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성서신학자 중 한 사람이며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약학자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구약해석에 대해 던져주는 탁월한 통찰 때문임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학자와 설교자로서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필수적인 역할이란 '포스트모던시대에 기독교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주는 일'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위협으로만 인식해오던 교회를 향해 포스트모더니즘담론을 적극적으로 전유하여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힘있게 역설해온 학자들이 몇몇 있습니다. 윤리학과 조직신학분야에서 그 역할을 가장 활발히 수행해온 학자가 고 스탠리 그렌츠 교수였다면(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분이 주님의 품으로 일찍 가신 것이 참 아쉽습니다), 같은 역할을 성서신학 분야에서 수행하고 있는 최고의 학자는 단연 월터 브루그만입니다.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는 브루그만이 설교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엮은 책입니다.
여기서도 브루그만은 자신의 주요 관심사를 따라 '탈기독교시대에 필요한 설교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오늘날은 기독교가 공적 영향력과 설득력을 잃어버린 시대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바벨론 포로기의 유배된 백성과 같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설교자들은 상상력이 말라버린 낙심한 포로들에게 여호와신앙으로 현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도록 설교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러한 설교의 원동력은 '거대담론(메타내러티브)'의 위협적인 힘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이야기'들이 가지는 진실함이며, 그 형태는 '선포'보다는 '증언'이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번뜩이는 신학적 통찰과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인문학적 소양이 마구마구 쏟아져나옵니다. 매 장이 좋았지만, 특히 머리 보웬의 가족 치료 이론에 나오는 '삼각관계' 개념을 가져와서 텍스트, 설교자, 회중의 삼각관계를 이야기하는 2장은 정말 압권입니다.
또한 석의의 기본원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5장은 설교준비에 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물론 브루그만의 구약 해석 중에는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이들이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브루그만이 부대끼는 분들이라도 신학의 목적이 결코 '피아식별'에 있지 않음을 마음에 새기며, 책을 통해 이 분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해보기를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브루그만은 우리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섣불리 배제해버리기엔 너무도 탁월한 멘토이자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기독교출판계에 종사하는 한 지인이 오스 기니스의 <소명>에 대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10년마다 한 번씩 평생동안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모든 설교자들이 10년마다 한 번씩 평생동안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브루그만에게 설교를 배운 일주일이 참 행복했습니다. 설교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초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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