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산장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기가 막힌 반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호기심에 읽어보았지만, 뭐랄까 그냥 밋밋했다.

국내에서 다소 과대평가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보다 앞서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들의 혼합물 같은 느낌을 받는다.

1인칭 서술트릭으로 범인을 감춘다는 점에서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연상되며,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공범이라는 점에서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떠오르고, 살인사건을 위장한 연극이라는 설정은 영화 <죽음의 만우절(April Fool’s Day, 1986)>과 유사하다.

좋은 재료들을 많이 섞어보았지만 결국 맛있지는 않은 음식과 같이 되어버렸다.

아쉬웠지만 저자의 초기작품임을 감안해서 보면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인칭 서술트릭을 잘 발전시켜서 이 책으로부터 6년 후에, 결국 <악의>라는 역작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저자의 성장과 발전의 증거로는 의미있겠으나, 희대의 대반전이 있는 작품이라는 식으로 알려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나처럼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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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포레

 

최근 일본추리소설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다.

검증된 작가들의 대표작 위주로 읽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

이 책 역시 노리즈키 린타로의 대표작이고 호평들이 많아 읽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이 책에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주요 장치는 결국 1인칭 서술트릭인 셈이다.

이 트릭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큰 반전이겠지만, 이제 추리소설에서 서술트릭이라는 요소가 꽤 흔해졌음을 감안하면 트릭을 잘 쓰는 것이 정말 중요해졌다고 본다.

1인칭 서술트릭을 활용하여 범인을 감추거나 독자의 허를 찌른 책 중에서 최고봉을 꼽으라면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들겠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트릭의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임이 분명한데다가 최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명실공히 최고봉이라 할만하다.

<악의(1996)><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과 무려 70년의 시간차가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70년 동안의 추리소설의 발전을 반영하여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현대에는 이 정도의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겐 1인칭 서술트릭을 활용한 책이 만족스러우려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보다 오래 된 작품이거나, <악의>보다 잘 쓴 책이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요리코를 위해>는 다소 아쉬운 책이었다.

서술 트릭의 완성도도 아쉬웠지만, 밝혀진 진상에서도 다소 논리적 비약이 느껴져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나에겐 이래저래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한 책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극찬이 쏟아지는 책이다

아쉬웠다는 나의 감상은 매우 주관적이며 소수의견에 해당함을 밝혀둔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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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요코야마 히데오, 검은숲


요즘 일본 추리소설 삼매경입니다. 얼마전 제 인생 최고 추리소설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http://warinlife79.tistory.com/238가 갱신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악의>가 워낙에 역작이어서 이 순위는 당분간 바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만에 이 책이 <악의>를 밀어내고 제 마음 속 추리소설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입니다.

소설제목인 64는 미제사건으로 남아버린 쇼와64년의 여아유괴살해사건의 사건명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과 부서 간의 갈등, 그리고 언론을 비롯한 경찰 외부 조직과의 긴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루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범죄사건의 미스테리를 밝혀가는 요소 못지 않게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에, ‘경찰소설의 대가'로 불립니다.

<64>는 그가 잘 하는 이것을 가장 잘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4분의 3 정도가 경찰조직 내외부의 갈등과 그 안에서의 주인공의 고뇌를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서 마치 '미생 중년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로 출간해도 그 자체로 완성도 높고 재밌는 작품일 정도인데, 거기서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이 책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이렇게 소설이 마무리되어 가는구나 싶을 때쯤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터지며 그것이 64사건과 연결되어 결국 과거와 현재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는 소설의 마지막 4분의 1은 정말 압권입니다.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64>에 관련된 여러 글을 검색하고 드라마, 영화 등을 찾아보며 한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64앓이'라 부를 정도로, 저 같이 <64>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제 인생 최고의 추리소설 <64>를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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