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렌토르프(Rolf Rendtorff)의 『구약정경신학』은 『The Canonical Hebrew Bible : A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의 2부를 번역하여 출간한 책이다. 1부는 구약성서를 권별 흐름에 따라 정리해 놓았으며 2부는 주제별로 정리해놓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작품처럼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원래 한 책으로 묶여있던 것이 저자의 의도이므로 이 책도 1부와의 연관성 속에서 읽을 때에 비로소 저자의 신학과 구약연구방법론의 독특한 맛과 멋을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구약학 개관 수업을 통해 본서의 1, 2부를 함께 읽으며 거장의 신학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유익이었다.

먼저, 렌토르프가 취하고 있는 신학적 방법론을 살펴보자. 렌토르프는 성서의 최종형태로서의 본문이 일차적 관심사와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지난 세월을 지배해 왔던 성서해석 방법론인 ‘역사비평’이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이 있다. 성서해석사에 있어서 역사비평의 출현은 성서연구에 큰 기여를 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성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배달되어온 책이 아니라 특정한 시공간상에서 형성되어온 책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과 그것이 자리했던 역사와의 관계들을 밝혀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역사비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비평을 통해서 성서해석은 이전에 없었던 다양한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성서를 보다 풍성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성서해석사에 있어서 역사비평이 했던 독특한 기여였다. 이러한 역사비평은 이성을 무한히 신뢰하며 객관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시대에 매우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져 근대의 성서해석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곧 역사비평은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성서 본문의 역사적 진정성에 대한 지나친 의심으로 인해서 본문을 심하게 자르고 재단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시대의 성서학자들은 이러한 ‘의심의 해석학’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은 결국 역사비평의 관심사는 성서본문(text)보다 본문 너머에 있는 역사적 상황(context)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비평은 당연히 ‘의심의 해석학’을 추구하며 그것은 본문의 해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성서 뒤에 숨겨져 있는 ‘진짜’ 역사를 밝혀내야 한다는 역사비평의 전제는 결국 성서를 최종본문의 형태로 완성시킨 편집자의 의도를 불순한 것으로 보고 편집이전의 ‘순수한’ 형태를 추적하고 본문을 편집이전의 요소들로 분해하게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은 우리가 본문 너머의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여도 우리가 반드시 진짜 역사를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진짜 역사를 발견했다 해도, - 물론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역사는 매우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 우리의 최종적 관심사는 역사보다는 본문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문의 역사적 상황(context)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본문(text) 자체를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성서를 오늘날 주어진 최종형태의 본문으로 존중하게 하며, 또한 그 최종 형태가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묻게 한다. 여기에서 역사비평이 주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들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역사비평과 구분하여 '정경비평'이라고 한다. 롤프 렌토르프는 정경비평의 초석을 놓았다 할 수 있는 구약신학의 거장 폰 라트의 제자로서, 정경비평의 방법론을 계승하고 더 한층 발전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라고 한다.

나는 본 강의를 수강하기 전까지는 ‘정경비평’이나 ‘렌토르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렌토르프의 주장은 나에게 전혀 낮선 주장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내 관심사 중의 하나인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도 최근에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렌토르프의 정경비평적 방법론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의 톰 라이트(N. T. Wright)의 방법론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는 역사비평을 극단적으로 적용하여 복음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전적으로 부정되고 완전히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재구성하는데까지 나아갔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로버트 펑크, 도미니크 크로산, 마커스 보그 등이 활동했던 ‘예수 세미나’이다.

톰 라이트의 예수 세미나에 대한 비판은 매우 예리하며, 렌토르프의 문제의식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극단적인 의심의 해석학은 결국 성서본문에 대한 철저한 해체를 낳게 되고 그 이후의 재구성에 있어서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과 선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는 객관적 역사를 복원한다는 착각 속에서 실은 자신이 원하는 역사를 창조하여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근거로 그는 역사적 예수연구에서 이러한 극단적 역사비평을 적용한 학자들이 대부분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상을 재구성해내었음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여 톰 라이트는 기존의 역사비평의 방법론을 적용하되 복음서의 최종형태를 존중하면서 연구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방법론의 철학적 전제를 ‘비판적 실재론’이라 부른다. 그리고 성서를 올바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의심의 해석학이 아닌 ‘사랑의 해석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사랑의 해석학’이란 성서 텍스트의 최종형태에 대한 존중와 신뢰를 가지고 성서를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톰 라이트의 이러한 연구는 성공적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으며 복음서 연구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런데 이 책 『구약정경신학』을 통해서 구약학계에서 톰 라이트와 비슷한 문제의식과 신학적 접근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렌토르프를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또한 그가 구약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매우 기뻤다. 이와 같이 구약학계와 신약학계 모두에서 역사비평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며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결국, 성서해석의 역사를 돌아보면, 최종본문이 존중되었던 역사비평 이전의 시대(전근대), 그리고 역사비평이 지배해 오던 근대의 시대를 지나 다시 최종본문이 강조되는 시대(탈근대)가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근대 이전의 성서문자주의 시대로 다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성서의 최종형태를 존중하고 전체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그동안 역사비평을 통해 축적되어온 수많은 통찰들이 정경비평에 기여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경비평에 입각한 성서연구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이 본서와 같이 성서 전체에 흐르는 주제들을 밝혀내고 서술하는 신학적 작업일 것이다. 역사비평에 입각해서도 구약신학을 체계적으로 세우는 작업이 물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비평의 관점에서는 성서의 최종본문에 대한 편집자의 정치적 의도 등을 문제 삼으며, 성서 본문들이 상반되는 관점을 가진 다양한 출처들에서 나와서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성서 전체의 신학적 맥을 잡는 시도를 할 때에는 역사비평의 방식은 성서전체의 일관성과 응집력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 어렵다는 약점을 가질 것이다.

그에 반해 렌토르프는 『구약정경신학』에서 구약성서 전체를 최종형태로 존중하면서 구약의 여러 본문들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주요주제들을 개관하고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구약성서가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쓰여진 책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배후에서 계시를 통일성있게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이 명백히 나타나는 매우 놀라운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막 신학을 시작하는 초보신학도로서 여러 구약학자들을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방법론을 놓고 추론해 보자면 구약성서에 나타난 계시의 통일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학자가 이 렌토르프가 아닐까 생각된다.

렌토르프는 구약성서를 통일된 작품으로 우리에게 열어보여 준다. 예컨대, 구약이 계시적 통일성을 이루는데 모세오경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18개의 주제들 중에서 창조, 언약과 선택, 족장, 땅, 출애굽, 토라, 제의, 모세라는 8개의 주제가 모세오경에서 출현하고 자리를 잡는다. 그 후에는 - 오경에 언급되지 않은 다윗과 시온이라는 주제가 추가되긴 하지만 - 대부분 모세오경이 제시한 주제가 상호관련성을 맺으며 심화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구약성서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성서를 읽을 때에 대부분 책별로 읽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성서 앞뒤를 쉴새없이 넘나들며 관련구절을 찾아야 하는 방식의 책읽기는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성서구절들을 찾는 과정을 통해 구약성서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나타내는 다양한 방식들 - 어떤 주제가 여기서 암시되고 저기서 구체화되고, 또 여기서 예언되고 저기서 성취되는 흐름들 - 을 발견하며 구약성서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책의 주제가 구약개관 - 이것이 1부의 주제이다 -이 아니라 구약신학인 것을 고려해 볼 때, 저자만의 독특한 신학적 강조점이 좀 더 나타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물론 구약성서의 전반적인 흐름을 책별로 개관하여 준 후(1부), 구약성서에 나타난 주제들을 나열하여 제시하여 주는 것(2부)이 이 책의 목표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한 면에서는 이 책이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차피 신학의 영역에 있어서 객관성이라는 것이 철저히 담보되기는 어렵다고 볼 때, 독자가 이러한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학자의 관점과 성서가 상호교류하는 것을 접하며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다양한 통찰들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의 얕은 소견에서 보았을 때는, 저자가 구약성서의 내용을 주제별로 잘 분류하여 나열해주고 있지만 렌토르프만이 가지는 독특한 신학적 강조점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월터 브루거만의 경우, 그의 저서에는 ‘약자를 압제하는 체제에 대한 예언자적 선포와 항거’라는 신학적 강조점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가 모세 전승과 다윗 전승을 긴장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 다윗 전승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성서 전체의 계시적 통일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약점이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뚜렷한 신학적 강조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통찰과 자극을 주고 있다. 이에 반해 렌토르프는 너무 건전하고 균형잡힌 관점을 견지하고자 하는 나머지 그것이 오히려 독자들이 깊이 사고하도록 자극하고 밀어붙이는 힘이 약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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