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정말 존경하는 한 선배님의 글을 보고 (글의 전체 취지에는 매우 공감하지만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감히 외람되게 반대의견을 한 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마침 한동안 제가 너무나 많이 고민해온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보궐선거를 지나면서 '왜 진보는 사람을 얻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궐선거 전까지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지금 가장 슬프고 억울한 자는 세월호유가족이며 한국사회의 모든 병폐, 불의와 탐욕, 나태, 기만이 맞물린 결정체가 세월호사건이므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돕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식을 같이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11:4...
보궐선거라는 점을 감안할 때 11:4가 정확한 민의의 반영이라 보긴 어려울지라도, 이번에도 진보는 역시나 우리 맘 같지 않은 이들이 이 나라에 절반이 넘게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적인 이들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온갖 노력으로 최대한 결집해봐야 항상 절반에서 조금 모자란다는 사실에 좌절해 왔습니다.
그리고 좌절은 분노로 바뀝니다.
"이 사람들아. 이건 정치도 이데올로기도 아니야. 상식이고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야."
저는 진보가 사람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적 의식은 주로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작동합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엘리트주의적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너 그거 문제라고 생각 안 해봤어? 그것도 몰라? 너 그 행동할 때 이거 고려 못했구나?'
그 태도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굿모닝목사와 같은 주장을 하려 함이 아닙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 저항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 강하고 끈질기게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비판이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행한 작고 소소한 일들을 향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런 악의없이 행한 일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어떤 부분을 호되게 비판받았다고 느낄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잃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공간이 SNS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세월호 동조단식에 동참하지는 못할지라도 수십일을 단식하는 분이 계신 마당에 페북에 음식사진을 올려서야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 생각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글을 보는 순간, 페북에 ‘별 생각없이’ 음식사진을 올린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처음엔 '아.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자책하고 부끄러워하고 위축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쑥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음식사진을 올린 의도에 아무런 악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개념없는 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지?’
그래서 결국 이런 마음이 됩니다. '그래. 니들 잘났다.’
작은 예이지만, 진보는 이런 방식으로 중도의 마음을 잃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교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진보적 입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태도로 인해 동료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잃습니다.
이와 비슷한 수많은 예들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런 태도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페북에 감사릴레이와 아이스버킷챌린지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둘 다 저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감사릴레이는 평안히 밥먹고 사는 일상이 죄스러운 시대에 현실과 괴리된 감사 표현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고요.
아이스버킷챌린지는 처음 취지가 ‘유명인 흉내내기’방식으로 변질되가는 것, 모금이 필요한 수많은 영역이 있는데 이 이벤트의 붐으로 인해 지나친 모금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것, 그리고 세월호국면이 희석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릴레이가 저에게 온다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받으려고 했습니다.
지금껏 참여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배려하고 싶고, 특별히는 저에게 그 바톤을 직접 넘긴 이의 마음을 배려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분리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행해지는 비판이 사실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잃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세월호국면에도 일상의 소소한 감사는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그 감사에 세월호이야기, 광화문광장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생각없는 이로 보일까봐 눈치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싸움을 사람을 잃지 않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세월호국면에도 눈치보지 않고 루게릭병환자를 위해 얼음물을 뒤집어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스버킷챌린지를 세월호동조단식릴레이로 전환해도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이 장기전에서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이 싸움을 싸워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든 시스템의 피해자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이 슬픈 세상에서... (0) | 2015.05.02 |
---|---|
소중이 아빠가 한국교회에 고하는 글 (0) | 2014.08.02 |
세월호 유가족, 우리 시대의 욥... (0) | 2014.07.28 |
6.4 지방선거가 보여준 희망... (0) | 2014.06.05 |
일부 기독교인의 노란 리본 반대에 대하여 (9) | 2014.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