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십대들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가 과거보다 더 심각하도고 끔찍해진 상황임에도 이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다는 데 있다. 즉,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이들이 묶여 있는데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너희 때는 원래 그런 거야!"와 같은 말로 이들을 격려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쉽게 말해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는 식의 말은 이들의 삶이나 처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단 얘기다. 
예컨대 100명의 이십대 중 20명만이 정규직 노동자가 된다고 하자. 여기서 이 20명은 결코 변하지 않는 숫자라 하자. 그럴 경우, 죽도록 고생하면 정규직 된다고 말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생 여부와 상관없이 100명 중 80명은 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이 전체 '파이'의 문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딴 식의 말로 이십대를 위로한다고 하자. 그럼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정규직이 되지 못한 21번째 사람부터는 그의 현실이 '고생 안 한 결과'로 인식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처럼 지금의 상황은 단순히 개인이 좀 잘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가 좋아져야 한다는 목소리, 특히 정규직 전환과 같은 노동자 삶의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지지해주는 게 이십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당연히 좋은 일이다. 이러함에도 오늘날 이십대들에게는 그런 논리구조가 없다. 이들에게 그건 이유가 아니다. 정확히는 그것을 거부하는 논리구조가 있을 뿐.
오히려 이십대들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핑계대지 말고 스스로를 계발하라!"는 말로 깔끔하게 퉁 치고 만다. 아무리 노력해도 신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이십대가 오히려 기성 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경청하고 따르는 셈이다."
--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중에서


저자는 대학강사로 일하던 2008년 자신의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KTX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비난하는 현실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본 20대들은 약육강식의 혹독한 정글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시스템을 바꿔가기 위해 힘을 모으고 연대해야 할 동지들을 경쟁자 내지 적으로 규정하고 '무임승차자', '뻔뻔한 이들'이라며 비난한다.
돈이 돈을 낳는 투기적 자본운용으로 극도의 부를 쌓은 이 시스템의 '진짜 무임승차자들'은 오히려 롤모델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20대 만의 문제일까...
오늘 아침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맞으며 하룻밤을 꼬박 길거리에서 보낸 세월호 유가족들이 차도에 고립되어 있을 때, 지나던 운전자들이 유가족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래. 길이 막혀 불편했을지도 모르겠고, 회사에 좀 지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알게 될까.
그들이 오늘 아침에 한 일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사는 이 병든 세상을 고쳐보겠다고 온몸으로 물과 최루액을 맞으며 최전방에 서 있는 분들에게 비수를 꽃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은 언젠가 결국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의 인생을 향한 비수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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