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청년사역은 현재 침체기를 겪고 있다. 주일학교의 쇠퇴와 함께 청년사역의 침체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교회 청년부들은 몇몇 대형교회에서 수평이동을 통한 양적 성장이 일어나고 있을뿐, 복음 전도를 통해 건강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대형교회의 수평이동을 통한 교회성장은 마치 여전히 활발히 성장하고 있는 청년부가 있으므로 별문제가 없는 듯이 착각하게 하여 명확한 현실 인식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 청년부의 이러한 방식의 성장은 주위의 작은 교회 청년부들을 고사시키고 있어 전체적인 한국교회의 건강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 청년사역의 상황들이 교회보다 몇 년 앞서 나타나는 곳이 바로 캠퍼스에 있는 대학생 선교단체들이다. 따라서 선교단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앞으로 한국교회의 청년사역이 흘러가게 될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다 하겠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대학생 선교단체 IVF에서 간사로 사역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 선교단체의 상황을 통해 본 청년사역의 현주소에 대해 정리해 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무너진 두 축: 기신자 양육과 불신자 전도

 2009년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주최한 제5회 캠퍼스사역 컨퍼런스 “청년사역 길을 묻다”에서는 2009까지의 약 십여년 동안의 대학생 선교단체들의 여름수련회 참석 인원을 합산한 통계를 제시하였다. 선교단체들의 인원 증감 추이를 알고자 할 때에 여름수련회 참석인원은 곧 핵심멤버십의 수를 뜻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크다. 대부분의 경우에 여름수련회 참석여부가 그 공동체의 멤버십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지 아닌지의 첫 번째 분수령이 되기 때문이다. 여름수련회 참가 규모의 추세를 살펴보면 2001년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던 경향이 한동안 현상유지 내지는 소폭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2006년을 정점으로 2008, 2009년 모두 3000명 정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즉, 최근 5년 사이에 선교단체 멤버십이 매우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양한 원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 중 두 가지 중요한 요인들을 살펴본 후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첫째, 자발적으로 선교단체를 찾아오는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급격히 줄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압박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IMF 이후 한국사회는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극단적인 경쟁체제의 사회로 재편되었다. 고용안정성이 매우 낮아지고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그 속에서 개인들은 취업 부담을 초중고시절부터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대학생들이 입학 때부터 취업을 위한 학점관리와 영어공부, 각종 자격증 시험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제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선교단체를 통해 신앙훈련을 받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신앙의 훈련은 교회에서 받는 것으로 충분하고 대학에서는 동아리활동을 하지 않고 취업준비에 매달리거나 또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활동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필자가 선교단체에서 사역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신앙의 성장을 대학생 시절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로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기 위해 선교단체를 찾아다니는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학생들의 비율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캠퍼스에서 복음전도가 어려워져 간다는 점이다. 단체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은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근래의 한국사회에 형성된 반기독교적 정서는 복음전도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근래에 한국사회의 교회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 되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 몇몇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축재와 성추문,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망언, 그리고 크리스천 정치인들의 실정은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청년기의 비그리스도인 대학생들이 교회를 불신하고 나아가 교회에 적대적이 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 상황을 좀 더 풀어 설명해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위에 약술한 기신자 양육과 불신자 전도는 그동안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성장해갈 수 있었던 중요한 두가지 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체계적인 훈련과 성장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을 받아서 양육하고 리더로 훈련시켜 그들이 후배들을 양육하게 하고 복음을 전하게 하여 재생산이 일어나게 한다. 또한 비그리스도인 대학생들과 접촉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 선교단체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캠퍼스 안에서 한국사회와 교회를 섬기는 그리스도인 리더를 길러냄을 통해 교회병행단체(para-church)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해왔다. 그런데 현재 대학생 선교단체는 이 두 축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청년 사역은 어떠한 상황일까? 선교단체 사역의 두 축-기신자 양육, 불신자 전도-을 교회에 적용하여 생각해 보자. 선교단체는 교회와 선교단체를 굳이 병행하면서까지 신앙생활에 시간을 할애하려고 하지 않는 대학생들의 태도와 직면하고 있다고 앞서 설명한 바 있다. 바꿔 말하면, 기신자 양육의 경우에 있어서 교회는 취업의 압박과 무한경쟁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에게 신앙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기신자 양육에 있어서 선교단체와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학교, 특히 중고등부의 붕괴에 가까운 몰락으로 인한 기신자 청년 유입의 감소이다. 교회학교에서 성장해 올라오는 기신자 청년들을 받아서 이탈자 없이 잘 정착시키고 불신자 전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교회학교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각각의 단계를 거치며 이탈하거나 낙오하지 않고 차근차근 안정적으로 성장하여 청년부에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역시 청년부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중고등부의 경우, 입시 압박에 눌려 주일성수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입시 마칠때까지만’이라는 생각으로 서로 암묵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방조하고 있다. 이에 많은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이 이 시기에 입시준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잠정적으로 교회를 떠나거나 명목상의 교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또한 청소년들이 사춘기에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민들에 교회가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며, 무신론적 전제 위에서 펼쳐지는 학교교육에 대해 교회가 적절한 대응을 해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모태신앙으로 명목상의 신앙생활을 이어오던 청소년들이 결국 이 시기에 신앙의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대학입시 이후에 부메랑에 되어 고스란히 돌아와 청년사역에 타격을 입힌다. 결국 붕괴에 가까운 중고등부의 몰락은 청년부의 인원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교회 청년부는 대학생 선교단체와 그 원인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기신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불신자 전도에 있어서는 교회 청년부 역시 대학생 선교단체가 직면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반기독교 정서에 직면해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제자로 삼는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교회 청년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성장하는 교회 청년부라 하여 들여다보면 역량있는 사역자, 체계적인 프로그램, 많은 예산을 투입해 만들어낸 수준높은 볼거리와 문화컨텐츠 등으로 기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수평이동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한국교회 청년부는 복음 전도에 있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청년부와 대학생 선교단체는 기신자 수의 감소와 불신자 전도의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함께 겪고 있다. 이에 대학생 선교단체들은 현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고 저마다의 해법과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청년사역이 위기라는 것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아직은 선교단체만큼 그리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년사역에 대한 세미나들을 찾아가보면 수평이동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을 흉내내려고 벤치마킹하고 있는 수준이며, '청년사역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던대로 더욱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청년사역이 처한 현재의 맥락과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해법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최선을 다해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티: 위기이자 기회

 청년사역에 있어서 포스트모던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역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모던시대는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로 시작되었다. 근대의 성과인 과학혁명은 인간이 유토피아를 이 땅 가운데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냉전체제가 야기한 크고 작은 전쟁들은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모던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포스트모더니티는 붕괴해가는 모더니티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순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모더니티와 상반되는 특성들을 보이게 된다. 가령, 진리검증과 객관성이 중시되었던 모더니티와 달리 포스트모더니티는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모던시대에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과 참사들이 자신의 이념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티는 보편성을 주장하는 메타내러티브들을 불신한다. 이것이 리오타르가 그의 저서 「Postmodern condition」에서 “메타내러티브는 죽었다”고 선언하게 된 맥락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권위를 가지는 메타내러티브는 없다. 지역적이고 작은 이야기들이 그 이야기에 속한 각 사람들에게 의미있을 뿐이고, 각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속해 있는 이야기를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절대 진리에 대한 주장은 비난받고 관용은 가장 모범적인 태도로 칭송받는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티를 지배하고 있는 태도이다.
 
또한 모던시대는 자율적 자아로서의 개인이 강조되었던 반면에 포스트모던시대에는 공동체가 강조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시대의 공동체는 모던시대의 전체주의와 같이 획일화를 강요하는 태도가 아니라, 각자가 속한 곳이 자신의 준거집단이 되는 수많은 지역공동체들의 활성화, 즉, 부족주의(tribalism)와 같은 개념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청년사역자 지미 롱은 그의 저서 「Emerging hope」에서 모더니티의 특징을 객관적 진리, 개인, 과학적 발견, 거대 서사(사회진보)로 요약한 후, 그에 대응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징을 주관적 진리(기호), 공동체, 가상현실, 미시 서사(사회적 냉소주의)로 제시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이 위기인가 기회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는 위기로 보는 견해들이 우세해왔다. 포스트모더니티가 진리 주장에 대해 불신하고 진리를 개인의 기호의 문제로 대체해버렸기 때문에 포스트모던시대는 필연적으로 상대주의적 특성을 띨 수밖에 없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제시하는 기독교 복음 전도에 어려움을 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전 작고한 스탠리 그렌츠를 필두로 하여 그밖의 여러 학자와 사역자들에 의해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사역을 해나갈 때에 이 시대는 기독교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들도 최근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에 필자는 포스트모던을 기회로 보는 입장들에 기반하여 필자의 사역경험과 접목하여 청년 사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부족하나마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던시대의 청년사역: 삶에 체화된 공동체 전도로의 체질 개선

 미국의 전도학 교수이자 청년 사역자인 릭 리처드슨은 그의 저서 「스타벅스 세대를 위한 전도」에서 포스트모던시대에 필요한 전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여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책임감을 통한 전도보다는 성령과의 민감한 동역이어야 한다. 둘째, 개인전도보다는 공동체전도가 적합하다. 셋째, 교리 선포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넷째, 계약 관계가 아닌 참된 우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진부하지 않고 신선해야 한다. 여섯째, 이벤트로서의 회심보다 신앙의 여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지면의 부족으로 충분히 상술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이중에서 특히 이야기와 공동체야말로 포스트모던 전도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진솔한 이야기는 삶을 변화시킨다. 합리성과 교리적 정확성이 강조되었던 모던시대가 '변증'의 시대였다고 하면 이야기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던시대는 '간증'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구도자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설교와 성경공부에 있어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시대에 공동체를 통한 복음전도는 필수적이다. 불신자들이 복음을 믿고 나서 공동체에 소속되기보다는 그들에게 먼저 공동체가 되어준 후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진리주장에 냉소하는 포스트모던시대에 있어서 구도자에게 복음의 진정성을 확신시켜주는 최고의 변증은 이제 언어적 변증이기보다는, 그들을 공동체로 이끌어서 복음대로 사는 공동체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선교단체는 최근 스스로 선교단체를 찾아오는 기신자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불신자 전도가 쉽지 않게 됨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사역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해왔다. 앞서 선교단체들의 성장의 두 축이 기신자 양육과 불신자 전도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이 그동안은 불신자 전도보다는 기신자 양육을 통해 캠퍼스에서 그리스도인 리더를 양육해내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고 리더로 성장하기까지 대학 4년이라는 기간은 다소 부족한 감이 있고, 그로 인해 리더십의 재생산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결과는 멤버십 감소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운동을 효과적으로 이어나갈 수 없게 되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신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양육하는 것에 충분히 집중하지 않고 한동안 복음전도에만 매진해보면 그 공동체는 곧 멤버십 감소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동안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은 공동체의 역량을 기신자 양육에 더 집중해왔고, 지역교회에서 일년에 한두 차례 전도행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벤트성 복음전도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필자가 속한 선교단체는 복음전도 공동체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그리스도인 신입생들에게 단체를 알리고 홍보하는 사역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비그리스도인 신입생들의 대학 적응을 도와주며 친구가 되어주고 공동체가 되어주는 것에 공동체의 역량을 집중한다. 그 결과 신자와 비신자가 공동체 내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되며 심지어 비신자가 신자보다 더 많이 있는 그룹도 나타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체의 기독교적 특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빠져나가면서 다소간의 비율조정이 일어나지만, 그 중 일부 학생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진 않았지만 기독교에 호감을 느끼고 공동체 안에 남아 있게 되는 학생들도 생긴다. 이것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들이 있다. 과거에 이벤트성 전도가 주된 흐름이었을 때에는 복음 전도를 은사와 열정이 있는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무관심했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적인 전환 이후로는 공동체 안에 항상 신자와 비신자가 공존하고 있으므로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전도를 자신의 이슈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비신자가 공동체 안에 공존하는 것이 주는 또 다른 유익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례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로 낙인찍히게 된 데에는 주로 신자들끼리만 어울려 지내다보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시민교양을 습득하지 못했던 것에 일부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선교단체 안에서 신자와 비신자가 어울려 지내는 것은 기신자들이 비신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며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해지도록 도와준다. 그리스도인이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시민교양을 가질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타협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성숙한 시민교양을 습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교회가 한국사회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복음을 활력 있게 전하게 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또한 지난 수십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운영해온 청년사역 커리큘럼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년사역에 있어서 소그룹과 수련회 등의 훈련커리큘럼이 가지고 있는 예측가능한 전형성에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진부함과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창의성 유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 가장 본질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도 그 안에 성령의 역사가 있고 성장과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변화되어가는 청년들의 필요에 맞게 사역 커리큘럼을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던시대의 청년들은 참여적인 방식일 때에 가장 잘 배우고 종교적인 미사여구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공동체에 소속감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원한다.

몇년 전에 필자는 이러한 청년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겨울수련회를 새로운 형식으로 변화시켰던 경험이 있다. 강의와 소그룹, 저녁집회와 기도회 등의 예배당 중심의 신앙체험과 강의실 중심의 배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수련회를 탈피하여, 공동체 탐방과 도보여행을 결합한 방식의 수련회였다. 전반부 삼일은 농촌에서 친환경농업과 적정기술연구소와 대안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는 기독공동체를 방문하여 그곳에 계신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함께 예배드리고 그 단체에서 운영하는 적정기술 연구소를 탐방하고 함께 노동도 하며 보냈다. 학생들에게 세상의 필요와 자신의 진로를 연결지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실제적인 도전을 얻게 된 시간이었다. 또한 대안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넷째날부터 삼일동안은 학생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혹한에 눈이 채 녹지 않은 산길을 걸으며 미끄러지지 않도록 서로 붙잡아주고 힘내라고 격려해가며 학생들과 필자는 수련회장 안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공동체성과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필자와 학생들에게 그 수련회는 우리의 신앙여정에 있어서 잊지 못할 귀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필자는 이러한 참여적인 방식의 수련회가 전통적인 방식의 수련회와 함께 병행될 때에 가장 효과적인 훈련과 양육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수련회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깊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며, 양육프로그램 중에는 여전히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사역의 장점을 잘 살려가는 가운데, 변화와 쇄신을 시도
하는 균형잡힌 지혜가 요구된다.

이상과 같이 우리 시대를 위한 청년사역의 방향성 재고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간략히 서술해 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세상은 위기이자 또한 기회의 땅이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티가 가진 상대주의적 특성을 경계하는 가운데, 진리가 해체된 이 시대의 외로움과 갈망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야말로 복음이 가장 필요한 시대라는 흔들림없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이 시대에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과 문화적 접점을 찾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osted by S. J. H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