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탄생』은 아날학파의 거장 자크 르 고프가 연옥의 형성사를 연구하여 발표한 저서이다.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연옥의 탄생』은 저자가 역사학자로서 중세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민중들의 삶, 그리고 여러 사상과 신앙의 교류들을 살펴보며 그 안에서 연옥의 개념이 싹트고 꽃피우게 된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본서를 집필한 저자의 의도와 관심이 연옥사상의 신학적 정당성을 다루는 데에 있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필자 역시 연옥 개념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보다는, 연옥에 대한 역사적 연구라는 본서의 주제에 맞게 본 서평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먼저 본서의 내용을 약술해 보도록 하겠다.
연옥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저자는 본서의 제1부에서 고대근동과 유럽의 주요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내세 신앙을 개관하며 살펴본 후 거기에 이미 중세에 연옥사상이 형성되게 하는 씨앗이 될 만한 믿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대교 지혜문학과 예언서, 그리고 구약 외경과 위경들 안에도 천국과 지옥 외에 과도기적 형벌을 겪는 제3의 장소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만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약성서를 살펴보면 연옥신앙을 배태한 보다 직접적인 씨앗들이 존재한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오는 세상에서 사함 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는 논리적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는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과 지옥이 아닌 제3의 대기소에 대한 고중세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리고 바울이 피력하고 있는 ‘공력을 시험하는 불’ 사상을 들 수 있다. 이 본문은 천국으로 가기 전에 공력을 시험받고 정화되는 제3의 장소에 대한 암시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민간의 영역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많은 민담과 전설들이 형성되는 상상력의 원천이자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연옥 사상은 이러한 본문들에 대한 수많은 교부들과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발전해가기 시작했다.
제2부에서는 초기의 ‘정화하는 불’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민간전승과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연옥사상을 이루는 요소들이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갔던 4세기에서 12세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연옥 사상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가다가 12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연옥이 시공간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명확히 정의되기 시작한다.
제3부에서는 이후 13세기에 스콜라 신학 안에서 연옥의 개념이 체계화되고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명확히 규정되고 법제화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와 같이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연옥 사상이 종합되어 녹아든 위대한 예술작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의 『신곡』은 중세 연옥사상의 문학적 종합이자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본서는 『신곡』에 나타난 연옥 사상에 대한 해설에 마지막 장을 할애하고 있다.
중세에 연옥사상의 형성에 기여한 수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저자는 특별히 사회적 요인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연옥 사상의 발전은 임박한 종말론의 퇴조로 인해 나타난 현세지향적 성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믿었기 때문에 개인의 죽음과 최후의 심판 사이에 있는 시간적 공백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이 계속적으로 연기되어감에 따라 자연히 사람들 사이에는 죽음과 심판 사이의 기간에 영혼이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크게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연옥 개념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연옥 형성사를 살펴보면 왜 연옥 사상이 12세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지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열린다. 12세기는 로마의 멸망 이후 쇠퇴를 경험하던 유럽사회가 다시 성장과 발전을 경험하기 시작한 번영의 시기였다. 이러한 번영의 시기에는 연옥사상이 흥왕하기에 알맞은 현세지향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연옥사상이 어떤 점에서 현세지향적 성향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는가? 연옥 사상의 요체는 죽음 이후에 망자가 사면가능한 죄들을 정화한 후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제3의 처소가 존재하며, 이 곳에 있는 망자들의 구원에 살아있는 자들이 기도와 보시, 미사 등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연옥은 구원의 기회를 죽음과 최후심판 사이로 연장하는 기능, 즉 구원에 있어서 ‘현세의 연장’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연옥의 그러한 측면이 현세에 안전하게 뿌리내린 채 천국의 희망을 붙잡기를 원했던 중세 말기 민중들의 갈망에 잘 맞아떨어지는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연옥 사상을 형성한 사회적 요인의 또 다른 예로, 연옥사상이 교회가 민중들을 교화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유리한 점을 제공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연옥 사상을 통해 교회가 중세인들의 내세에까지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에 이 사상이 교회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법제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기독교신앙과 여러 민간전승과 전설들의 혼합, 거기에 구원을 향한 민중의 갈망과 민중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교회의 필요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연옥 교리는 형성되었고 중세교회사 속에 뚜렷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연구의 모범, 그리고 아날 학파
필자가 본서를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매우 광범위한 시대에 걸쳐 방대한 자료들을 조사하며 다양한 견해들을 비교 연구하고 있는 저자의 역사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실성이었다. 저자는 연옥 사상의 발아기부터 완성기까지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연구를 위해서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무려 천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나타난 대부분의 연옥 관련 문헌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의 가치를 생각해 볼 때, 연옥이라는 연구 분야에서 이루어낸 학문적 성과에 일차적 가치가 있음은 당연한 것이겠으나, 저자가 역사를 연구하는 태도와 방법론에서 역사연구의 한 전형과 모범을 배우게 되는 것에도 본서가 주는 추가적인 큰 유익이 있다는 역자의 평가에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또한 필자가 본서에 특히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점은 저자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민중들의 실제적 삶이 가지는 의미를 중시하고 그것을 역사적 사료로서 매우 가치있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속해 있는 학파의 학문적 경향성과 특징이기도 하다.
역사학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는 본서를 읽으면서 비로소 자크 르 고프나 아날학파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크 르 고프는 역사학 분야에서 매우 큰 영향력과 입지를 가지고 있는 학파인 ‘아날학파’의 제3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학계의 거두였다. 아날 학파는 기존 역사학자들이 위인이나 정치적 인물 위주로 역사를 이해하고 주요 정치적 사건의 연대 위주로 역사를 파악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한 흐름이다. 이들은 정치적인 주요사건보다는 전체적인 사회 현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위인이나 통치자, 정치인 등으로 대표되는 거물급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주요사건들의 연대를 통해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했던 기존의 역사학자들과 달리, 그 사회나 시대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역사를 파악하는 것을 더욱 중시하는 학파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역사연구에 있어서 ‘아날 학파’로서의 이러한 특징적인 접근법은 본서 전체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만약 기존 역사학의 접근법대로 연옥 사상이 교회법이나 당대의 주요한 저술들 안에 정립되어 나타나는 시기를 기준으로 연옥 사상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연옥의 형성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는데, 이것은 그의 아날학파적 관점에서 나온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그 생각은 본서에 명시적으로는 한두 번 정도 언급되지만, 사실은 본서 전체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전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연옥 사상은 중세 시대의 민중들이 교회와 관계맺으며 살아가던 실제적 삶의 영역에서 형성되어간 것이며, 오히려 당대의 교회법이나 신학적 저술들은 실제적 삶의 자리에서 형성되어간 이 사상을 뒤늦게 따라가며 체계화하고 공식화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13~14세기의 연옥에 대한 스콜라적 체계화에 강조점을 두기보다는, 12세기까지 흘러오며 연옥 사상을 무르익게 했던 민중과 교회가 공유했던 사회문화적 정황들에게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아날학파가 기존 역사학의 방법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제 의식과 그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역사연구방법론은 본서가 필자에게 주었던 매우 큰 통찰이자 유익이었다. 필자가 그동안 접해왔던 세속역사와 교회사의 내용들을 돌아보면 정치적 인물들과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이 대부분이었다.
역사 기술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쉼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과거의 인물과 사건들이 역사의 주목을 받고 기록되는 것은 불가능함이 분명하다. 그래서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하고 있듯이, 역사가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만 선택적으로 기록하고 정리하게 되어 있으며, 그 선택에서 이미 ‘해석’이 일어나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석’이 배제된 객관적 역사서술에 대한 생각은 근대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사학이란 결국 ‘무엇을 역사로 볼 것인가’하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기존의 정치적 인물과 정치적 사건들 위주의 역사 기술은 사실 세상은 그처럼 주목받는 소수가 아닌 수많은 무명인들의 집합인 민중들에 의해 흘러간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진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하다보면 세상이 관심을 가질 만한 유명인물과 유명사건에 역사기록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누적된 사료들이 또 후대의 역사연구에 사용되면서 역사연구가 전개되어 나간다고 할 때, 역사가가 굳이 유명인과 유명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에 대한 기록이 가장 쉽게 확보 가능한 사료들인 바, 유명인과 유명사건에 대한 연대기적 정보는 어차피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와 같이 자연히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경향성이 있을 때에 균형을 잡으려면 의식적으로 반대쪽으로 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역사가가 정치적 인물과 사건보다 일반 민중의 삶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연구해 갈 때, 우리는 그를 매우 균형잡힌 역사가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법으로 기술된 역사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더욱 균형 잡히고 실제 모습에 근접한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필자는 아날 학파의 거장 자크 르 고프가 쓴 『연옥의 탄생』을 통해서 앞으로의 역사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받은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이들 학파가 가진 문제의식과 연구방법론이 더욱 역사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연옥사상의 절정 - 단테의 『신곡』, 연옥편
또한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본서의 마지막 장에서 단테의 『신곡』에 나타난 연옥 개념을 해설하는 부분이었다. 필자는 『신곡』이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고전 중에 하나로서 중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는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여러 번 『신곡』 읽기에 도전하였으나, 서사시라는 익숙치 않은 장르로 인해,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상징들에 질려서 매번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연옥에 대해 풍성한 이해를 갖도록 돕는 본서를 읽은 후에, 본서의 말미에서 저자의 해설과 함께 『신곡』의 연옥편을 조금 맛보니 그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깨달음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신곡』이 고대와 중세의 수많은 인물들의 삶과 사상들이 녹아들어가 있는 고도의 상징문학이며, 독자가 더 많이 알수록 더욱 수많은 보화를 캐낼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본서를 읽은 후 단테의 『신곡』 읽기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마음을 갖게 된 것이 필자가 개인적으로 얻은 또 하나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치며 - 소감, 평가
끝으로 필자가 본서를 읽으며 정리해 본 연옥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밝히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동안 중세 교회의 연옥 사상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필자가 연옥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식이라고는, 중세 교회는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다고 믿었으며 연옥에 있던 사람들이 형벌의 분량을 채우면 천국으로 가게 된다고 믿었다는 정도의 단편적인 이해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러한 연옥 사상은 이신칭의를 핵심으로 하는 구원론을 가지고 있는 개혁주의 개신교도인 필자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연옥 사상은 도대체 출처를 알 수 없는 뜬금없는 교리였고, 중세기에 기독교의 교리가 수많은 미신과 전설, 관습들과 혼합되던 시기에 형성된 무지의 산물 정도로 간주되고 있었다. 게다가 종교개혁만이 우리 개신교도들이 연옥 사상을 접하게 되는 가장 잘 알려진 역사적 맥락이었다는 점도 연옥의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잘 알다시피, 중세 말기에 면죄부 판매가 바로 이 연옥사상과 결합되어 종교개혁을 야기할 정도로 극도로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에게도 연옥 사상은 마치 부패한 중세 교회가 돈벌이를 위해 창안해낸 개념인 듯한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껏 필자를 당혹하게 했던 것은 현대 가톨릭 교회가 전근대의 무지를 통과한 후에도 -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 여전히 연옥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왜 가톨릭 교회에서 연옥의 교리가 유지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엔 필자의 연옥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고 피상적이었다. 그래서 현대 가톨릭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언젠가 연옥 사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해 볼 기회가 생기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과목을 통해 『연옥의 탄생』을 소개받고 읽게 된 것은 필자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유익이었다 하겠다.
물론 본서를 읽고 난 후라 하여 필자가 이제 연옥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중세인들이 연옥 사상을 지지해준다고 믿었던 성서구절들은 성서 전체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한두 구절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부풀려 받아들이게 된 오류였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여전히 연옥 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그럴 필요성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본서를 읽으며 얻게 된 수확은 연옥 사상이 단지 이교적 신앙에 영향을 받은 교회의 변질이거나 또는 - 더 나쁘게는 - 교회가 중세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한 왜곡된 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데에 있다. 연옥 사상은 중세인들이 그들의 신앙 안에서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성찰해낸 결과물이며 나름 그들의 세계 안에서 나름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상이었다. 또한 연옥 사상의 근저에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즉,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출생하자마자 죽은 원죄만 있는 영아와 수많은 죄를 저지른 극악한 범죄자를 지옥에서 같은 방식으로 벌하시겠는가 하는 신정론적인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연옥 사상을 형성했던 종교적 요인 중 하나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에 의거하여, 그 하나님의 공의가 죽음 이후의 심판의 공정함으로도 일관성 있게 나타날 수 있도록 교리적 정합성을 추구했던 중세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고 구원하시는 방식은 우리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연옥 형성사는 이러한 신비를 이성에 납득이 되도록 정리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문화적 정황과 맞물려 점점 거대해진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옥 형성사를 돌아보며 신앙에 있어서 우리에게 아직 밝히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영역을 계속 신비로 남겨두는 겸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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