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대니엘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그의 추종자들로 대표되는 소위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한 맥그라스의 비판서입니다.
맥그라스는 기독교역사학자,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격적으로 신학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옥스퍼드에서 분자생물물리학을 연구하여 스물넷에 이미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력이 있습니다(리처드 도킨스가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곳 역시 옥스퍼드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맥그래스는 최근의 전투적인 무신론 운동에 대해 가장 잘 답변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출간한 시기를 전후하여, 이미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도킨스와 논쟁을 한 차례 주고받은 바 있습니다(출간순서로 보면, 도킨스의 신 - 만들어진 신 - 도킨스의 망상의 순서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 두 사람의 논쟁을 따라가 본 제 개인적 소감은, 맥그래스가 말하는 바를 도킨스가 전혀 알아듣지 못함으로 인해서 의미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극단적이고 편협한 실증주의(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현재 입증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와 종교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주위에서 아무리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신론에 대한 철처히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마구 뒤섞어가며 현란한 칼춤을 춥니다.
그러나 그는 맥그래스가 제기하는 ‘과학철학’의 문제, 즉 과학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답변은 고사하고 무슨 말인지조차 못 알아들으므로).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쏟아낼 수 있는 과학 지식의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과 상대방의 관점과 논지에 깔려 있는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의 폭과 깊이의 차이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른바 ‘과학 제국주의자’인 도킨스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맥그래스의 문제 제기에 적절히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도킨스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그간 맥그래스가 제기해온 심도 깊은 논점들을 고압적인 태도로 간단히 무시하며 조소합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상대방의 논지를 전혀 못 알아들은 이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순수한 용기를 느꼈습니다-.-; 도킨스를 비롯한 이런 전투적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맥그래스에게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이러다 나중에 맥그래스에게서 사리가 나올지도...).
이 책 <신없는 사람들>에서 맥그래스는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운동의 기수들의 주장을 간략히 살펴본 후, 이 운동이 가지는 한계와 맹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얇은 책이니만큼 논지 전개의 속도가 빠르고 분명합니다.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에서보다 글의 수준을 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었으며 시원시원하고 명쾌합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무신론과 최근의 전투적 무신론을 분명히 구분하며 무신론 전체를 조소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은 것에서 저자의 성숙함이 느껴집니다.
얇지만 내용은 알찹니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책입니다. 최근의 전투적 무신론 운동과 그에 대한 적절한 응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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