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부들 청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후마니타스


요 몇년새 청년에 대한 책들이 참 많이도 나왔다. 
아무리 그래봤자 청년들의 현실은 여전히 고되고 빈한한데, 청년담론으로 돈 버는 이들마저 대부분 청년이 아닌 현실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역시 최근 쏟아져 나온 청년에 대한 수많은 책 중 한 권이지만, 그간 청년담론에서 소외되어 온 고졸, 전문대졸, 지방거주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려 한 점이 이목을 끈다.
이생망, 똥통, 사축, 찍퇴, 청년 팔이, 쌍봉형 가난, 지옥비, 월 3백, ㅇㅈ, 다시 청년... 1부에서 한국 사회의 청년을 이야기하며 이 책이 제시하는 키워드들이다.
가독성 높은 쉬운 문체의 얇은 책이지만, 마음이 아파 책장이 쉬이 안 넘어간다. 
2부에서는 청년들이 정치를 해법으로 변화를 만들어낸 외국 사례들(일본, 타이완, 스페인, 독일)을 들고 있는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3부는 한국의 청년 정치의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저자들은 결국 청년의 정치 참여를 중요한 해법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투표 참여 정도를 넘어서 정치 영역에서 청년의 지분을 만들어내는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 말이다.
청년들의 진입장벽이 너무도 높은 한국정치판의 현실이 주는 암담함과 2017년 촛불에서 본 한줄기 희망이 교차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청년들도, 청년의 현실을 고민하는 이들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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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더십>, 닐스 플레깅, 흐름출판


<언리더십>이 말하는 좋은 조직은 중앙집권적/위계적 조직이 아닌 현장중심적/수평적 조직입니다. 
경영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조직이 더 옳고 건전할 뿐만 아니라, 또한 더 효율적이고 성공적이라고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합니다.
저는 평소 수평적 조직이 더 건전하고 좋은 조직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조직이 더 효율적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수평적인 조직이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 면에서도 더 좋은 조직임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언리더십>은 이러한 조직을 만드는 12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원칙들 사이에 서로 겹치는 내용도 많아 후반부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감이 다소 있지만, 리더십에 대한 독자의 기존 관념들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초중반부의 힘은 매우 강력합니다. 
저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경영의 종말'이라 불릴만한 이 책의 핵심주장은 실제로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리더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되니 패러다임 전환은 확실히 하게 해주는 책이 분명합니다.^^;
물론 리더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화와 변명으로 이 책의 내용을 잘못 적용하면 안 되겠지만, 이 책의 기본적인 통찰은 매우 유효하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리더는 스스로 답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답은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 리더입니다. 
현장에 있는 팀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이 잘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리더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에 좋은 나침반과도 같은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참 감사합니다.
읽고 ‘맞다, 그러하다’ 맞장구치는 것을 넘어, 진짜 그런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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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19세기 영국 화이트채플 지역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으로, 경찰과 살인범 사이에 속고 속이는 심리전이 일품인 추리/추적게임입니다.

보드게임까페의 부흥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스코틀랜드 야드>라는 추적게임이 있었습니다. 범인을 맡은 플레이어의 시선 방향이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선을 가리는 챙이 긴 캡이 들어 있는 것이 아주 특색 있었던 게임입니다.

<스코틀랜드 야드>가 진화한 최종형태의 게임이 바로 이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범인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는 지도 위에 있는 범인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시트지에 기록하면서 이동합니다.

경찰을 맡은 플레이어들은 지도 위에 놓여진 여러 개의 경찰 말을 상의 하에 움직여 가며 범인의 위치를 탐색해갑니다.

경찰 플레이어들은 경찰 말이 놓인 곳 주위의 지역을 탐문하여 범인이 그 곳을 지나갔었는지의 여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범인의 현재 위치를 추적해가서 범인을 검거해야 합니다.

반대로 범인은 경찰에게 덜미가 잡히기 전에 자신의 은신처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네 번의 밤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고 은신처로 돌아가면 범인이 승리, 그 전에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거나 또는 정해진 턴 안에 범인이 은신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 경찰이 승리합니다.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는 최대 6명까지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게임에 사용되는 경찰 말이 다섯 개이므로 플레이어 한 명당 한 개의 경찰 말을 맡아 범인과 5:1의 대결을 벌이는 6인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다섯 명이 협력하여 경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습니다. 다섯 명의 생각이 달라 경로를 놓고 토론을 벌이게 될 경우 게임시간이 한없이 늘어나게 되기도 하고, 또는 주장이 강한 한두명이 게임을 주도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은 2인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각각 경찰과 범인을 맡아 대결을 벌인다면 경찰 플레이어들 사이의 의견 조율이 필요 없으니 게임시간도 짧아지고 두 사람만의 두뇌게임을 벌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2인이 4인 이상보다 좋은 건 분명하지만, 베스트 인원은 3인인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의 백미는 경찰들이 서로 상의하는 내용을 범인이 가슴 졸이며 듣는 상황에 있습니다. 실제로 범인의 현 위치 바로 옆에서 경찰들이 이쪽일까 저쪽일까 상의할 때는 범인을 맡은 플레이어는 한낱(?) 보드게임 따위에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 땀이 등줄기에 흐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ㅋㅋ

하지만 2인이 플레이할 경우엔 경찰이 혼자라서 경찰들 간의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그만큼 범인이 느끼는 긴장감의 정도도 덜하고 이야깃거리도 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을 저 포함해서 4명이 모일 때 주로 꺼내듭니다.

제가 룰 설명을 하고 범인 1, 경찰 2명이 3인 플레이를 하고 저는 옵저버를 하는 것이지요.

옵저버가 있으면 좋은 이유는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범인을 맡은 플레이어가 규칙에 어긋나는 에러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경찰이 범인 잡기가 쉽지는 않은 게임인데, 범인이 에러플을 해버리면 범인을 잡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페널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승률을 높이게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거지요.

게임이 범인의 승리로 끝난 후에 알고보니 범인의 에러플이 있었음이 밝혀지면 경찰들은 더욱 허탈해집니다.

그런데 처음 이 게임을 접한 사람이 범인을 맡아 단 한 번의 에러플도 저지르지 않기가 막상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룰 마스터가 범인이 에러플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켜봐주면서 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면 문제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는 굳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아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게임이기 때문에 옵저버 역할을 하는 룰 마스터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매우 훌륭한 게임이지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첫째로, 범인과 경찰의 조건과 목표가 다른 비대칭게임인데, 비대칭게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밸런스가 잘 맞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숙련자일 경우엔 오히려 경찰이 더 승률이 높다는 말들도 있지만 초보자, 비숙련자 기준으로는 범인이 이기기가 훨씬 쉽습니다(불의가 쉽게 승리하는 게임이라니ㅠㅠ).

게다가 게임 초반에 경찰의 추리방향이 어긋나버리면 게임 내내 범인의 위치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경찰의 입장에서는 농락만 당한 느낌으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게임을 제가 여러 사람들과 해 본 결과, 범인을 맡았던 사람들은 항상 만족해 한 반면 경찰을 맡은 사람들은 게임양상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최근 이 부분을 보완하는 하우스룰(게임 디자이너가 만든 공식 룰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추가하는 비공식 룰을 말합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어떤 하우스룰의 경우에는 크게 히트를 쳐서 해당 게임의 다음 버전에 공식 룰로 채택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이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길래 적용해 보았는데 실제로 범인과 경찰 사이의 밸런스가 현저히 개선되어 양쪽 모두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단점은 아쉽게도 보정이 불가능한 것인데, 바로 플레이타임입니다.

이 게임은 네 번의 밤 동안 쌓인 단서들이 누적되어 가면서 뒤로 갈수록 경찰이 범인을 검거할 승산이 커지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현실에서도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꼬리가 잡히기 더 쉬우니 매우 사실감 있는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게임이 초반에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넷째 밤쯤에 겨우 범인이 잡히거나 또는 넷째밤에도 끝내 잡히지 않아 범인의 승리로 끝나거나 하게 됩니다.

그렇게 넷째 밤까지 진행될 경우 이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두세 시간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경찰이나 범인 중에 신중하게 장고를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 시간을 거뜬히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우 재밌는 게임이지만 끝나고 나면 모두 진이 빠져 버리거나, 또는 시간 제약으로 끝을 못 보고 마무리되는 아쉬운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플레이타임 외엔 단점이 거의 없는 게임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하우스룰로 밸런스를 보정했을 경우에 말입니다).

테마가 넘 흉악(ㅠㅠ)해서 아쉽지만, 게임시스템만큼은 제가 해 본 모든 보드게임 중 열손가락에 꼽을만치 훌륭합니다(테마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게다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을 테마로 하고 있는 점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하지만 테마는 거들 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는 게임 시스템을 즐기는 것이므로 저는 가급적 테마를 의식하지 않고 나쁜 사람이 경찰에게 쫓긴다정도로 생각하며 게임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경찰이 빵도둑을 잡으러 간다고 설명하고 게임을 하셨다는 아버님도 있더군요^^;).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는 넉넉한 시간이 확보되어 있고 추적 류의 게임에 흥미와 열의가 있는 두 세 사람만 있다면 스릴 넘치는 추격전의 끝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평생소장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완소게임이기도 합니다.

보드게임이 주는 긴장감의 끝판왕,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를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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