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끼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으면서,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직접 달리는 것만큼이나(어쩌면 그 이상으로)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드디어 명실상부한 러너들의 바이블 <본 투 런>을 읽었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장거리달리기 주자들인 멕시코의 타라우마라부족의 이야기이며, 그들과 세기의 대결을 펼치는 미국의 울트라러너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첫인상은 "어? 이거 무협지인가?"였다.
도망치는 사슴이 발굽이 닳아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추격하여 잡는다는 신비의 부족이 나오질 않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백Km가 넘는 달리기 경주를 아침조깅하듯 완주하는 이야기(그 중 한 분은 그 거리를 맨발로 가뿐히 달려주신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중고딩때 한참 빠져 읽었던 무협지 속의 고수들은 경공술로 수십리에서 수백리를 지치지 않고 달리곤 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달리는 거리가 그렇다. 무협지나 판타지 속의 인물들 말고 진짜 인간들 말이다.
게다가 스토리는 또 어떤가?
인류 최후의 달리기끝판왕 타라우마라족과의 경주를 위해 혹독한 기후와 지형을 가진 멕시코 오지 코퍼 캐니언으로 달리기덕후들이 목숨을 걸고 모여들어 결국 역사적인 달리기 시합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물론 실화다).
이건 천하제일고수를 가리기 위해 중원무림의 고수들이 화산으로 모여든다는 '화산논검'의 스토리라인과 정확히 같다.
(아. 추억 돋는구나! 천하오절,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을 아는 사람 소리질러~~~)
<본 투 런>은 이 세기의 대결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수시로 곁가지로 빠져나와 달리기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을 던져준다.
가령,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의 신체는 오래 달리기에 매우 적합한 구조로 디자인 되어있다. 고로 인간은 달리는 존재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인간들에게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인간이 달리기를 멈추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다소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주장이지만, 책을 직접 읽어본다면 꽤 설득력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달리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부상의 제1원인은 쿠션이 좋은 비싼 운동화를 신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딱딱하고 값싼 운동화가 달리기에 좋은 운동화이고, 결국 가장 좋은 운동화는 "맨발"이라는 것이다. 운동화회사들이 정말 싫어할 주장이다. 그래서 실제로 현재까지도 이 주장이 불러일으킨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라고 한다(그런데 이것도 직접 읽어보면 매우 설득력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맨발로 다닐 순 없으니 운동화 깔창이라도 빼버리기로 했다).
그 외에도 달리기와 채식의 관계, 오래달리기에 있어서의 여성의 탁월한 역량, 달리기가 인성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이슈들이 흥미를 자극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감동적이다.
이 책에 오래달리기가 강인한 의지뿐만 아니라 좋은 성품을 만들어낸다는 (주장까지는 아니고) 간접적인 암시가 나온다. 물론 우리는 이 주장에 반례가 될만한 사람들을 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스토리를 읽으며, 그리고 내 주위에 몇 안되는 러너들의 성품을 생각하면서 그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오래 달린다고 무조건 현자나 선인이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달리기는 그 사람을 달리기 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웹서핑을 하다 발견한 아래 사진은 책에 나오는 코퍼 캐니언 레이스의 실제 사진이다(왼쪽이 타라우마라 족의 위대한 러너 아르눌포이고 오른쪽이 미국 최고의 울트라러너 스콧 주렉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면 아마 눈물이 핑 돌 거다.
그리고 '나도 저들이 달리듯 저렇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도우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라고 마음을 다잡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달리기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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