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펼쳐들었다.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에겐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누가 범인인가'를 놓고 독자와 두뇌싸움을 걸고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의외성과 반전의 쾌감을 선사하는 형식인데 비해, <붉은 손가락>은 시작부터 살인범과 살해방법을 독자에게 알려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범인을 감추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 사이의 대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범인찾기 없이도 이렇게 몰입하게 되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는 저자의 내공에 놀라게 된다.


읽고 난 후 여운이 많이 남고,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추리소설에 기대하는 재미도 충실히 주면서 이런 감상까지 느끼게 하다니, 추리소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준 책이라 평하고 싶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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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창해

요즘 장거리 지하철 탈 일이 많아서 오가며 소설 삼매경입니다.
최근 읽은 소설 한권 더 소개합니다.
1997년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인 <검은 집>입니다.
싸이코패스를 다루는 소설은 지금에야 아주 흔하지만, 이 책은 1997년에 싸이코패스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하고 파격적이었을 듯 합니다. 
당시 이 책으로 인해 일본사회에 싸이코패스에 대한 담론이 활발히 일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내에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으나 무려 황정민이 주연했음에도 안타깝게 폭망했지요.

책은 군데군데 생각할 지점이 참 많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선의에서 비롯된 제도, 시스템을 악용하는 건 싸이코패스들만은 아닐 겁니다.
선한 제도와 시스템의 본래 의도를 삼켜버리고 변질시키는 극단적 이윤추구가 사실은 싸이코패스보다 더 무서운게 아닐까요.

덧, 무서운 책 싫어하면 절대 읽지 마세요^^;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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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소설을 소개하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매너가 아니다.
대신 이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게 되었는지, 얼마나 충실히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민방위훈련에 안보교육이라는 시간이 있다.
극우세력의 안보장사에 기여하는 아주 신박한 헛소리들이 쏟아지는데, 이걸 듣고 앉아 있는게 아주 고역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안보교육도 좀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가 불가능한 것과 비슷한 이치로,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더욱 잘 들리고, 듣다보면 결국 짜증나고 마는 일이 민방위훈련때마다 반복되었다.
재밌는 책을 일부러 골라가기보다는 보통 그 즈음 읽던 책을 가져가곤 했는데, 귀를 뚫고 들어오는 헛소리를 막아내기엔 가져간 책마다 번번히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번 민방위훈련을 앞두고 신중히 선택한 책이 이 책이었다.
믿고 읽는 정유정이니까.
결과는?
이번 안보교육 한시간은 거의 완벽히 내 인생에서 지워졌다.
무아지경, 그리고 타임워프를 경험하고 싶다면 정유정의 소설을 추천한다.


덧. 무서운 책 싫어하면 읽지 마세요.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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