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이학사

 

철학을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생겨, 쓸만한 서양철학사 책을 찾아 한동안 여러 서점과 도서관의 철학 코너를 뒤지고 돌아다녔습니다.
고된 리서치와 발품 끝에 선정한 서양철학사 원픽 도서는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입니다.

공저자인 군나르 시르베크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이 책은 이들이 일반 대학생을 위한 교양 철학 교재로 쓴 책입니다.
입문서라면 비전공자가 조력자 없이 텍스트만 읽고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철학 문외한도 정신줄만 단단히 붙잡고 읽으면 이해 못할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있습니다.
대가의 쉽고 간결한 설명에 여러번 감탄하며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책입니다.
벽돌책 단권 분량의 서양철학사 중에서 가독성은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시대별 분량 배분도 알맞고, 현대철학에서 유럽과 영미철학의 분량 배분도 적당합니다. 또한 그 어떤 서양철학사 책보다 연관학문들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철학 입문서로서 여러 면에서 균형과 적절함을 보여주는 흠잡을 데 없는 책입니다.

한 블로거가 우스갯소리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인지도'라고 하더군요.
철학비전공자가 이 정도 볼륨의 서양철학사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테니 이왕이면 러셀이나 렘프레히트, 힐쉬베르거 등을 읽는게 어디 가서 생색내기 더 좋지 않겠냐는 거지요.(ㅋㅋㅋ)
독서의 목적이 어디 가서 젠체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신경쓸게 없는 단점이 되겠네요.^^
이 책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이 책이 앞서 언급한 유명한 서양철학사 책들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하나 하자면, 이 유일한 단점은 10년 내에 사라질 것입니다. 이 책은 향후 10년 이내에 렘프레히트, 또는 스텀프의 책을 끌어내리고 입문서의 왕좌에 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러셀의 책은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많이 받고 있지만 이미 하나의 인문학 고전이자 브랜드가 되어 있으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일독의 유익도 상당했지만, 다 읽었을 때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다섯번 정도는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대부분의 인문학의 토대가 되는 학문입니다.
관심분야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쌓을 목표로 철학에 도전하기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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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옥명호, 옐로브릭

최근 여러 사상가들은 인간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몸에 각인된 좋은 습관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진정한 사랑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습관에서 나온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는 많지만, 자녀를 위해 십년 이상 매일 밤 책을 읽어준 부모는 흔치 않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좋은 아빠됨을 고민하던 때 읽어서인지 울림이 매우 큰 책이었다.
저자는 원양어선 선원이었던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랐다. 먼 바다에서 돌아와 아들에게 책 한권을 건네고 간 '부재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마음 짠하게 다가왔다. 
보통은 자신이 경험한 부재를 그것을 대물림하는 핑계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하는 아버지를 경험 못 해서 자녀와 어떻게 함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저자는 매일밤 책읽기를 통해 자녀들에게 '함께 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묵묵히 실천했다. 야근 많은 고단한 편집자의 삶이 얼마든지 부재의 명분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심지어 출장을 가면서도 미리 책읽기를 녹음해서 남겨두고 간 저자의 성실함이 참 놀랍다. 아이들은 녹음된 아빠 목소리를 듣다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책을 읽어주면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된다느니 하면서 부모의 욕심을 자극하는 말들이 아니어서 참 좋았다.
함께 함을 실천하는 '사랑의 책읽기'냐 공부 잘 하는 자녀를 만들려는 '욕망의 책읽기'냐에 따라, 외형은 같아보이는 실천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 올 것이다. 
후자는 결국 자기 욕망을 위한 제사이며 그 욕망에 시달리는 자녀는 불행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은 '책읽기'라는 컨텐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읽기가 아닌 무엇이어도 좋다. 자녀와 함께 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삶의 습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부재의 핑계와 명분이 넘쳐나는 아빠들이 꼭 귀기울여 들어야 할 메시지다.
그래서 제목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밤에 아들에게 책읽어주기를 실천한지 두 주가 지났다.
워낙에 잠 자는 걸 싫어했던 아들은 아빠가 책을 읽어주니 그만큼 잠을 미룰 수 있어 신났다.
이 녀석이 책을 듣다가 스르르 잠드는 모습을 과연 주님 오시기 전에 볼 수 있을지...
책을 읽어줄수록 점점 더 흥분하여 불을 끄고나서도 한참을 더 떠들다가 잔다. 삶이 더 피곤해졌다.
고되고 힘들지만 아들과 나 둘 다에게 습관이 되도록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언젠간 아빠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이 녀석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나이가 될 것이다. 
그 때 나를 함께 있으려 꾸준히 노력했던 아빠로, 성실히 사랑하려 노력했던 아빠로 기억해주길 바래본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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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독일현대철학>, 철학아카데미, 동녘

앤터니 티슬턴의 <두 지평> 스터디모임을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독일현대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할 때 읽을 입문서로 제격이다.
맑스, 프로이트, 니체, 후설, 로자 룩셈부르크,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가다머, 하버마스, 악셀 호네트를 다루고 있다. 
각 사상가들을 전공한 국내학자들이 입문자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알기 쉽게 써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 한나 아렌트를 다룬 부분이 크게 유익했다.
특히 로자 파트에서 '혁명에 있어서 대중은 어떻게 능동적 주체가 되어가는가'를 다룬 부분은 복음주의학생운동에서의 학생자발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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