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성서신학자 중 한 사람이며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약학자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구약해석에 대해 던져주는 탁월한 통찰 때문임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학자와 설교자로서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필수적인 역할이란 '포스트모던시대에 기독교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주는 일'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위협으로만 인식해오던 교회를 향해 포스트모더니즘담론을 적극적으로 전유하여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힘있게 역설해온 학자들이 몇몇 있습니다. 윤리학과 조직신학분야에서 그 역할을 가장 활발히 수행해온 학자가 고 스탠리 그렌츠 교수였다면(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분이 주님의 품으로 일찍 가신 것이 참 아쉽습니다), 같은 역할을 성서신학 분야에서 수행하고 있는 최고의 학자는 단연 월터 브루그만입니다.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는 브루그만이 설교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엮은 책입니다.

여기서도 브루그만은 자신의 주요 관심사를 따라 '탈기독교시대에 필요한 설교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오늘날은 기독교가 공적 영향력과 설득력을 잃어버린 시대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바벨론 포로기의 유배된 백성과 같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설교자들은 상상력이 말라버린 낙심한 포로들에게 여호와신앙으로 현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도록 설교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러한 설교의 원동력은 '거대담론(메타내러티브)'의 위협적인 힘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이야기'들이 가지는 진실함이며, 그 형태는 '선포'보다는 '증언'이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번뜩이는 신학적 통찰과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인문학적 소양이 마구마구 쏟아져나옵니다. 매 장이 좋았지만, 특히 머리 보웬의 가족 치료 이론에 나오는 '삼각관계' 개념을 가져와서 텍스트, 설교자, 회중의 삼각관계를 이야기하는 2장은 정말 압권입니다. 

또한 석의의 기본원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5장은 설교준비에 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물론 브루그만의 구약 해석 중에는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이들이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브루그만이 부대끼는 분들이라도 신학의 목적이 결코 '피아식별'에 있지 않음을 마음에 새기며, 책을 통해 이 분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해보기를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브루그만은 우리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섣불리 배제해버리기엔 너무도 탁월한 멘토이자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기독교출판계에 종사하는 한 지인이 오스 기니스의 <소명>에 대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10년마다 한 번씩 평생동안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모든 설교자들이 10년마다 한 번씩 평생동안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브루그만에게 설교를 배운 일주일이 참 행복했습니다. 설교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초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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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제임스 스미스는 아브라함 카이퍼 계열의 신칼빈주의 전통에서 학문을 시작했고, 저명한 해체주의신학자 존 카푸토 밑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임스 스미스는 이렇게 개혁주의신학에서 포스트모던신학까지를 아우르는 넓은 학문적 스펙트럼을 가진 데다가 전달력마저 아주 탁월한 학자다(음. 이 사람 아무리 봐도 사기캐릭...). 
나는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살림 역간)를 읽으면서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는 포스트모던삼총사라 불리는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의 사상을 간략히 살펴본 후, 포스트모더니즘이 교회에 주는 도전과 기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접근하기 어려운 이 주제를 이렇게나 쉽고 재밌게 풀어내었다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꼭 읽어보기 바란다. 사실 이 책보다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가 열 배 정도 더 강추다).

<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는 저자가 자신이 속한 칼빈주의 전통에 있는 후배들에게 칼빈주의의 영광스러움과 어두운 면 모두를 일깨워주기 위해 쓴 책이다.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얇은 책이므로 읽는데에 부담이 없지만 내용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신학적 협소함과 독단을 순전함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칼빈주의자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교만을 향한 저자의 논조는 칼빈주의자의 내부비판이기에 더욱 가차없고 예리하다. 하지만 칼빈주의에 대한 저자의 자긍심과 애정 역시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용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비신학생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칼빈주의 전통에 있는 신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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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신학블록버스터 23화에서 소개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K3twj9HXOE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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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을 다니며 배움과 현장 사이의 괴리, 신학목회사이의 괴리에 대한 고민을 자주 듣게 된다. 일리 있는 지적인데다가 딱히 해결책도 마땅치 않아서인지, 시간이 흐르면 신학생들도 '신학 따로, 목회 따로'의 전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학의 의미에 대해서 고작 다른 건 모르겠고, 평신도 제압용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따위의 이야기들이 나도는 것을 들으면 참 씁쓸하다.

"그럼 신학도에게조차 이렇다면 과연 평신도에게는 신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게 내가 요즘 하는 고민이다.

생각이 잘 정리되진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건강한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서 목회자만큼이나 평신도가 바른 신학 위에 서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교회세습이 비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안다면 교회에 세습이 발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습이 시도될 때마다 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한 목소리로 강력히 반대한다면 당장 그 교회 안에서도 세습이 관철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매번 극렬한 저항에 부딪힌 여러 사례들을 지켜본 다른 교회들도 감히 함부로 세습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설교를 통해 비성경적인 메시지가 선포되거나, 교회 안에서 비성경적인 관행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것에 대한 교인들의 겸손하지만 단호한 문제제기가 일어난다면, 목사와 장로 등의 지도자 그룹은 바른 목회와 건전한 교회운영에 대해 그만큼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신도들에게 신학이 부재하면 그만큼 교회는 담임목회자 개인의 리더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 중에는 좋은 목회자를 만나 행복한 교회도 있고 나쁜 목회자를 만나 불행한 교회도 있다. 마치 복불복과 같은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교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그렇다면 평신도가 건전한 신학 위에 깨어 있어서 목회자의 건강한 메시지와 인격, 리더십을 이끌어내는 교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이상적인 이야기다. 현실이 이처럼 쉽고 단순하지는 않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와 갈등조정에는 상호간의 성숙한 태도와 섬세한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때로는 이로 인해 교회가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바른 신학 위에 서 있는 깨어있는 평신도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필수요소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쩌면 위기의 한국교회의 미래는 건전한 신학적 분별력을 가진 평신도 그룹의 등장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어 이 거창하고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평신도가 갖추어야 할 신학적 안목을 주는 책으로 행크 해네그래프의 <바벨탑에 갇힌 복음>을 강력 추천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집집마다 이 책이 한권씩 꽂혀 있고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본다면, 강단에서 자기 맘대로 떠드는 목사들은 그만큼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고 그만큼 한국교회는 건강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현재 북미에 횡행하고 있는 소위 '믿음운동', 그리고 '번영신학에 대한 아주 비장한 비판서다.

케네스 해긴, 케네스 코플랜드, 베니 힌, 조엘 오스틴, 마릴린 히키 등을 필두로 미국의 인기있는 유명 목회자들과 텔레비젼 전도자들이 무수히 거론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참담함''슬픔'이 교차했다. 이들이 복음을 왜곡하는 정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에 이런 탐욕의 쓰레기더미를 끼워파는 장삿꾼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참 슬펐다. 게다가 이런 거짓 복음에 속아 넘어가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도 안타까웠다. 이 번영복음 전도자들은 부와 명성과 인기를 얻을수록 더욱 거침없어져서 점점 그들의 메시지에서 복음은 사라지고 거대한 쓰레기더미만 남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수많은 책(그 중에는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잘되는 나>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초대박이 난 베스트셀러도 있다)으로 한국교회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이러한 류의 믿음운동과 번영신학으로부터 한국교회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이 책에 우리나라 목회자 한 명도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복음에 믿음운동과 번영신학을 교묘히 뒤섞는 사기꾼들을 적극적으로 분별하기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피해야 할 외국저자의 목록을 얻게 될 것이며, 국내 저자나 목회자에게서 유사한 메시지를 들을 때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값이 다소 비싸지만 번영신학에 대한 예방주사로 그만한 가치를 충분히 가지는 책이다.


<바벨탑에 갇힌 복음>, 레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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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대니엘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그의 추종자들로 대표되는 소위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한 맥그라스의 비판서입니다. 
맥그라스는 기독교역사학자,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격적으로 신학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옥스퍼드에서 분자생물물리학을 연구하여 스물넷에 이미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력이 있습니다(리처드 도킨스가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곳 역시 옥스퍼드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맥그래스는 최근의 전투적인 무신론 운동에 대해 가장 잘 답변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출간한 시기를 전후하여, 이미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도킨스와 논쟁을 한 차례 주고받은 바 있습니다(출간순서로 보면, 도킨스의 신 - 만들어진 신 - 도킨스의 망상의 순서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 두 사람의 논쟁을 따라가 본 제 개인적 소감은, 맥그래스가 말하는 바를 도킨스가 전혀 알아듣지 못함으로 인해서 의미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극단적이고 편협한 실증주의(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현재 입증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와 종교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주위에서 아무리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신론에 대한 철처히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마구 뒤섞어가며 현란한 칼춤을 춥니다. 
그러나 그는 맥그래스가 제기하는 ‘과학철학’의 문제, 즉 과학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답변은 고사하고 무슨 말인지조차 못 알아들으므로).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쏟아낼 수 있는 과학 지식의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과 상대방의 관점과 논지에 깔려 있는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의 폭과 깊이의 차이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른바 ‘과학 제국주의자’인 도킨스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맥그래스의 문제 제기에 적절히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도킨스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그간 맥그래스가 제기해온 심도 깊은 논점들을 고압적인 태도로 간단히 무시하며 조소합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상대방의 논지를 전혀 못 알아들은 이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순수한 용기를 느꼈습니다-.-; 도킨스를 비롯한 이런 전투적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맥그래스에게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이러다 나중에 맥그래스에게서 사리가 나올지도...).

이 책 <신없는 사람들>에서 맥그래스는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운동의 기수들의 주장을 간략히 살펴본 후, 이 운동이 가지는 한계와 맹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얇은 책이니만큼 논지 전개의 속도가 빠르고 분명합니다.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에서보다 글의 수준을 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었으며 시원시원하고 명쾌합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무신론과 최근의 전투적 무신론을 분명히 구분하며 무신론 전체를 조소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은 것에서 저자의 성숙함이 느껴집니다.
얇지만 내용은 알찹니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책입니다. 최근의 전투적 무신론 운동과 그에 대한 적절한 응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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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를 읽었었다. 당시 워낙 화제가 되었던 책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수없이 회자되고 있었기에 내용은 알아두어야 할 거 같았다. 
그러나 나에겐 그냥 그랬다. 문제의식도 무엇인지 알겠고 왜 의미있는 책인지도 알겠으나 흥미롭지가 않았다. 너무나 올바른 이야기를 반듯하게 말하는 모범생 같은 그의 필치가 와닿지 않았고, 게다가 수많은 성경본문을 일일이 찾아가며 읽어야 하는 책인지라 읽다가 진이 빠져버렸던 거 같다. 암튼 시험공부 하듯이 꾸역꾸역 겨우 완독했었다.
그래서 저자가 그 책의 연장선상에서 썼다는 비슷한 제목의 이 책을 보았을 때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정말 후덜덜하다...ㅜㅠ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 
<하나님 백성의 선교>라 써 있는 문을 별 기대감 없이 툭 밀었는데, 거기서 존 스토트와 르네 빠띠야와 레슬리 뉴비긴과 리처드 보캄과 톰 라이트와 브라이언 왈쉬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할 때의 충격이다.
그간 총체적 복음에 대해 말해온 대표적인 저자들의 목소리가 이 한권의 책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논쟁의 최전방에 서는 투사 스타일도 아니고, 혼을 쏙 빼놓는 현란한 필치의 달변가 스타일도 아니지만, 이렇게 반듯하고 담담하게 큰 그림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 크리스토퍼 라이트를 “포스트 존 스토트”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 납득이 간다. 이 책은 ‘온전한 복음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에 대한 큰 그림 그려주기’를 딱 알맞은 분량으로 너무도 훌륭하게 해낸 책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땐 그 나라의 아름다움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이 건조한(?) 책에서 말할수없이 큰 위로를 받았다. 진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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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불후의 역작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 중의 하나는 성경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해서 ‘세익스피어의 미완성 희곡을 공연하기’에 빗대어 설명한 부분이었다(“제5장 신학, 권위, 그리고 신약성서” 참고). 
그것은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종류의 권위를 가지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형성해가는가에 대해 이제껏 들어본 중에 가장 참신하고 탁월한 설명이었다. 나는 이 비유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이후로 QT, PBS, GIBS, 성경개관, 기타 등등 성경과 관련된 모든 강의에서 억지로라도 가져다붙여서 이 비유를 줄기차게 소개해 왔다.
한편으로 ‘라이트가 이 비유를 좀 더 확장하여 책 한 권을 따로 써도 정말 훌륭한 책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미 그런 책이 있었다^^*
라이트는 ‘연극의 비유’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을 썼다. 그가 보기에 성경의 권위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형성해가시는 하나님의 권위”다. 그는 이러한 이해가 소위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양분된 기독교진영이 각각 성경의 권위를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근본주의자’들은 축자영감교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를 보이며 성경을 개인경건재료나 규정모음집 정도로 대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성경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켜야할 내용과 지금은 무시해도 될 내용을 구분하는 기준은 모호하며 자의적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성경은 ‘권위’있는 책이 아니라 ‘참고’할 책 정도로 여겨진다. 비평적 시각에 의해 성경은 잘게 쪼개어져 역사적 진정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이들에겐 성경을 분석하고 해부하는 ‘이성’이 성경보다 더 권위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양극단의 성경읽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라이트는 성경이 하나님나라의 내러티브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창조(1막), 타락(2막), 이스라엘(3막), 예수(4막), 교회(5막)의 이야기, 즉 이스라엘을 지나 예수님을 통해 절정에 다다른 하나님나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신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새 삶을 얻게 된 이들에게 그 이야기의 5막 이후의 나머지 이야기를 직접 살아내라고 초청하신다. 이것은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방식의 삶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가는 앞선 이야기를 따라 그 이야기에 충실한 삶을 우리 시대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이 권위를 가지는 방식이다. 
비유는 단순하기에 아름답고 강력하지만 구체적 적용에 직면할 때는 모호할 수 있다. 저자는 그것을 알기에 책의 마지막 두 장을 사례연구에 할애한 듯 하다. ‘안식일’과 ‘일부일처제’라는 주제를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오늘날 성경을 통해 어떠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가를 우리 시대 최고의 성서학자 중 한 사람이 직접 시연해주고 있다. ‘안식일’에 대한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끝에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다. 이로써 이 책은 이론과 적용의 균형까지 갖추었다.

‘Christian Century’는 이 책을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지에 관한 여태까지 나온 책들 중 최고의 책이다!”라고 평했다. 내 비록 ‘여태까지 나온 책들 중..’ 운운할 만한 내공은 전혀 못되지만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읽어본 책들 중에서는 나에게도 단연 그랬다. 
단점을 꼽자면, 저자가 자신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까지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술서적이 아닌 대중서적을 목표로 했으니, 그러기엔 지면이 부족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 다른 책을 참고하라며 설명 자체를 넘기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저자의 기본적 주장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독자가 이 책만으로 그의 논지를 선명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날 성경에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성경은 어떻게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가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신학블록버스터 14화에서 소개한 책입니다.
14화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HzaVHU32z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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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와 미국문화>, 조지 마스든, 생명의 말씀사

 

논리적으로 추론해 볼 때, 근본주의 기독교는 그 이원론적이고 내세지향적인 성향으로 인해 현실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들에서 근본주의 기독교는 한결같이 정치적으로 극우의 포지션에 있다. "왜 근본주의 기독교는 정치적 우파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할 때에 반드시 참고해야만 하는 것이 이 책 <근본주의와 미국문화>다.

굳이 우리가 왜 미국상황을 알아야 하는가 싶지만 미국교회의 근본주의 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근본주의 기독교의 원류를 들여다보는 것이며, 또한 미국교회를 너무나 닮은 한국교회의 근본주의 현상을 이해하는데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기독교역사학의 최고 권위자인 조지 마스든의 대표작으로써 어니스트 샌딘 이후 근본주의 연구에 가장 큰 전환을 이루어낸 역작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870년대 근본주의의 발아기부터 시작하여 근본주의가 가장 위세를 떨쳤던 1920년, 그리고 갑작스럽게 쇠퇴한 1925년까지의 미국 역사를 매우 정밀하게 다루고 있다. 근본주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추리소설 이상의 몰입감을 줄 것이다(나도 이 책을 읽을 때 ‘맞아. 근데 왜 그렇게 된 거지?’하는 질문이 연이어 일어나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결국 새벽3시에 책을 끝내고서야 잠이 들었다).

이 책이 근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보일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을 통해 20세기 초반 근본주의의 발흥 이면에 놓여있는 근본주의자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행동의 동기를 꽤 많이 이해하고 납득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포인트 한 가지.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달랑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1980년대초 미국에서 새롭게 일어난 근본주의 현상에 대해 짧게 다룬다. 바로 제리 폴웰의 “도덕적 다수”를 비롯한 동시기의 여러 근본주의 운동들을 말함이다. 이 새로운 근본주의에 대해서 저자는 1920년대 근본주의보다 세속성이 더욱 강화되고 개인 성공에 대한 복음을 강조한다는 짤막한 설명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1920년대 근본주의에 대해 그 약점과 여러 폐해에도 불구하고 나름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것과 반대로 여기서는 냉소가 살짝 엿보인다.

이것을 통해서도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분단의 비극을 직접 몸으로 겪었던 한국 교회의 1세대 근본주의 지도자들이 보인 우파 성향이 시대의 한계 안에서 나름 진정성 있는 행보를 한 것이었다면, 오늘날 2세대 근본주의 지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우파 성향의 많은 부분은 성공과 번영의 복음을 추구하고 부와 기득권을 좆아가다 형성된 것이어서 참 씁쓸하다.

 

※ 함께 읽으면 유익할 책들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마크 놀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강추합니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를 공부할 때에 꼭 읽어야 할 3대 저서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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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라는 제목과 '우리 시대의 23가지 쟁점과 성서적 해법'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테마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정치, 이념과 세대갈등, 남북문제, 민족주의, 복지, 양극화, 농촌, 연고주의, 가정, 주택, 교육, 자살, 생태, 과학, 다문화, 여성, 근본주의, 종교다원주의, 교권주의 등 매우 폭넓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장은 먼저 해당주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현실태를 진단한 후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그 주제와 연결지어 고찰해보고 끝으로 저자의 해법 또는 논평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온건하고 상식적인 것이 외려 더 인상깊었다. 실제로 이 책은 래디컬한 관점을 기대하는 독자들을 실망시킬만큼 온건하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사회와 교회가 그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을 볼 때 오늘날 우리는 급진적 제자도를 말하기 이전에 이 잃어버린 상식부터 회복하는 일이 시급함을 느끼게 된다. 딱 여기서만 시작해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워낙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고 그 중엔 전문적인 영역도 꽤 있어서 해법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버겁게 느껴지는 주제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신학자로서 저자가 독자에게 주어야 할 것이 '답'이라기보다는 사안에 접근하는 '태도'라고 볼 때, 대부분의 주제들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충분한 통찰과 도전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몇몇 장들은 매우 훌륭했는데, 나에겐 최근 고민과 맞물려 있는 '근본주의'를 다룬 장이 특히 좋았다.

한국사회와 교회에 잃어버린 상식을 회복시켜주는 힘있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이다. 세상의 문제에 좀 더 관심가지기를 원하는 신학생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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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무신론 철학자였던 앤터니 플루와 부활논증 전문가로 알려진 게리 하버마스의 부활논쟁을 다룬 책이다.
두 사람은 25년동안 세 차례에 걸친 공식적인 부활논쟁을 벌였는데 그것을 계기로 교류가 시작되어 두 사람은 플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다. 
이 책에 실린 3차 논쟁이 있은지 얼마 후인 2004년, 앤터니 플루는 '유신론'으로의 전향을 선언해(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니다) 전세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그것에 게리 하버마스와의 대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책의 가치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시대 최고의 부활 전문가로 알려진 게리 하버마스의 부활논증을 들을 수 있다. 
둘째, 생각과 신념이 다른 두 사람이 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키워나가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실제로 나에겐 게리 하버마스의 논리적 치밀함과 자신감도 인상적이었지만, 앤터니 플루의 겸손함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무신론 끝판왕과 부활논증 끝판왕이 싸워서 부활논증가가 이겼다!'라고 말하기 위한 유치한 선전용으로 읽을 책이 아니다(책에서도 지적하듯이 반대방향으로의 전향 역시도 많이 일어난다). 그 대신 우리는 이 책에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기독교는 all이고 그 밖에는 nothing이라는 듯한 태도는 우리 시대의 복음전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지탄의 대상만 될 뿐이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서로를 따뜻하게 존중하며 정직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대화를 지속해가는 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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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사이에 내 페친들의 에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은 아마 <교회다움>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전통교회와 이머징교회 사이의 중도노선을 제시하는 책으로서 조금 먼저 출간된 <깊이 있는 교회>와 자주 비교되었고, 공자 중 한 명인 팀 체스터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컸다(아마 팀 체스터를 '포스트 존 스토트'로 소개한 영국IVP의 영향일 것이다).

그 화제작을 드디어 읽었다. 집어들고나서 만 하루도 안 되어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힘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깊이있는 교회>와 관련해서는 둘 사이의 차이점이 서로를 잘 보완해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깊이있는 교회>가 약간 더 이론적이라면 <교회다움>은 적용에 좀 더 강조점이 있다. 또한 두 책이 제시하고 있는 교회모델의 차이도 흥미롭다. <깊이있는 교회>의 뉴포트비치 리디머 장로교회는 교회형태는 전통교회에 가까운 대신 신학적으로는 (크라우디드 하우스에 비해) 좀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그에 비해 <교회다움>의 크라우디드 하우스는 교회형태(가정교회의 느슨한 연합체)는 파격적인데 비해 견지하고 있는 신학은 꽤 보수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전통교회와 이머징교회의 중간 영역에서도 꽤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실례로서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팀 체스터에 관해서는, 그를 '포스트 존 스토트'로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내가 보기에 그는 존 스토트보다는 오히려 로이드 존스를 연상시킨다. 물론 신학적 입장은 로이드 존스보다 존 스토트에 더 가깝겠지만 사람이 주는 느낌이랄까, 신앙의 결이랄까 그런 거 말이다. 확신과 열정은 큰 장점이지만 균형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관점이 협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목회적 돌봄'과 '영성' 파트는 저자의 견해가 상당히 좁아서 동의 안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러한 단점을 감안하고라도, 이 책은 쏟아져 나오는 교회에 대한 수많은 책들 중에서 꼭 읽어야 할 몇 권의 책 목록에 가뿐히 올라갈 책이다. 교회다운 교회를 고민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참으로 강력한 책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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