠르게 그 영향력과 권위를 잃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의’라는 화두를 고민하며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주목해야 할 구약학자가 있다. 바로 월터 브루거만이다.
브루거만은 현존하는 구약학 최고 권위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탁월한 학문적 성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가진 독특한 신학적 강조점으로 학계와 교회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학자로서 그의 신학적 입장이 가지는 의의를 말하자면, 그는 제1세계의 관점에서 주변부 신학으로 치부해버린 해방신학의 강조점을 제1세계 신학의 중심부에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 예언자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저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약자와 소외된 자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 왕권의식으로 상징되는 지배체제에 대항하는 예언자 전통에 대한 강조 등은 우리 시대의 교회가 반드시 귀기울여야 할 메시지이며 그 적실성은 앞으로 세대를 거듭해갈수록 더욱 커져갈 것이라 생각한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부르거만의 대표작으로서, 이젠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만한 책이다. 1978년에 발표된 그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브루거만 특유의 신학적 관심과 강조점들이 이 책 안에 이미 완성도 높게 표현되어 있음에 놀라게 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예언자적 전통’이라는 렌즈를 통해 모세, 예레미야, 제2이사야, 예수를 보는 방식은 내가 이전에 읽었던 여러 책들의 메시지와 오버랩되었는데, 그만큼 이 책이 이후 학자들과 목회자들, 운동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지대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가령, 랍 벨의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를 보면, 책 전체에 흐르는 브루거만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브루거만을 읽어감에 있어서 개인적인 고민은 저자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열렬히 동의하지만, 그의 학문적 방법론과 보수적 성경읽기 사이에 나타나는 긴장을 어떻게 해소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예컨대, 그의 중요한 강조점 중 하나인 ‘왕권의식과 예언자전통 간의 충돌’을 제시함에 있어서, 그는 구약 속의 군주제(특히 솔로몬)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솔로몬은 이스라엘 안에 나타난 전제주의적 왕권의식의 상징과 같은 인물로서 바로와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있는 인물이다. 솔로몬시대에 전제정치와 압제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음을 나도 인정하지만 브루거만의 해석은 지나치게 솔로몬과 그의 왕정(그 함의는 다윗왕조로까지 확대됨)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복음주의자로서 나는 성서 안에 나타나는 다양한 전승들(왕, 제사장, 예언자, 민중 등)간의 긴장과 충돌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가 비판적으로 배제되지 않고 건전하게 통합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싶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접촉점을 잃지 않고 소통해가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만약 우리가 브루거만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브루거만처럼 변혁적이고 예언자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정의를 갈망하는 이 시대를 향해 대답할 수 있는 곳으로 교회를 준비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브루거만을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하고 살아내기를 소망해본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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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성서신학자 D.A.카슨의 저작으로, 이머징교회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는 비판서로 평가받고 있는 책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머징교회운동을 현세대에 복음과 공동체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지지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머징교회운동가들의 저작을 읽을때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 감지되어, 이 운동의 명과 암을 균형있게 이해하고자 몇몇 비판서들을 읽었었다. 
그러나 그간 읽어온 이머징교회 비판서들(가령, 마이클 호튼이나 데이비스 웰스의 저작)은 이 운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이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공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에 비해서 이 책은 앞서 말한 책들보다 이머징교회운동에 대한 이해가 더 깊으며 그에 기반한 매우 적절하고 예리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한계는 있다. 가령, 저자가 묘사하는 이머징교회의 특징이 과연 전체 이머징교회운동을 충분히 대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머징교회운동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머징교회운동을 '강경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극단적 관점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과연 이머징교회 운동가들은 모두 강경한 포스트모더니스트 또는 극단적 관점주의자들인가? 그들은 우리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는가? '그들 자신이 진리주장에 대해 불신하고 냉소한다는 것'과 '진리주장을 불신하고 냉소하는 세대에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소통하기 위해 그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나 역시 후자의 이유로 인해 이머징교회운동에서 가능성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지, 강경한 포스트모더니스트나 극단적 관점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머징교회 바로 알기>보다는 <강경한 포스트모더니즘 바로 알기>나 <극단적 관점주의 바로 알기> 정도의 제목이었다면, 제목이 제시하는 목표를 완벽하게 수행해낸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 책 전체는 귀담아 들어야 할 예리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가령, 이머징교회 운동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A가 아닌 B로" 라는 이분법적이고 단순화한 도식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이러한 도식화가 기존 기독교 전통의 소중한 유산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한다(예컨대, 이머징교회운동이 자주 주창하는 "명제(교리)가 아닌 이야기로"라는 슬로건을 보자. 이것은 우리시대에도 변함없이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교리와 명제를 더이상 가치없고 무용한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뉘앙스를 풍긴다). 여전히 중요한 것을 부정함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주장을 강하게 각인시키고 권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머징교회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갱신운동과 개혁운동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므로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보다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머징교회의 접근법은 '되는 것'과 '속하는 것' 사이의 긴장을 성경적으로 충실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이 운동이 충분히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총평을 하자면, 이 책은 치밀한 논리와 설득력으로 비판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앞서 말한 이 책의 한계(이머징교회의 다소 치우친 형태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약점이 아니라 실은 장점이 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이 책이 이머징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머징교회의 다소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 책은 이머징교회와 그 운동가들을 향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그 선을 넘고자 한다면 이 책의 문제제기에 충실히 답변해낼 수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즉, 일종의 경계선 설정이며 경고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이머징교회운동을 지지한다. 그들이 나와 같은 믿음을 고수하는 가운데(예수그리스도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가 점근선적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음을 믿는 입장), 이 포스트모던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이머징교회라는 '방법'을 취하는 것일 경우에 나는 여전히 그들의 방법에 깊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으며 그들을 응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 나는 이 운동이 빠질 수 있는 함정에 주의하면서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변화이다. 역시 
이머징교회에 대한 최고의 비판서임은 분명한 것 같다. 

학문적으로 가장 옳지 못한 태도는 당사자들의 주장을 접하지 않고 비판서만 읽고 손쉽게 정리해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들께 먼저 이머징교회운동가들의 주장에 귀기울여 본 후에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또한 이머징교회를 지지하는 분들께도 이 운동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을 위해 한 권의 비판서를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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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마크 A. 놀 지음, 박세혁 옮김/IVP

나는 이 책이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와 더불어 복음주의를 이해하는데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둘 다 복음주의를 분석한 명저이지만 두 책의 논조는 매우 다르다.
맥그라스는 <복음주의와...>에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서 복음주의를 차별성있게 포지셔닝한 후, 복음주의가 걸어온 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미래 역시 희망적으로 조망해가고 있다(물론 맥그라스도 복음주의의 어두운 면을 한 챕터를 할애해 예리하게 기술하고 있긴 하다).
그에 비해 마크 놀은 이 책에서 맥그라스만큼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를 분명하게 구분짓지는 않는듯 하다(나는 그가 세운 범주가 현실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복음주의자의 다수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러한 근본주의적 성향의 복음주의의 가장 치명적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미국의 복음주의에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는지를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마크놀이 보여주는 복음주의의 어두운 면, 가령, 종말론에서의 극단적인 세대주의 성향, 정치에서의 미국 패권주의(기독교 우파), 과학에서의 성서문자주의에 기반한 창조과학 등은 미국 교회의 쌍둥이 형제인 한국교회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내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갈 책임이 있는 우리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이 필독해야 할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기회가 된다면 신대원 마치기 전에 학우들과 한 번 스터디해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복음주의의 반지성적 성향을 타겟으로 하여 쓰여진 책이지 복음주의를 균형잡힌 안목으로 정리해주고자 쓰여진 책이 아니다. 따라서 복음주의에 대한 평가가 다소 야박한 감이 있다. 복음주의의 공과 과를 균형있게 이해하려면 꼭 맥그라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도 병행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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