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대략의 내용을 듣고 별 관심없이 휙 지나쳤습니다.
그랬던 책을 새삼 찾아 읽게 된 계기는 한 주 전 일어난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사건이 준 충격은 꽤 컸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예비군훈련조차 안심하고 받을 수 없는 위험한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군시절에 따돌림과 가혹행위를 당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이 제대 후 사회부적응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예비군훈련장에서 불특정인에 대한 살인을 감행하고 자신도 자살하고만 한 젊은이의 모습이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병들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여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갑자기 이 책이 떠올랐고, 그래서 철지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한 정신의학자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이 몇 년을 주기로 두드러지게 널뛰기를 하며 증감하는 것을 보고 그 원인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던 중에 그 주기가 각각 공화당,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의 집권시기의 변화와 절묘하게 맞아들어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에서 시작된 연구를 통해서 저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책이 실업률의 증감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살인율과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줄창 민영화를 외쳐대며, 경쟁을 부추겨 실업과 실직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붙이는 정권 하에서는 그렇지 않은 정권일 때보다 사회구성원들이 겪는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취약계층의 사람들이 구직실패와 실직 등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될 때, 그로 인해 생계비관형 자살이나 묻지마폭력, 살인 등의 빈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자살/살인은 복지규모/실업률과만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관과도 매우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즉, 약자를 향한 관용이 없고, 강함만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팽배할 때, 그 사회의 자살/살인률은 올라갑니다(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러한 시기인 것이 분명합니다). 
문화인류학의 아이디어인 '수치심의 윤리'와 '죄의식의 윤리' 개념을 통해 이것을 설명해낸 4장 '수치심이 사람을 죽인다'는 이 책의 백미입니다.


이 책에 대한 몇몇 비판을 들었습니다.
"단지 미국의 사례일 뿐이고, 한국상황에서는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 "우리의 제1야당은 무능하여 미국의 민주당처럼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 두 가지가 주된 반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득불평등과 자살/살인의 높은 상관관계는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데이터로 검증된 바입니다.
현재 어느 당이 더욱 소등불평등을 키우는 정책을 펴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당의 집권시기와 실업률 및 자살/살인률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는가를 확인하기에는 우리의 데이터가 빈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은 공화당/민주당의 양당체제가 오래도록 확립되어 온데 비해, 우리는 현 여당의 독점에 가까운 정치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의 논지를 회의할 이유가 아니라, 데이터 검증이 가능할 정도의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짧은 우리 정치역사에서도 이 책의 논지가 확인되는 지점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과 자살로 이끈 IMF시대를 오게 한 정부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것을 비교적 충격을 최소화하며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시킨 정부가 어디인지 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열악한 경제지표를 공화당으로부터 물려받아 정상화시킨 후에 다시 정치논리에 밀려 공화당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마는 민주당의 사례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우리의 짧은 정권교체의 역사 속에서도 현 여당과 제1야당 사이에는 양비론으로 뭉개버릴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폐기해버릴 수 없는 묵직한 주장과 수많은 유익한 통찰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주저없이 별 다섯 개입니다.
이명박근혜 시대 10년, 도처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신음소리가 크고도 아픕니다.
많은 분들께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덧; 이 제목의 책은 절판되었고, 최근에 <위험한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었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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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펼쳐들었다가 책 앞부분에 오찬호 씨가 쓴 해제를 읽고 반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 책은 해체에서 멈추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갈아탔습니다.
(필꽃힘 갈아탐 성공적)


20대 보수화의 원인에 대한 여러 진단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만큼 이 문제에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사회시스템으로부터 가장 철저히 홀대받는 세대가 어쩌다 그 시스템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있는가?"
부모의 정치성향의 대물림, 편향된 언론지형 등에 주목하는 여러 정치적 접근들이 있지만, 저는 이 책의 분석이 20대 보수화의 핵심을 가장 잘 짚어내었다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중심논지가 완전히 새롭고 참신한 주장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통찰을 주는 책입니다.
앞으로 이곳 저곳에서 이 책을 무척 많이 언급하게 될 듯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제 소감 몇 마디 읽고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며 관심을 접을까봐 그만 쓰려 합니다.
정말 강추합니다. 
특히 20대라면 정말 꼭 읽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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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살만 칸은 '모든 곳의 모든 이들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무상교육'이라는 목표를 가진 비영리 교육재단 '칸 아카데미'의 창립자입니다.
읽어보니, 그저 무료동영상강의가 대박나서 교육재단까지 만들게 된 한 스타 강사의 성공담 정도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경쟁을 통해 줄을 세워 기득권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삼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각자의 잠재력이 최고로 발휘되도록 돕는 교육의 비전에 저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학습은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통찰에서 배우고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아들 낳고 벌써부터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미취학 아동들까지 경주트랙에 세우고, 자기 자녀가 그 경주에서 뒤쳐질까 두려워 부모들간에도 '사교육경쟁'이라는 경주를 하도록 강요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심히 답답합니다.
저는 경주마 되기 싫습니다. 절 닮았다면 아마 제 아들도 무진장 싫어할 듯 합니다!
경주마가 되기 싫은 이들이 모여 자기가 잘 아는 분야의 기본개념을 가르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어떨까요?(가령 저는 '책읽기', '보드게임을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협상' 정도를 가르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강의들이 쌓이면 '무료강의리그'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양질의 강의컨텐츠가 확보되면 이 책이 이야기하는 학습의 원리에 따라 '기본개념은 동영상으로 배우고 문제해결, 탐구, 토론 등은 함께 해가는' 홈스쿨, 커뮤니티스쿨 커리큘럼을 짜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교육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력을 가진 이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살만 칸처럼 꼭 누군가가 유튜브스타가 되고 TED강연에 서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되는 그런 스케일이 아니어도, 이 비정한 경쟁교육에 대한 반란을 시도하는 소박한 무리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 책에는 그런 소박한 무리들을 깨워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덧: 제 개인적 관심 때문에 대안교육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만, 대안교육뿐 아니라 공교육의 틀을 어떻게 짤 것인가에 대해서도 유익한 통찰을 많이 주는 책입니다. 교육정책관련하여 일하는 분이나 교직에 계신 분들도 꼭 읽어보세요.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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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월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짜가 유독 많다.
거기에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더하고만 죄를 우리는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인가.
아직 80년 광주에 진 빚도 전혀 갚지 못한 우리가 말이다. 
책을 읽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꺼억꺼억 울었다.
정말 아픈 책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이 책을 2014년 최고의 소설로 꼽았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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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휩쓴 화제의 베스트셀러 <화폐전쟁>을 읽었습니다.
책은 세계경제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금융재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은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은행업을 통해 성장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을 중심으로 한 그 연관세력인데, 세간의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실질적인 의미의 세계 최대 부자라고 합니다. 역시 저자에 의하면, 이들은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배후세력이며, 암살되거나 의문사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죽음에도 관여했습니다. 이 미국대통령들의 암살은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국제금융재벌과 미국대통령들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또한 이 금융재벌들은 세계 1,2차 세계대전을 부추겨 전쟁을 통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도 했으며, 1990년 도쿄증시폭락과 90년대 중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주범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사태도 잠깐 다루고 있습니다).

결국 책 전체를 이끌어가는 논리는 일종의 음모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음모론은 이 책의 흥행에 기여한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 책의 문제점이기도 한 양날의 검입니다.
음모론 책이 가지는 강점을 들자면, 흥미 유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거를 성실히 갖춘 이야기들로만 구성된 역사서술은 역사관심자가 아닌 일반독자들에게는 자칫 딱딱하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세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대세력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저 역시 이 책이 어찌나 재밌던지 얇지 않은 책인데도 딱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어찌되었든간에 책을 붙들고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으며, 읽고 난 후 화폐와 금융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대략이나마 알게 된다는 점에 이 책의 의의를 두자면 둘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그에 대한 저자의 음모론적 해석을 솜씨좋게 조합한 일종의 팩션(faction)입니다. 음모론 책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 책도 저자의 음모론 시나리오를 검증된 역사자료들을 통해서 뒷받침하기보다는 다른 음모론 책에서 끌어오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러한 팩션에서 팩트를 구분해낼 만한 충분한 분별력과 배경지식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가령, 세계통화제도의 역사가 금본위제에서 브레튼우즈체제, 그리고 변동환율제도로 변천해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진단함에 있어서, 화폐를 금이라는 한정된 자원과의 교환가치에 묶어두는 방식으로는 전세계적으로 커져가는 실물경제 규모를 통화량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일어난 결과로 보느냐, 아니면 이 책이 말하듯 세계금융재벌들이 화폐를 금에서 떼어놓아 금융착취를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해온 음모로 보느냐는 '역사에 대한 해석'에 해당합니다.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 책이 제시하는 '역사에 대한 해석'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음모론만 잘 걸러내어 읽는다면, 군데군데 좋은 통찰을 주는 부분이 꽤 있는 책입니다. 
가령, 화폐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화폐가 가진 본래적 기능은 거래의 매개이며 가치의 저장입니다. 그러나 이윤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화폐를 그 고유의 기능에서 벗어나 화폐 자체를 투기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로인해 거대금융자본가들이 개인들이 성실히 일하여 모은 재산을 투기적 공격을 통해 강탈해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채권과 채무관계를 여러 번 꼬고 비틀어 이윤을 뽑아내는 복잡한 파생금융상품들은 시세차익으로 땀흘리지 않고 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인간의 투기적 욕망에 의해 고안된 발명품입니다. 그렇게 부채 위에 부채를 쌓고 부채를 얼키설키 엮어 지은 사상누각이 결국 무너져 내린 것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습니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겨난 약속인 금융경제가 정작 실물경제를 파괴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돈으로 돈을 먹으려는 극단적 돈놀음, 그 안에 있는 탐욕이 이 세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은 굳이 음모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책이 투기적 금융자본가들의 탐욕과 비윤리성, 그것을 합법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모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그것을 고발하기 위한 예언자적 의분을 가지고 쓴 책은 아님을 반드시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이 책이 음모론의 관점으로 경제사를 흥미롭게 개관하고 오늘날의 세계금융시스템을 맹렬히 비판하고 난 뒤 끝부분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이 되는 길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저자는 중국은 달러 대신 금을 열심히 사모으고 위안화를 금과 연동시켜 달러 이후 시대의 기축통화가 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금융자본의 중국을 향한 투기적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저자의 중국 패권주의에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음모론으로 보나 담고 있는 태도로 보나 여러모로 그리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이 아니어도 비슷한 주제에 대해 훨씬 더 큰 통찰과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쓰여진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딱 세 권만 추천하고 싶습니다.
세계화 국제포럼이 엮은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세계화의 허상을 예리하게 고발한 책입니다. 두 책 모두 금융투기자본의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의 경우, 세계화 문제에 대한 포괄적 비판과 대안 제시를 하고 있는데 제 짧은 독서경험 안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이보다 뛰어난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시장의 논리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파고든 극단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들이 어떻게 훼손되고 파괴되어 가는가를 풍부한 실례를 통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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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이 학교를 마치는 순간 공부가 끝이 되어서는 안될텐데, 계속해서 공부와 독서를 가이드해줄 스승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독서의 스승이 계신데, 얼마전 그 분이 페북에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올리셨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신 서문에 반하여 그날로 당장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저자인 박노자 선생님은 한국학을 전공한 러시아인이었는데, 한국으로 귀화하여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칼럼으로 이 분의 글을 접한 적은 종종 있었으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 역시 한겨레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주제별로 배열해 엮은 것이긴 하다.


책이 많이 무겁다. 경쟁과 착취를 통한 극단적 이윤추구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세상이 우리들을 어떻게 비인간화시키고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예리하게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논조를 가진 책들이 많이 있으나, 저자의 글은 다른 이들의 글에서는 얻기 힘든 독특한 통찰을 준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저자가 귀화한 외국인으로서 한국사회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서 내가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번도 미심쩍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전제, 문화, 관습 중에서 불합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한국을 '병영국가'라고 보는 인식에 매우 공감하게 된다. 
둘째로, 저자가 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라 소비에트 사회를 배우고 경험했으며 여전히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고 사는 사회주의자라는 점 역시 그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통찰의 원천인 듯 싶다.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불편하게 읽히는 지점도 꽤 있다. 저자가 과연 사회주의의 공과 과를 공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의문이 드는 지점이 꽤 있다. 저자가 스탈린주의를 왜곡된 사회주의로 보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 속의 사회주의가 대부분 결국은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일당독재로 흘러가며 인민들의 사상의 자유를 속박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수없이 숙청했던 현실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가차없는 비판에 비해서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못 보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저자에게도 그 안에서 태어나 자라 사회주의의 모순을 못 보는 지점도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사회주의 이상이 온전히 실현된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 혁명에 있어서의 폭력의 불가피성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도 꽤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속물적 이념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깨우는 예언자로서 박노자의 글은 지속적으로 읽을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글의 내용에서도 배우는 게 많지만, 자본주의가 교조적으로 추앙받는 세상에서 용기있게 마이너리티의 길을 가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서도 느끼게 되는 점이 참 많다(책에서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대학교수를 통렬히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비판이 그토록 힘있게 들리는 것은 저자 스스로가 그 지식인의 책무를 엄숙하게 수행하고자 분투하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독서 스승께 감사드린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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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매년 하는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수치가 높아 고지혈증 위험이 있다(가족력입니다)'는 결과가 수년동안 나오자 위기감을 느끼고 작년 이맘때에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등록을 했더랬습니다.
그 결정이 그 후 일년간의 제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눈코뜰새없이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새벽이든 밤늦게든 가리지 않고 30분 이상의 시간만 나면 무조건 '1일 1회 운동'의 약속을 지키러 헬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체질, 체형, 근력, 심폐지구력 등에 스스로 느낄만한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남들은 못 느낀다는 점은 함정ㅋㅋㅋ).
아이가 태어난 직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두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돌보는 혹독한 육아를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고 넉넉히 견뎌낸 것도 이 운동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생에서 장그래의 스승이 말했듯이,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그 노력을 버텨줄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책은 소위 몸짱이 되어 과시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체력과 몸의 기능향상을 염두에 둔 운동법과 식습관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헬쓰장을 다닐 필요없이 집에서 맨몸으로 10분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건강을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호락호락한 10분은 절대 아닙니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정확히 한다면 10분짜리 지옥을 맛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다 읽고나서 이 책의 운동법을 한번 실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맨몸운동방법을 완전히 습득하여 익숙해진다면 굳이 헬쓰장을 안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이어트, 몸만들기에 대해 쏟아지는 수많은 책 중에서, 몸짱 되기가 아닌 생존체력 기르기를 이야기하며 바쁜 현대인들도 적용가능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 매우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읽고 운동합시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 윤태호 <미생> 중에서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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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단속사회"는, 타자성, 타인의 고통 등 낮선 것과는 접촉을 끊어버리고, 같은 취향, 동질성 등에는 과잉접속되어 있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사회는 결국 사회의 필수요건인 유대와 연대, 상호참조의 체제를 파괴해서 결국은 '사회 아닌' 상태가 되고 맙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고립과 과잉접속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저자의 분석이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얼마나 통찰들이 훌륭한지 문단을 통째로 옮겨와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은 책입니다. 
저자가 책을 통해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대면하는 삶, 연대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공부깨나 했다는 학자들이 참 많은 세상인데, 저런 이야기를 하게 하는 공부라면 참 가치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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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은 국제인권단체인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의 대표이자, 국내엔 <정의를 위한 용기>라는 책으로 알려진 게리 하우겐입니다. 크리스처니티투데이는 게리 하우겐을 우리 시대의 아브라함 카이퍼로 소개했다고도 합니다.


이 책은 극빈국, 개도국의 힘없는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폭력이 얼마나 참혹하며 빈번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 국민들을 그러한 잔인한 폭력으로부터 전혀 보호해줄 수 없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또 하나의 가해자이기도 한, 철저히 무능하고 부패한 그 나라들의 형사사법체계를 고발합니다.
성폭행, 살인, 인신매매, 채무노예, 토지수탈 등등 이 책이 알려주는 세계 곳곳의 폭력의 실상은 믿을 수 없이 참혹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혹시나 편견이 생길까 하여 나라 이름은 일부러 생략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등하교길에 수많은 여학생들이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빈번한지 여학생들이 학교가기를 두려워해서, 이 나라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이 나라에 이렇게까지 성폭행이 만연한 이유는 성범죄 기소율과 유죄판결비율이 너무나 낮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성폭행을 감행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국제구호기관들이 이 나라 교육제도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성폭력이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 나라 여성들의 교육수준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돈이 있으면 강간,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한 여아가 성폭행 후 살해되어 길거리에 버려졌습니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찾아간 한 저택에서 여아의 피묻은 옷이 발견되었고 역시 여아의 피가 묻은 매트리스도 발견되었습니다. 여아를 부검한 결과 그 저택 주인 아들의 체액이 발견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 용의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러나 저택 주인이 경찰을 매수하자 이후 상황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피해자의 피묻은 옷이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또한 경찰은 체액 샘플을 (의도적으로) 분실한 후 재검을 합니다. 그리고 기존 결과를 뒤엎고 시신에서 용의자의 체액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합니다. 경찰이 압수했던 피묻은 매트리스는 피묻은 부분만 괴상망측하게 잘려나간 반쪽자리 매트리스가 되어있습니다. 매수된 경찰이 모든 증거를 차례로 제거한 후, 결국 용의자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혐의는 다른 힘없고 무고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워졌습니다.


또 다른 나라의 경우, 법조인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재판진행속도는 믿을 수 없이 느린데 국가는 '판결선고 전 구금'을 남발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고작 경범죄를 저지르고도 재판을 기다리며 몇 년씩 구금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서류라도 분실되는 날에는 그가 좁은 감옥에서 몇 년을 썩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잊혀지므로 재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할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서류분실로 인해 6년간 재판없이 구금되어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읽기가 쉽지는 않은 책입니다.)


수많은 국제기관과 NGO들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나라들에서 활동합니다. 이들의 활동은 극빈국의 교육, 위생, 의료, 교통, 통신, 금융 등 물적, 인적 인프라를 형성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과, 빈곤을 겪는 사람들을 향해 직접적인 구호활동을 펴는 것, 크게 이 둘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그와 같은 활동들이 가치있는 일이지만, 이들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범죄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공공사법제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그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Locust effect" 즉, 메뚜기 효과입니다. 공공사법제도가 무너진 국가에서의 일상의 폭력은 마치 한 해동안 열심히 지은 농사를 하루아침에 먹어치우는 메뚜기 떼와 같아서, 공공사법제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입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많은 책들이 있을 경우 그 중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 저에게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다른 책들과 비슷한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두드러지게 잘 쓴 책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책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어야 한다’가 그것입니다.
빈곤의 문제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이 책은 극빈국과 개도국의 빈곤의 문제를 종식시키려면 그 나라의 형사사법제도를 바로잡는데에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는 다소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메시지의 희소성과 차별성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내용이 새로울 뿐만 아니라 매우 잘 쓴 책이기도 합니다.
‘실태 고발’은 충격을 주고 적나라하며, ‘원인 진단’은 예리합니다. ‘대안 제시’는 이미 변화가 일어난 좋은 예를 포함하고 있으며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의 ‘참여를 촉구’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의 생각과 실천을 변화시키는 책을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좋은 모범을 보는 듯 했습니다.


법조계, 국제정치, NGO운동 관심자, 그리고 세계빈곤을 종식시키는데 기도와 실천으로 동참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열렬히 추천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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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강좌나 아티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몇 권의 책 중 하나인, 명실공히 글쓰기에 관한 고전이라 할 만한 책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보면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들려주거나 일단 써보라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책들이 많고, 글쓰기 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서문에서 "이 책은 기능을 연마하기 위한 책이다"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독자의 글쓰기가 향상되도록 돕는 구체적인 제안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다른 글쓰기 책과 구별지어주는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자가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들려주는 내용도 참 유익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라'는 조언이 저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지목하는 나쁜 글쓰기 습관에 저에게 해당되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이 글에서도 여전히 보이네요.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은 아니니 흑흑... 문제점을 자각하게 해준 것 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독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어 독자의 글쓰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가진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번역서라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저자가 가르쳐주는 주옥같은 내용의 많은 부분이 번역으로 인해 힘을 잃게 되니 말입니다.
가령, 책에서 좋은 문장A와 좋지 않은 문장B를 예로 드는데, 번역된 상태로는 A가 B에 비해 왜 더 좋은 글인지 전혀 감이 안 옵니다. 심지어 저는 B가 더 좋은 글로 느껴졌거든요ㅋ
이건 번역의 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책이 '영어로 글쓰기에 대해 가르치는 책'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번역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는 역자와 출판사의 노고가 느껴지는 훌륭한 번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책과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국내저자의 책을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이미 있는데 제가 모르는 건지도... 아는 분 추천 좀 부탁해요^^).


암튼 그런 아쉬움을 감안하고라도, 이 책을 대체할 국내저자의 글쓰기 명저가 나타날 때까지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분명합니다.


Posted by S. J.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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