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갑자기 한시반 예배에서 설교를 하라는 전화(엉?)를 받고 뜨겁게 버닝한 나의 모닝(라임 좋다ㅋ).

아슬아슬하게 설교문을 뽑아들고 택시를 탔다. 정신없이 설교문을 읽고 있는데 하필 오늘따라 택시기사님이 이런저런 말을 거신다. 
조용히 운전만 해주시길 간절히 바랬으나, 왠지 이 분 얘길 들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회 안 다니신다는 그 기사님은 내가 전도사라고 하니 이런 얘길 하셨다.
"조용기 목사가 150억을 횡령했다면서요? 목사가 왜 그러는 거요?"
"요즘 교회들 보면 도대체 교회인지 기업인지 알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예수님은 정말 대단한 분인거 같던데 말이야. 왜 목사들, 교회들이 예수님처럼 안 하는 거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젊은 우리들이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고 예수님 뜻대로 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돈독오른 목사, 기업같은 교회는 구리다. 하지만 예수님은 훌륭하다"
물론 이 분이 세상의 시선을 대표한다고 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을 가진 외부자의 말이 이렇다. 
여기에 절반의 아픔과 절반의 희망이 교차한다.
세상조차 이미 구리다고 선언한 그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이 아직도 스타목사, 대형교회의 욕망 한 자락을 숨기고 기웃거린다. 이것이 절반의 아픔이다.
하지만 교회를 욕하는 이도 예수님만은 알아보고 인정한다는 사실에 나머지 절반의 희망이 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좀 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을까... 
전도전략 나부랭이가 아니라 오직 여기에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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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간 저희부부는 제 소박한 간사월급으로도 전세대출빚 다 갚고 어머니 생활비도 드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 있으면 도우면서도, 아무 부족함 없이 잘 살았습니다.
어찌 그게 가능했나 생각해보니, 화장품 전혀 안 바르고 면생리대를 쓰며 꼭 필요한 소비만 하는 검소한 아내 덕분입니다.
(물론 저도 수련회다니며 받았던 전국의 IVF티들을 돌려 입으며 매년 여름을 날만치 돈을 안 쓰는 편이긴 합니다. IVF티 입고 신촌 활보요? 전 가능합니다ㅋㅋㅋ) 

그런 제 아내가 쓴 글이 <한겨레21>에 실렸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화장 안 하는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아내는 화장품 을 끊은지 5년이 넘어갑니다만, 제가 아는 가장 피부좋은 여인입니다.
여성들이여. 화장품 안 쓰면 피부가 더 좋아집니다.
화장품없는 삶... 도전해보세요^^


한겨레21 <그들의 절교선언> - 소비 중독과 과잉경쟁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고 비워내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

기사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4461.html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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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름수련회 장소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교회차를 타고 한양대앞 사거리를 지나는데 창 너머에 노방전도를 하고 계신 저희 교회 권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이제는 오후 햇살이 제법 따가워진 날씨에 썬캡을 쓰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전도지를 건네시고 때론 거절당하며, 바닥에 떨어진 전도지를 주워 다시 건네시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볼세라 황급히 눈물을 꾹 눌러 집어넣었습니다.

제가 저희 교회에 온 후, 대예배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던 날이 기억납니다. 
연세가 정말 많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한 할머니를 그 분의 딸(또는 며느리)로 보이는 역시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부축해서 들어오셨습니다. 예배당 입구에서부터 자리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셨던 두 분은(그렇다면 이 분들이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저희 교회까지 올라오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셨을까요...) 바로 제 앞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따님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일어서서 폐회송 “여기에 모인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교회에서 어르신들의 신앙과 삶에 감동받은 일이 이밖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보를 접으신다는 저희 교회 권사님들을 얼마 전에 직접 뵙고 어찌나 연세가 많으시던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저희 청년부 수련회 마지막 날에는 수련회기간동안 매끼 식사를 만들어주신 권사님/집사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집니다. 매번 극구 사양하시다가 결국 못 이기시고 젖은 손에 장화를 신은 채로 인사를 받으러 들어오시는 그분들의 해맑은 웃음과 쑥스러워하시는 얼굴들을 마주칠 때면 왠지모르게 눈물이 핑 돕니다. 

“무엇이 충성스런 삶입니까? 섬김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합니까? 예배는 어떤 태도로 드려야 하죠? 전도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역자로 살면서 이러한 질문 앞에 서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간사로서, 전도사로서, 신학생으로서, 이러저러한 경험들을 쌓았고 배움의 기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매달 수십권의 책을 읽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게 쌓이다보니 어느새 아는 것도 제법 늘어났나 봅니다. 여전히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런 저에게 뭔가를 배워보겠다고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지식으로도 감히 저는 이 분들의 삶 이상의 대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에 대한 질문 앞에 설 때에 ‘저들의 모습을 보라’고 가리켜 보일 수 있는 어르신들이 이렇게 가까이에 계심이 말할 수 없이 큰 격려와 위로가 되는 밤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히 저희들 옆에 계셔 주세요...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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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예배를 선교사 파송예배로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의 딸로서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서 자라고 교회를 섬겼던 자매여서 많은 분들이 서운했나봅니다. 예배 내내 여기저기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분들이 보였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격려사를 하러 나오셨습니다. 그 장로님의 아들 역시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로 먼 타국에 나가있는 분입니다. 장로님은 오늘 파송되는 선교사 부모님을 위해 위로의 말을 하시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꺼내셨습니다.
권사님(장로님 아내)이 최근에 몸이 안 좋아 선교사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드님이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친구가 개업한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해놓으셨답니다(이 선교사님 역시 의사입니다).
그래서 장로님 부부가 함께 강남에 있는 아들 친구의 병원에 갔는데, 깨끗한 최신식 병원에서 말끔히 차려입고 나오는 아들 친구를 보고 그만 권사님이 울음이 터지셨다고 합니다. 당신 아들도 한국에 있었으면 이렇게 의사하면서 편안하게 잘 지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셨겠지요.
덤덤하게 말씀을 이어가시던 장로님도 이 얘길 하시면서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우셨습니다.

아들이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는 슬픔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중년의 부부가 미혼의 딸을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보냅니다. 예배 후에 선교사딸과 부모님이 함께 기념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는 오늘 그 예배에서 선교사와 그들의 부모가 함께 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복음은 그만큼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이 가는 길은 옳습니다. 제 삶도 조금이나마 그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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