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월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짜가 유독 많다.
거기에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더하고만 죄를 우리는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인가.
아직 80년 광주에 진 빚도 전혀 갚지 못한 우리가 말이다. 
책을 읽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꺼억꺼억 울었다.
정말 아픈 책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이 책을 2014년 최고의 소설로 꼽았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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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휩쓴 화제의 베스트셀러 <화폐전쟁>을 읽었습니다.
책은 세계경제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금융재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은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은행업을 통해 성장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을 중심으로 한 그 연관세력인데, 세간의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실질적인 의미의 세계 최대 부자라고 합니다. 역시 저자에 의하면, 이들은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배후세력이며, 암살되거나 의문사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죽음에도 관여했습니다. 이 미국대통령들의 암살은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국제금융재벌과 미국대통령들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또한 이 금융재벌들은 세계 1,2차 세계대전을 부추겨 전쟁을 통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도 했으며, 1990년 도쿄증시폭락과 90년대 중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주범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사태도 잠깐 다루고 있습니다).

결국 책 전체를 이끌어가는 논리는 일종의 음모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음모론은 이 책의 흥행에 기여한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 책의 문제점이기도 한 양날의 검입니다.
음모론 책이 가지는 강점을 들자면, 흥미 유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거를 성실히 갖춘 이야기들로만 구성된 역사서술은 역사관심자가 아닌 일반독자들에게는 자칫 딱딱하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세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세력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저 역시 이 책이 어찌나 재밌던지 얇지 않은 책인데도 딱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어찌되었든간에 책을 붙들고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으며, 읽고 난 후 화폐와 금융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대략이나마 알게 된다는 점에 이 책의 의의를 두자면 둘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그에 대한 저자의 음모론적 해석을 솜씨좋게 조합한 일종의 팩션(faction)입니다. 음모론 책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 책도 저자의 음모론 시나리오를 검증된 역사자료들을 통해서 뒷받침하기보다는 다른 음모론 책에서 끌어오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러한 팩션에서 팩트를 구분해낼 만한 충분한 분별력과 배경지식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가령, 세계통화제도의 역사가 금본위제에서 브레튼우즈체제, 그리고 변동환율제도로 변천해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진단함에 있어서, 화폐를 금이라는 한정된 자원과의 교환가치에 묶어두는 방식으로는 전세계적으로 커져가는 실물경제 규모를 통화량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일어난 결과로 보느냐, 아니면 이 책이 말하듯 세계금융재벌들이 화폐를 금에서 떼어놓아 금융착취를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해온 음모로 보느냐는 '역사에 대한 해석'에 해당합니다.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 책이 제시하는 '역사에 대한 해석'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음모론만 잘 걸러내어 읽는다면, 군데군데 좋은 통찰을 주는 부분이 꽤 있는 책입니다. 
가령, 화폐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화폐가 가진 본래적 기능은 거래의 매개이며 가치의 저장입니다. 그러나 이윤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화폐를 그 고유의 기능에서 벗어나 화폐 자체를 투기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로인해 거대금융자본가들이 개인들이 성실히 일하여 모은 재산을 투기적 공격을 통해 강탈해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채권과 채무관계를 여러 번 꼬고 비틀어 이윤을 뽑아내는 복잡한 파생금융상품들은 시세차익으로 땀흘리지 않고 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인간의 투기적 욕망에 의해 고안된 발명품입니다. 그렇게 부채 위에 부채를 쌓고 부채를 얼키설키 엮어 지은 사상누각이 결국 무너져 내린 것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습니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겨난 약속인 금융경제가 정작 실물경제를 파괴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돈으로 돈을 먹으려는 극단적 돈놀음, 그 안에 있는 탐욕이 이 세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은 굳이 음모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책이 투기적 금융자본가들의 탐욕과 비윤리성, 그것을 합법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모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그것을 고발하기 위한 예언자적 의분을 가지고 쓴 책은 아님을 반드시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이 책이 음모론의 관점으로 경제사를 흥미롭게 개관하고 오늘날의 세계금융시스템을 맹렬히 비판하고 난 뒤 끝부분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이 되는 길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저자는 중국은 달러 대신 금을 열심히 사모으고 위안화를 금과 연동시켜 달러 이후 시대의 기축통화가 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금융자본의 중국을 향한 투기적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저자의 중국 패권주의에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음모론으로 보나 담고 있는 태도로 보나 여러모로 그리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이 아니어도 비슷한 주제에 대해 훨씬 더 큰 통찰과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쓰여진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딱 세 권만 추천하고 싶습니다.
세계화 국제포럼이 엮은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세계화의 허상을 예리하게 고발한 책입니다. 두 책 모두 금융투기자본의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의 경우, 세계화 문제에 대한 포괄적 비판과 대안 제시를 하고 있는데 제 짧은 독서경험 안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이보다 뛰어난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시장의 논리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파고든 극단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들이 어떻게 훼손되고 파괴되어 가는가를 풍부한 실례를 통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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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이 학교를 마치는 순간 공부가 끝이 되어서는 안될텐데, 계속해서 공부와 독서를 가이드해줄 스승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독서의 스승이 계신데, 얼마전 그 분이 페북에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올리셨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신 서문에 반하여 그날로 당장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저자인 박노자 선생님은 한국학을 전공한 러시아인이었는데, 한국으로 귀화하여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칼럼으로 이 분의 글을 접한 적은 종종 있었으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 역시 한겨레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주제별로 배열해 엮은 것이긴 하다.


책이 많이 무겁다. 경쟁과 착취를 통한 극단적 이윤추구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세상이 우리들을 어떻게 비인간화시키고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예리하게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논조를 가진 책들이 많이 있으나, 저자의 글은 다른 이들의 글에서는 얻기 힘든 독특한 통찰을 준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저자가 귀화한 외국인으로서 한국사회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서 내가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번도 미심쩍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전제, 문화, 관습 중에서 불합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한국을 '병영국가'라고 보는 인식에 매우 공감하게 된다. 
둘째로, 저자가 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라 소비에트 사회를 배우고 경험했으며 여전히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고 사는 사회주의자라는 점 역시 그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통찰의 원천인 듯 싶다.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불편하게 읽히는 지점도 꽤 있다. 저자가 과연 사회주의의 공과 과를 공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의문이 드는 지점이 꽤 있다. 저자가 스탈린주의를 왜곡된 사회주의로 보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 속의 사회주의가 대부분 결국은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일당독재로 흘러가며 인민들의 사상의 자유를 속박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수없이 숙청했던 현실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가차없는 비판에 비해서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못 보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저자에게도 그 안에서 태어나 자라 사회주의의 모순을 못 보는 지점도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사회주의 이상이 온전히 실현된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 혁명에 있어서의 폭력의 불가피성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도 꽤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속물적 이념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깨우는 예언자로서 박노자의 글은 지속적으로 읽을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글의 내용에서도 배우는 게 많지만, 자본주의가 교조적으로 추앙받는 세상에서 용기있게 마이너리티의 길을 가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서도 느끼게 되는 점이 참 많다(책에서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대학교수를 통렬히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비판이 그토록 힘있게 들리는 것은 저자 스스로가 그 지식인의 책무를 엄숙하게 수행하고자 분투하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독서 스승께 감사드린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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