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19세기 영국 화이트채플 지역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으로, 경찰과 살인범 사이에 속고 속이는 심리전이 일품인 추리/추적게임입니다.

보드게임까페의 부흥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스코틀랜드 야드>라는 추적게임이 있었습니다. 범인을 맡은 플레이어의 시선 방향이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선을 가리는 챙이 긴 캡이 들어 있는 것이 아주 특색 있었던 게임입니다.

<스코틀랜드 야드>가 진화한 최종형태의 게임이 바로 이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범인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는 지도 위에 있는 범인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시트지에 기록하면서 이동합니다.

경찰을 맡은 플레이어들은 지도 위에 놓여진 여러 개의 경찰 말을 상의 하에 움직여 가며 범인의 위치를 탐색해갑니다.

경찰 플레이어들은 경찰 말이 놓인 곳 주위의 지역을 탐문하여 범인이 그 곳을 지나갔었는지의 여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범인의 현재 위치를 추적해가서 범인을 검거해야 합니다.

반대로 범인은 경찰에게 덜미가 잡히기 전에 자신의 은신처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네 번의 밤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고 은신처로 돌아가면 범인이 승리, 그 전에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거나 또는 정해진 턴 안에 범인이 은신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 경찰이 승리합니다.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는 최대 6명까지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게임에 사용되는 경찰 말이 다섯 개이므로 플레이어 한 명당 한 개의 경찰 말을 맡아 범인과 5:1의 대결을 벌이는 6인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다섯 명이 협력하여 경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습니다. 다섯 명의 생각이 달라 경로를 놓고 토론을 벌이게 될 경우 게임시간이 한없이 늘어나게 되기도 하고, 또는 주장이 강한 한두명이 게임을 주도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은 2인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각각 경찰과 범인을 맡아 대결을 벌인다면 경찰 플레이어들 사이의 의견 조율이 필요 없으니 게임시간도 짧아지고 두 사람만의 두뇌게임을 벌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2인이 4인 이상보다 좋은 건 분명하지만, 베스트 인원은 3인인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의 백미는 경찰들이 서로 상의하는 내용을 범인이 가슴 졸이며 듣는 상황에 있습니다. 실제로 범인의 현 위치 바로 옆에서 경찰들이 이쪽일까 저쪽일까 상의할 때는 범인을 맡은 플레이어는 한낱(?) 보드게임 따위에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 땀이 등줄기에 흐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ㅋㅋ

하지만 2인이 플레이할 경우엔 경찰이 혼자라서 경찰들 간의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그만큼 범인이 느끼는 긴장감의 정도도 덜하고 이야깃거리도 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을 저 포함해서 4명이 모일 때 주로 꺼내듭니다.

제가 룰 설명을 하고 범인 1, 경찰 2명이 3인 플레이를 하고 저는 옵저버를 하는 것이지요.

옵저버가 있으면 좋은 이유는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범인을 맡은 플레이어가 규칙에 어긋나는 에러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경찰이 범인 잡기가 쉽지는 않은 게임인데, 범인이 에러플을 해버리면 범인을 잡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페널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승률을 높이게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거지요.

게임이 범인의 승리로 끝난 후에 알고보니 범인의 에러플이 있었음이 밝혀지면 경찰들은 더욱 허탈해집니다.

그런데 처음 이 게임을 접한 사람이 범인을 맡아 단 한 번의 에러플도 저지르지 않기가 막상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룰 마스터가 범인이 에러플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켜봐주면서 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면 문제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는 굳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아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게임이기 때문에 옵저버 역할을 하는 룰 마스터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매우 훌륭한 게임이지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첫째로, 범인과 경찰의 조건과 목표가 다른 비대칭게임인데, 비대칭게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밸런스가 잘 맞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숙련자일 경우엔 오히려 경찰이 더 승률이 높다는 말들도 있지만 초보자, 비숙련자 기준으로는 범인이 이기기가 훨씬 쉽습니다(불의가 쉽게 승리하는 게임이라니ㅠㅠ).

게다가 게임 초반에 경찰의 추리방향이 어긋나버리면 게임 내내 범인의 위치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경찰의 입장에서는 농락만 당한 느낌으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게임을 제가 여러 사람들과 해 본 결과, 범인을 맡았던 사람들은 항상 만족해 한 반면 경찰을 맡은 사람들은 게임양상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최근 이 부분을 보완하는 하우스룰(게임 디자이너가 만든 공식 룰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추가하는 비공식 룰을 말합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어떤 하우스룰의 경우에는 크게 히트를 쳐서 해당 게임의 다음 버전에 공식 룰로 채택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이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길래 적용해 보았는데 실제로 범인과 경찰 사이의 밸런스가 현저히 개선되어 양쪽 모두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단점은 아쉽게도 보정이 불가능한 것인데, 바로 플레이타임입니다.

이 게임은 네 번의 밤 동안 쌓인 단서들이 누적되어 가면서 뒤로 갈수록 경찰이 범인을 검거할 승산이 커지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현실에서도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꼬리가 잡히기 더 쉬우니 매우 사실감 있는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게임이 초반에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넷째 밤쯤에 겨우 범인이 잡히거나 또는 넷째밤에도 끝내 잡히지 않아 범인의 승리로 끝나거나 하게 됩니다.

그렇게 넷째 밤까지 진행될 경우 이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두세 시간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경찰이나 범인 중에 신중하게 장고를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 시간을 거뜬히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우 재밌는 게임이지만 끝나고 나면 모두 진이 빠져 버리거나, 또는 시간 제약으로 끝을 못 보고 마무리되는 아쉬운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플레이타임 외엔 단점이 거의 없는 게임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하우스룰로 밸런스를 보정했을 경우에 말입니다).

테마가 넘 흉악(ㅠㅠ)해서 아쉽지만, 게임시스템만큼은 제가 해 본 모든 보드게임 중 열손가락에 꼽을만치 훌륭합니다(테마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게다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을 테마로 하고 있는 점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하지만 테마는 거들 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는 게임 시스템을 즐기는 것이므로 저는 가급적 테마를 의식하지 않고 나쁜 사람이 경찰에게 쫓긴다정도로 생각하며 게임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경찰이 빵도둑을 잡으러 간다고 설명하고 게임을 하셨다는 아버님도 있더군요^^;).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는 넉넉한 시간이 확보되어 있고 추적 류의 게임에 흥미와 열의가 있는 두 세 사람만 있다면 스릴 넘치는 추격전의 끝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평생소장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완소게임이기도 합니다.

보드게임이 주는 긴장감의 끝판왕,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를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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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드게임 하나 소개합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아임 더 보스>http://warinlife79.tistory.com/180나 <왕좌의 게임> 같은 악랄한 우정파괴게임이나 또는 <황혼의 투쟁>, <쓰루 디 에이지스> 같은 매니아틱한 전략게임 쪽에 가깝지만, 직업이 간사이다보니 아무래도 기독공동체에서 활용도가 높은 게임을 주로 추천하게 됩니다. 

딕싯처럼 서로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면서 밝고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착한' 게임들이 공동체에서 활용도가 높지요.
오래전부터 이런 '착한 게임'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명작이 있었으니 바로 '왓츠잇투야(What's it to ya?)'라는 게임입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한 면에 하나의 단어가 적혀 있는 수많은 카드들이 있습니다.
그 중 다섯 장을 무작위로 뽑아 늘어놓은 뒤 출제자는 토큰을 써서 그 다섯 개의 단어에 대한 자신의 우선순위를 비공개로 매겨놓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출제자의 우선순위를 추측하여 역시 토큰으로 비공개로 순위를 매겨봅니다.
그 후 출제자는 정답을 공개하면서 자신의 우선순위를 설명합니다. 
가장 많이 맞춘 사람이 해당 라운드의 점수를 얻습니다.
모두가 돌아가며 두번씩 출제한 후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래도 나름 게임인지라 순위와 승패는 정해지지만, 왓츠잇투야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게임은 아닙니다.
출제자는 살면서 한번도 비교해보지 않았던 단어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끙끙대게 되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답을 맞추기 위해 출제자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고심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한 정답이 공개될 때 예상 못했던 출제자의 우선순위에 빵 터지게 되기도 합니다.
'평등보다 편의점이 중요하다구?'
'칫솔이 희망보다 중요하다구?'
출제자의 기발한 생각이 웃음을 주기도 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승패를 떠나 이러한 모든 과정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좋은 게임입니다


게임가능인원은 3-6명이지만 2인1조로 팀을 짜서 한다면 최대 12명까지도 가능합니다.
소그룹 초기에 서로를 알아가야 할 때도 유용하고, 서로를 잘 아는 그룹에서도 서로의 예상못한 진면목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큽니다.

그동안 이 게임의 유일한 아쉬움은 언어문제였습니다.
한글판이 없어서 영어단어로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수백장의 영어단어카드를 한글화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요.
그런데 드디어 지난달에 이 게임이 한글판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선교단체나 교회에 하나쯤 비치해두면 여러모로 유용할 게임 '왓츠잇투야'를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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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더보스>, 협상게임, 3~6인가능, 4~6인추천


보드게임 중에 제가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협상게임”입니다. 

협상게임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들 간의 협상이 주된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을 말합니다. 

협상게임은 대화의 기술을 통해 이끌어가는 게임입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어내고자 거래를 제안하고 중재하고 때로는 베짱튕기고 뒷통수를 치기도 하며 나타나는 협상게임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보드게이머들에게 최고의 협상게임이 무엇이냐 물으면, 보통 ‘3대 협상게임’으로 알려진 <아임 더 보스>, <차이나타운>, <제노아>를 꼽습니다.

이 3대 협상게임 중 가장 쉬운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유쾌하고 흥겨운 분위기의 게임이 <아임 더 보스>입니다.

(기본적인 게임소개와 규칙은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이 가능하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5분이면 설명가능한 간단한 규칙 하에서 협상의 천태만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임 더 보스>의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협상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멋진 게임규칙은 tvN의 지니어스게임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지니어스 시즌2의 "빅딜게임"이 아임 더 보스에서 차용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구성원에 따라 어느 때는 화기애애하고 온건한 분위기의 게임이 되기도 하고, 꾼(?)들이 제대로 만나면 인간이 가진 비열함(?)의 끝을 보여주는 게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 모이면 절대 흥이 나지 않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거물투자자들간의 비즈니스'라는 게임테마가 만들어내는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분위기 또한 이 게임의 큰 매력요소입니다.

서로 "홍사장님", "박사장님" 불러가면서 갑일 때는 유세도 부리고 을일 때는 아부도 떨다가, 거래가 성사되면 흥겹게 악수를 나누는 유쾌한 분위기가 게임의 흥을 한층 돋구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보드게임의 이상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해낸 게임으로 꼽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며, 서로에게 아무리 비열하고 악독하게 굴어도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고, 어떠한 배신과 협잡에도 마음 상하지 않을 수 있는 4~6명의 고정멤버가 있다면 <아임 더 보스>를 추천합니다.

단언컨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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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지에 글을 쓴 후에 간간히 보드게임 추천 문의가 들어옵니다.
꽤 많은 게임들을 접해본 편이지만, 사람마다 취향 차이가 크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게임이 있을 수 없기에 추천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드게임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분들에게 좋은 게임은, 룰이 쉽고, 적은 인원부터 많은 인원까지 커버 가능하고,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최고의 입문자용 게임은 '사보타지'입니다.

사보타지는 뱅, 마피아 등과 비슷한 블러핑 요소가 들어 있는 팀플 게임입니다. 시작지점에서 출발하여 골인지점이라 할 수 있는 금 카드까지 굴 카드를 놓아서 연결하면 되는 간단한 카드게임입니다. 플레이어 중에는 금을 캐는 것이 목표인 '광부'도 있지만, 금을 캐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꾼(사보티어)'도 있습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정체를 모른 체 게임을 시작하기 때문에 처음엔 모두가 자신이 광부라고 주장하지만, 결정적 순간이 되면 '방해꾼'들이 금 캐기를 마구 방해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재밌는 상황들이 많이 연출되는 유쾌한 게임입니다.
'정체 숨기기'가 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서 블러핑게임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장르 중 가장 유명한 게임인 '뱅'과 비교해 볼 때, 뱅은 먼저 제거되어 게임에서 완전히 빠지는 플레이어가 있지만, 사보타지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탈락하는 플레이어가 없다는 점이 좋습니다.
게다가 2~12명 사이의 인원을 다 커버한다는 것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가족끼리, 친척이 모일 때, 엠티에서 등등 여러모로 즐겁게 갖고 놀 수 있는 카드게임, "사보타지"를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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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속해있는 단체의 한 잡지의 이번 호 주제가 '놀이'인데, 거기에 보드게임에 대해 쓴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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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보드게이머다!

취미가 뭐에요?” 라는 질문에 보드게임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를 만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아마도 마음속으로 푸훗. 다 큰 어른이 아직도 부루마블 따위를 하면서 논단 말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취미는 보드게임입니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보드게임이 내 취미 1호로 부상한 것은 최근 일 년 이내의 일이다. 물론 이전부터 간간히 보드게임을 접하고 즐길 기회는 있었다. 교회와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엠티를 가면 국민게임 마피아를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간사로 사역하던 시절에도, (Bang)과 우노(UNO) 등 몇몇 게임을 가지고 학생들과 막차시간도 잊고 열심히 놀았던 추억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보드게임은 기회가 되면 가끔 하지만, 안 한다고 아쉽거나 특별히 생각날 것도 없는 수많은 놀이들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보드게임이 충분히 훌륭한 취미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정릉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학생 시절 참 좋아하고 존경했던 선배와 한 동네에서 살게 된 것이다. 통일운동가이자 공정여행 가이드로 정말 멋지게 살고 있는 선배인데, 알고 보니 이 형의 취미가 보드게임이었다. 이 형이 한 동네로 불러 모은 몇몇 다른 가정들까지 보드게임이라는 취미를 공유하고 있어서, 이 동네는 가히 보드게이머 집성촌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이 동네에 살면서 한동안 밤마다 형의 집에 불려가 온갖 신기하고 다양한 보드게임들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때도 보드게임에 그다지 큰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떠들썩하고 흥겨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옆방에 아기가 자고 있어 조용히 숨죽여 게임해야 하는 당시의 상황이 흥미를 갖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전까지 보드게임이라곤 부루마블과 간단한 카드게임 몇 개 정도 해 본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게임 규칙을 설명하는데만 삼십분 이상이 소요되는 복잡한 게임들이 재미를 붙이기엔 너무 어렵고 낯설었나보다. 하지만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보드게임이란게 흔히 생각하듯이 주사위나 한두 개 던지면서 노는 어린이 놀이 정도가 아니며, 이 세계도 정말 넓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보드게임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밤마다 보드판 앞에 오순도순 모여앉아 함께 했던 시간의 그 훈훈하고 따뜻했던 분위기는 내 기억에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보드게임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놀기에 꽤 훌륭한 컨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던 그 때가 바로 내 안에 보드게임 유전자가 자리 잡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 몇 년 동안의 휴지기를 보내다가, 작년 초에 교회 청년들과 친해지기 위해 보드게임을 하면서 나의 보드게임 라이프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일 년이 지난 지금 보드게임은 어느새 내 인생에 부동의 취미 1호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본격적으로 보드게임 예찬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놀이에 대해 잠시 논해 보려고 한다. 놀이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놀이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다. 가령, 놀이가 주는 기분전환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 놀이는 거기에 몰입해 있는 순간만큼은 눈앞의 문제와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 즐겁게 놀고 나면 정서적인 재충전이 일어나, 다시 일상의 과업을 수행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남들 눈에는 거의 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사실은 자신만의 놀이를 갖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책장에 꽂힌 책의 배열을 바꾸어가면서 시간을 보낸다. 다른 사람에게는 놀이처럼 보이지 않는 그 활동이 그에게는 훌륭한 놀이일 수 있는 것이다.

놀이에 단순한 기분전환의 효과 이상의 심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네덜란드 사회학자 요한 하이징거는 <호모 루덴스>라는 책에서 인류 문명은 인간의 놀이 본능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 의례, 예술, 발명품 등 인류 문화의 각 영역을 두루 살펴보면 그 최초 발생 과정과 현재의 모습 모두에서 놀이의 흔적과 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놀이 본능을 문명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보고 있으며, 놀이는 문화에 선행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놀이예찬론이 일면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의 문화, 예술 등이 모두 놀이와 결합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인류 문명은 놀이의 산물이다라는 주장에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의미와 가능성, 잠재력을 가진 것이 바로 놀이이다.

하지만 하이징거의 말대로 놀이가 인류 문화발전의 원동력이라 할지라도, 놀이를 과도하게 즐길 때에 그것이 해로울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를 망가뜨리기까지 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른바 중독의 문제다.

나는 에니어그램 7번이다. 성숙하지 못한 7번은 쾌락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하이에나와 같다. 절제할 줄 모르는 7번은 쉽게 음식, 알코올 등에 중독된다. 역시 7번이 빠지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놀이 중독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PC게임에 빠져서 컴퓨터 앞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면서 폐인처럼 지내기도 했다. 당시 화목하지 않았던 가정에서 겪은 내면의 고통과 한두 해 앞으로 다가온 대입 입시가 주는 중압감 속에서 PC게임이 제공해주는 가상의 세계는 나에게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도피처였다. 그렇게 시작된 놀이로의 도피가 스스로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결국 놀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에니어그램 7번만의 문제겠는가?

오늘날 놀이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중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PC게임에 중독되어 사회성을 기르지 못해 부모와 함께 치료센터를 찾는 수많은 아이들, 게임비용을 대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폭행한 청소년, 게임에 빠져서 갓난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릴 때까지 방치해 버린 부모 등 놀이로 인해 망가져버린 비극적인 인생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처럼 놀이는 고된 일상을 사는 이들의 청량제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을 망치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놀이의 가능성과 위험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지어진 모든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운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건강한 놀이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이 땅에 심는 이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놀이가 많은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기도 하는 이 세상 속에서 놀이문화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변혁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선교지 중에 하나라고 믿는다.

현대 놀이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고립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도 서로를 서로에게서 고립시키는 놀이 컨텐츠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TV 앞에 앉아보라. 채널을 돌려가며 그 끝없는 이야기에 빠져 있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당신 옆에서 함께 TV를 보는 이가 누구든 큰 차이가 없으며, 아무도 없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오직 TV만 있다면 당신은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게임이든 엔터테인먼트든 컴퓨터가 웹을 통해 가져다주는 무한대에 가까운 컨텐츠 속에서 우리는 혼자서도 너무나 잘 놀 수 있다. 한때는 그나마 TV와 컴퓨터를 집에서만 쓸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 놀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앉아 아무런 대화 없이 각자의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보드게임은 어떠한가? TV와 컴퓨터 앞에서 혼자 놀기를 즐기라고 유혹하는 이 디지털 과잉의 시대에, 보드게임은 오직 사람과 만나야만 즐길 수 있는 순도 백퍼센트의 아날로그 놀이문화이다. 당신이 혼자 있다면 보드게임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라면 보드게임은 당신과 그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종이판과 카드 몇 장, 주사위 몇 개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TV나 컴퓨터가 하듯이 우리를 수동적인 수용자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보드게임은 단지 매개체일 뿐이며, 그것을 통해 함께 노는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보드게임을 통해서 우리는 함께 TV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을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단어가 써 있는 카드 몇 장씩을 받아서 그것을 본인이 생각하는 우선순위대로 배열하고 다른 이들이 그 순서를 맞추도록 하는 게임이 있다(왓츠잇투야http://warinlife79.tistory.com/269). 그 라운드가 끝나면 출제자는 카드 배열의 이유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설명한다. 이것은 서로의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게임이다. 참여자 전원이 한 편의 동화를 함께 완성해가는 게임도 있다(옛날옛적에, 파불라). 누구와 언제 하는가에 따라 매번 새롭고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제시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을 보고 다시 제시어를 추측해 써 넣고, 그 단어를 다시 그림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진행하여 마지막 사람이 최초의 제시어를 맞추는 게임도 있다(텔레스트레이션). 가족오락관의 몸으로 말해요를 그림그리기 버전으로 만든 게임인 셈이다. 팀 안에 있는 스파이를 몇 번의 토론을 통해 가려내는 토론게임도 있다(마피아, 레지스탕스, 타불라의 늑대). 심지어 게임 상에 규칙이 없고 게임 진행 과정에서 서로간의 협상과 투표를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정해가는 게임도 있다(데모크레이지). 참여자들 사이의 순위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 공동의 임무를 수행해가는 협력게임이라는 장르도 있다(팬데믹). 이런 게임은 기업 연수의 팀빌딩워크샵에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의 가치관, 정서, 화법, 성격, 기질, 재능, 매력 등이 드러나는 기발한 보드게임의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처럼 보드게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함께 노는 사람들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요구하는 놀이문화이다. 내가 보드게임의 의미와 가능성을 보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놀 것인가?’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에 대해 나는 보드게임이 하나의 가능성과 대답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보드게임이 참 좋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보드게임이 매개해주는 사람과의 만남이 좋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터지는 웃음, 주사위 하나에 터지는 탄성, ‘나 잘했지?’, ‘대단한데?’, ‘너였어?’, ‘속았다’, ‘분하다등 수백가지 얼굴표정이 살아있고, 사람과 더불어서 사람 냄새나게 노는 이 보드게임이라는 세계가 정말로 좋다. 그래서 나는... 보드게이머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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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드게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스트림스"라는 게임입니다.
규칙은 매우 간단합니다. 주머니에 40개의 숫자 타일이 들어있습니다. 진행자는 주머니에서 무작위로 타일을 하나씩 뽑아 그 숫자를 부릅니다. 게임 참여자들은 스무개의 빈칸이 있는 시트지의 적당한 칸에 그 숫자를 적어나갑니다. 나중에 나올 숫자들을 감으로 예측해가며, 될 수 있으면 오름차순이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위치에 적어야 합니다. 스무칸을 다 채우게 되면 게임은 종료되고 각자 채점표를 보고 채점을 합니다. 오름차순으로 연결된 몇 개의 숫자덩어리가 생기게 되는데, 끊기지 않고 오름차순으로 길게 연결된 숫자묶음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됩니다. 숫자묶음당 받은 점수를 합산한 총계를 내어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1등이 됩니다.
아주 간단한 룰인데 글로 설명하려니 쉽지 않네요^^; 

설명만 듣고는 '이게 재밌을라나?', '재미요소가 뭐야?'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워낙 간단한 게임이기 때문에 몰입할만한 적절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으면 다소 싱거운 게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등 간식 증정 또는 꼴등 설거지하기 같은 간단한 상품이나 벌칙을 걸고 하기를 추천합니다. 그러면 숫자 하나에 환성과 탄식이 오가며 분위기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게임이 될 겁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이유는 활용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룰 설명이 3분도 채 안 걸리며 대부분의 연령대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룰입니다. 그리고 인원제한이 없습니다. 시트지만 있다면 무한대의 인원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게임으로 설거지 당번 정할 때, 또는 강의를 하는 분들의 경우엔 강의 중 아이스브레이킹재료로, 또는 MT 레크레이션 용으로, 그 밖에도 여러 용도로 활용가능합니다.
'수십명이 모여앉아 환성 질러가며 할만한 건 왜 빙고뿐인가!' 하셨던 분들에게 빙고를 훨씬 세련되게 대체할만한 게임 '스트림스'를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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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히 시간 날 때마다 보드게임 소개글을 조금씩 올려보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소개할 게임은 “딕싯(Dixit)”입니다. 
딕싯(Dixit)은 ‘말하다’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그래서 딕싯은 ‘말하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여섯 장의 그림카드를 들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출제자는 카드 한 장을 정해서 앞면이 보이지 않게 내면서 그 그림과 연관된 무언가를 말합니다.
단어를 말해도 됩니다. 가령, “소풍” 또는 “내 보물”

문장을 말해도 됩니다. 가령, “이건 지난 여름에 내가 주로 했던 일이지!”
심지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해도 됩니다. “어제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어. 그런데 길이 엄청 막히는거야. 그런데 창 밖을 보니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단어, 문장 또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자신이 가진 여섯장의 카드 중에 그 내용에 가장 가까운 카드 한 장씩을 앞면이 보이지 않게 냅니다.
출제자는 카드들을 받아
서 잘 섞은 후에 앞면이 보이게 펼쳐 놓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출제자가 낸 카드가 무엇인지 추리하여 동시에 예상답안을 냅니다. 이제 출제자가 정답을 공개합니다. 맞춘 사람은 3점을 얻습니다. 틀린 사람이 지목했던 오답카드를 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속을만한 그럴듯한 카드를 낸 것이므로 낚은 사람 한 명당 1점씩을 받습니다.

아마 제작자에게 있어 이 게임을 만들 때의 가장 큰 난제는 출제자의 문제 난이도를 어떻게 적절하게 유지하게 할 것인가였을 겁니다. 출제자가 문제를 너무 쉽게 내버리면 게임은 재미와 긴장감을 잃습니다. 가령 그림카드 위에 있는 아주 구체적인 무언가를 직접 말해버리는 경우라 할 수 있겠지요(“코가 큰 할머니가 지팡이를 들고 고양이를 쫒고 있어. 다른 손에는 생선을 들고 계시네”라고 말한다면 이건 틀리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따라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낚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출제자가 그림카드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을 해버린다면 게임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리죠.

그래서 딕싯은 정답을 모두가 맞추거나 또는 한 명도 못 맞출 경우 출제자에게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그 외의 경우에는 3점을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출제자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맞추지만 전부 맞출 수는 없게 문제를 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결국 너무 모호하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자세하지도 않은 적당한 난이도가 유지되며 그로 인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서로를 낚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이 게임을 걸작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입니다(이미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이걸 생각해냈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점수를 계산하여 말을 전진시키고 나면 출제자는 자신이 왜 그 제시어를 말했는지 설명합니다. 이것을 통해 출제자의 생각이나 취향, 경험 등을 알게 되기도 하지요. 이제 그림카드를 한 장씩 보충하고 다음 사람이 출제자가 됩니다. 누군가 제일 먼저 30점에 도달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많은 게임들 중에 딕싯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이 게임이 가장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제가 보드게임을 통해 추구하는 바를 가장 잘 구현해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놀이 안에서의 자연스런 대화와 소통, 그리고 사람을 알아가는 기쁨입니다. 
게임을 통해 각 사람의 성향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NF성향의 사람이 끼어있다면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에 뒤로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가족게임으로도 좋고 소규모의 모임에서 처음 서로를 알아
갈 때에 아이스브레이킹용으로도 매우 좋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게임 “딕싯”을 강추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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