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인생의 화두 중 하나는 '아빠 되어가기'입니다.
<십자가>를 읽고 시게마츠 기요시에 깊은 인상을 받은 터에, 그가 쓴 아버지에 대한 단편모음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탄수화물, 단백질, 칼슘 같은 소설이 있다면 비타민 같은 작용을 하는 소설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담아 일곱편의 짧은 이야기를 썼다고 합니다.
각각의 단편은 Family, Father, Friend, Fight, Fragile, Fortune 등 'F'로 시작되는 단어를 각 작품의 키워드로 삼고 있는데,다 쓰고 보니 결국 자신은 Fiction, 즉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었던 것 같다는 저자의 후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비타민F>는 가정 안에 불어닥친 크고 작은 위기들로 인해 성실히 살아온 남자들이 남편이자 아빠로서 겪는 정체성혼란과 고뇌,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위기를 극복해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7편의 단편 중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나이인 30대 후반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도널드 밀러의 <아버지의 빈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소설집, 시게마츠 기요시의 <비타민F>를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


왕따청소년의 자살을 다루어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입니다. 
저자는 TV에서 왕따에 시달리다 자살한 청소년의 아버지가 인터뷰한 것을 본 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2주만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학교, 가정을 소설의 주무대로 삼고 '관계'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합니다. 
또한 저자 자신이 왕따의 피해자였던 경험이 있다고하니, 아픈 마음을 품고 다른 어떤 작품보다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간 소설일 듯 합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학교에서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후지이 슌스케(중2)는 유서를 써놓고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합니다. 유서에는 네 명의 이름이 쓰여있는데, 자신을 괴롭히던 두 아이, 짝사랑하던 여학생, 그리고 주인공입니다.
슌스케는 주인공에 대해 "나의 절친이 되어주어서 고마워"라고 썼는데, 이상하게도 주인공은 초등학교 때 잠깐 이후로는 슌스케와 친하게 지냈던 적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슌스케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방관한 공범이라는 죄책감과 '슌스케는 왜 나를 절친이라 생각했을까'라는 의문을 지고 남은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은 "사람을 비난하는 말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듣는 순간 큰 아픔을 주는 '나이프의 말'과 듣고나면 평생을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의 말'이 있다"고 합니다. 
결국 "나의 절친이 되어주어서 고마워"라는 슌스케의 말은 주인공에게 평생 지고가야 할 십자가의 말이 된 것이지요.
소설은 왕따로 인한 한 소년의 자살이 유가족과 주위 학생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2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다 읽고 가슴이 먹먹해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좋은 소설입니다.


Posted by S. J. Hong
,



개인적인 관심도 있고 강의준비도 할 겸하여, 세태에 대해 분석하는 책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요즘입니다. 
비슷비슷한 내용들에 심드렁해질 때쯤에, <대한민국 부모>의 저자들이 쓴 이 책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부모>는 제가 올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책으로,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이 있다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이 책은 그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시대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과 통찰도 특별할 것 없었고, 다른 책들에서 나온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이 책은 특정 세대에 대해 분석하는 세대론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병폐가 세대에서 세대로 어떻게 대물림되어가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마치 시대의 문제가 특정세대에 집중되어 있기라도 하다는 듯 단순화하는 세대론의 함정을 피하고 있습니다.
둘째, <대한민국 부모>에서도 그랬듯이, 이 책에서도 저자들의 따뜻한 시선이 좋습니다. 
교육현실을 고발한 많은 책들 중에 <대한민국 부모>가 유독 좋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저자들의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들은 그 책에서 참담한 우리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지만, '이게 다 부모 때문이다, 교사 때문이다, 교육정책입안자들 때문이다' 하는 식의 접근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자녀가 미칠때까지 공부로 몰아붙여대는 엄마도, 침묵으로 거기에 동조하는 아빠도, 입시지옥훈련의 조교가 되어 있는 교사도 그들 각자가 살아온 아픈 삶이 있음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나면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책을 서로에게 건네면서 '우리 다 잘 해보려고 그런 거지요. 그런데 결국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제 다르게 사는 법을 생각해봐요'라고 말하고 싶게 만듭니다(이건 애완의 시대 소개인가 대한민국부모 예찬인가ㅋ).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살고 있는 아픈 삶과 그들의 부모세대가 헤쳐나온 아픈 삶을 이야기하는 저자들의 시선이 참 따뜻합니다.
책에 한 중년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식 키워내는데 평생을 바쳤고 이제 달랑 남은 것은 대출빚끼고 산 아파트 한 채뿐인 그에게는 그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이 노후를 향한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부동산활성화에 대한 기대(그럴리가!!)를 가지고 이명박근혜에게 표를 던집니다. 그들을 '가치가 아닌 욕망에 표를 던졌다'며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이 시대의 문제를 풀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물론 그 선택을 인정하는 것도 해법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 대한 책을 쓰던지, 이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책을 쓴다는 것이 저자들이 가지는 강점이자 특별한 기여인 것 같습니다.
두어시간이면 후루룩 다 넘어가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Posted by S. J. H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