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슈 털어주는 남자" 198회는 '사극에 나타난 정치코드'라는 주제였습니다. 
"이털남"에 따르면, 영화 '광해'는 모든 일간지 연예면이 싸이 열풍으로 도배되던 시기에 개봉을 하는 바람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보통 관객수 3~4백만이 넘어가기 시작할 때 받기 시작하는 언론의 관심과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그러고보니 정말 천만을 넘기 전까진 광해 관련기사를 별로 본 적이 없네요). 그러한 언론의 관심몰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한국영화 사상 '광해'가 유일하다고 하더군요.
물론 거대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정당히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언론의 지원없이 천만관객이라면 "광해"를 통해 우리 국민들 안의 어떠한 열망이 표현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늘 드디어 "광해"를 봤습니다. 정말 펑평 울었습니다.

하선의 모습에 예수님이 자주 오버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조선에 오셔서 왕이 되셨다면 그와 같은 왕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한 분도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그렇게 이상적인 지도자도 아니셨고 공과가 뚜렷한 분이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하선과 가장 닮은 지도자였다고 생각합니다(실제로 영화 안에는 광해의 작가가 고인에 대한 오마쥬로 집어넣었다고 고백한 장면이 있습니다. 스포일러는 자제하겠습니다).

상업영화로서의 오락성과 재미, 감동에도 충실한 작품이거니와, 영화가 비추는 과거-현재-미래, 그 안에 담긴 시대정신과 지도자상, 그리고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물어오는 질문 등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한참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 켠이 먹먹합니다.
천만명이 넘게 보고 영화 내릴때쯤에 웬 뒷북이냐 싶지만, 혹시라도 아직 안 보신 분 있다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2012년에 꼭 들어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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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사람이여...  (0) 2011.08.15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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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을 완결지을 새도 없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 책은 노무현재단과 유시민이 그의 생전의 여러 기록들과 그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해서 편집하여 완성한 책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이 책은 자서전의 엄밀한 정의를 충족시키에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노무현 자서전으로 손색이 없는 이유가 있다면 이 책이 그 분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대통령 노무현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화끈한 진보대통령이 되어주기를 바랬던,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의 바램과 달리 그는 결국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게 비난당하고 외면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결국 그 길을 가기까지의 그의 선택과 행보에는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고뇌가 담겨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그 고민과 고뇌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피해 입을 약자들로 인해 마음 아파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자기의 선택에 대해 100% 확신하지도 만족하지도 않았다. 그는 때로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후회했다. 또한 그는 비난당할까봐 두려워했고 혼란해했고 그래서 변명도 했다. 또한 그는 상처받았고 서운해했고 외로워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이 그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다. 이 책은 그를 닮아 가식없이 참 솔직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특히 부패한 수구언론과의 외로운 싸움이 그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고인이 헤치고 나아가려 몸부림쳤던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언론은, 우리의 정치판은 평범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원했던 보통사람이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퇴임 후 살기 원했던 농민과 시민운동가로서의 소박한 삶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이 정도 두께의 자서전 한권이 충분히 더 나올만큼 가치있는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퇴임 이후의 그의 삶과 계획은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이 책이 그 지점에서 그렇게 급작스럽고 허무하게 끝나버려야만 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훗날 우리의 역사가 '대통령 노무현'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대통령으로서 그가 했던 선택과 결정들로 인해 실망했던 적도 많았다. 그는 결코 완벽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도 추악한 대통령을 많이 배출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고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후대에게 우리 시대도 이런 대통령을 가졌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인간 노무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대통령 노무현’보다는 '인간 노무현'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인간 노무현의 꿈과 그 걸음걸음을 응원했고 존경해왔다. 책을 읽고 나니 새삼 그가 많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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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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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책표지에 쓰여 있는 이 짤막한 글은 리영희 선생의 글과 삶이 가지는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나는 그가 밝혀준 시대를 함께 지나와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 세대의 사람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얼마전까지도 그에 대한 나의 지식이라고는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고 성을 ‘리’라고 표기하는 것에서 느꼈던 뭔가 낮설고 불온(?)한 이미지,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여러 책에서 수차례 언급되곤 했던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왠지 간지나는 책 제목이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리영희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유시민의 책 <청춘의 독서>와 조정래의 대하소설<한강>을 읽고 난 후부터였다. 그 두 책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이뤄낸 세대들에게 그가 미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 후 나는 리영희 선생이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인물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평전을 발견했을 때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사상의 은사’라는 찬사와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아온 그였지만, 의외로 평전을 통해 알게 된 그는 단순히 ‘좌’로 규정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에 있어서, 그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과 사회주의에 대한 맹신 모두를 경계했으며 양자의 상호공존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회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는 부패, 불법, 타락, 빈부격차, 폭력, 범죄, 잔인, 인간소외 등을 낳게 마련이에요. 그것들은 자본주의의 ‘본태성 질병’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사회주의의 인간중시 가치관만이 그러한 자본주의의 반인간적 측면을 방지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질병이 그 제도의 골수에까지 심화하여 제도 자체가 붕괴하는 위험을 어느 정도의 선에서 예방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또 그렇기를 원한다면 사회주의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우선 지난 300~400년 사이에 인류의 발전을 이루어왔던 제도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절한 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화> 중에서.


그가 중국식 사회주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정작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존과 보완에 있어서 그 기본틀은 자본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유신독재와 신군부시대의 권력이 리영희 선생을 그토록 탄압했던 것은 그의 사상 또는 이념이 유난히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보신을 위해 곡필을 일삼았던 어두운 시대에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주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재권력에게는 그의 ‘사상’보다 그의 ‘태도’가 더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옥고를 치르면서도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불의에 대한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았던 용기와 기개.

언론인과 교수로서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정권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태도로 살았기에 여러번 해직을 겪으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삶(특히 선생의 나이 예순 다섯에 처음으로 온수가 나오는 집에서 살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아려왔다).

이러한 태도와 삶에서 나온 글이었기에 그의 글은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었고 그는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식을 전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각성을 전달한 사람이었다. 각성이란 누군가를 배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리영희를 통해 보건대, 스승이란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배우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뜨렸고,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한마디로 그는 일깨우는 사람이었다.

- 고병권의 글, <리영희 프리즘> 중에서.

 

평전을 통해 리영희 선생의 삶을 읽으며 자연스레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어둔 시대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진실을 증언하며 살아간 지식인이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제자로서 나 또한 선생 앞에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책장을 넘기다 눈물이 핑돌게 만든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리영희 선생이 아내 윤영자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리영희 선생이 시대의 우상과 맞서는 투사로 살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분 덕분이었으리라. 이름도 빛도 없이 모진 인생을 견디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선생 옆을 지켜온 분... 어쩌면 진정한 거인은 이 분이 아닐까. 이 여인이 너무 커보여서 한동안 이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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