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관련하
 기독교인은 노란 리본달기에 동참하면 안된다는 글이 SNS를 통해서 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레이디가가, 한반도전쟁예언, 차별금지법 등등 때마다 비슷한 성격의 글이 어김없이 날아왔습니다. 처음 받았을 때는 모르는 이가 날린 스팸성 글이었으니 그들의 무지와 몰상식을 비난하는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인들에게 받고 나니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 분들의 진실한 삶과 신앙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그 후로 저는 그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그 내용에는 속상하고 상심되지만, 그 안에 있는 그 분들의 진심을 읽어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가능한 한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신실하고 순수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저런 유의 글을 퍼나를만큼 쉽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그 분들의 뜨거운 신앙심에 비해서 기독교신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이해하는 기독교세계관의 자리는 비어있거나 또는 조잡하고 반성경적인 이원론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고 기독지성운동의 책임입니다.
그 글을 퍼나르는 분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그로 인해 그 분들은 상처받고 그 반감으로 더욱 반지성주의적인 입장에 완고히 머무르고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떠도는 노란 리본 반대 글 몇 개를 읽어보니 크게 두 가지 요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노란 리본은 무속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사용하면 안된다. 노란 리본 사용은 우상숭배이고 사탄에게 미혹되는 것이다.
2. 사탄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전 국민을 우울증에 빠지게 하려고 한다. 그러니 이제 그만 슬픔에서 벗어나야 한다.


2번의 경우, 많은 분들이 좋은 답을 주셨으므로 보탤 말은 많이 없을 거 같습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우리의 문제는 감수성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적 도덕적 불감증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https://www.facebook.com/seekerjh/posts/702196109823843?stream_ref=10
고난받는 이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며 인간의 도리입니다. 오히려 신앙의 이름으로 그것을 막는 것이 폭력이며, 그렇게 억눌러진 슬픔이 우리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총신대 김희석 교수님의 글이 좋은 답변이 될 것입니다. 
https://www.facebook.com/heesuk.kim/posts/641475549260160?fref=nf


1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노란 리본이 무속적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전쟁에 나간 군인이나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나무에 매달았던 노란 리본에서 유래한 것임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애도’를 상징하는 리본을 결합하여, 실종자 무사귀환과 사망자에 대한 애도를 함께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이 무속적이라 말하는 나비 역시 기독교적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청어람 박현철 연구원의 글 링크합니다.

http://bokklers.com/index.php?mid=all&category=2428&document_srl=10916


“노란 리본은 나비이며, 무속에서 노란 나비는 저승 가는 영혼을 상징하므로 노란 리본은 무속적이고 우상숭배적”이라는 조잡한 논리전개에 전혀 동의가 안 되지만, 만약 백번 양보하여 공교롭게도 노란 리본에 그런 무속적 의미 ‘또한’ 담을 수 있다고 해봅시다.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노란 리본을 희망과 애도의 상징으로 사용할 수 없나요? 

당연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세월호 관련하여 노란 리본을 다는 이들에게는 노란 리본이라는 상징은 ‘실종자 무사귀환에 대한 염원과 사망자 애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란 리본으로 희망과 애도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의식적인 의도’라면, 우리에게 노란 리본 달기는 우리의 의도에 해당하는 표현과 실천이 됩니다.


한국 개신교의 문화 이해는 아직도 매우 협소하고 천박합니다.
최근 인기를 끈 개신교 기반의 문화해석운동이 박성업 수준의 극히 해로운 음모론인 걸 보면 이건 제자리걸음이라기보다 오히려 퇴보에 가깝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워드마스킹 논란에서 세월은 십수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유명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상징을 찾아내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요즘의 대중문화강의에서 세월이 무색한 한결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가려진 이교적, 사탄적 전략에 의해 우리도 모르게 해로운 것에 휘말리거나 무의식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포비아(공포증)에 호소합니다.
이러한 주장에서는 ‘인지가능하고,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것의 영향보다 ‘인지하지 못한, 비의도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의 영향이 더 중요시됩니다.‘몰랐지 알고보면 이래. 큰일날뻔했지?’로 요약되는 이런 패턴은 언제나 쉽고 자극적이며 위기감을 유발하여 대중들에게 잘 먹힙니다.이번 노란 리본 반대에서도 그런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노란 리본을 달아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도 모르는 무속적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사탄의 계략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사탄이 그런 깨알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면 비웃음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란 리본을 다는 우리의 의식적 의도가 희망과 애도의 표현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란 리본을 그 상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탄의 권세와 영향력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명백히 사탄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생명이 달린 배를 운항하면서 노후선박운영, 객실개조, 과적운항 등으로 이윤을 짜내려 했던 해운사 어른들의 탐욕, 승객들을 버려두고 먼저 도망친 선원 어른들의 무책임함,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참극 앞에서 책임전가하기에 바쁜 정부 어른들의 비겁함, 유가족의 아픔을 비웃으며 키보드 앞에서 장난질 하는 일베 어른과 어린이들의 사악함... 이런 것들이야말로 명백히 사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회개해야 할 것은, (음모론이 말하는 사탄적인 것의 무의식적, 비의도적 영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탐욕과 무책임함, 비겁함과 사악함이 이러한 사탄적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슬퍼하고 뉘우치며 분노하고 꾸짖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이상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요. 노란 리본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가 사탄과 맞닥뜨리고 있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전선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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