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우타노 쇼고, 한스미디어
추리소설의 윤리성을 따질 수 있다면,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은 세상에서 가장 비윤리적인 추리소설이라 할 만하다.
인터넷상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이 살인추리게임을 즐긴다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멤버들은 순번대로 돌아가며 출제를 하는데, 출제자는 문제를 내기 위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살인의 미스터리에 대해 나머지 사람들이 밝혀내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악랄한 이야기를 지어내느냐고 저자를 비난할 수 있지만, 그가 왜 이런 설정을 고안해냈을지는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추리소설의 세부장르 중 ‘본격소설’이라는 것이 있다.
우타노 쇼고는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본격소설의 재부흥을 가져온 소위 ‘신본격파’라 불리는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본격소설은 범인의 정체, 또는 범행에 사용된 트릭의 비밀을 밝히는 것을 중시하는 유형의 작품을 말한다.
본격소설에서는 작품의 플롯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 같은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트릭의 설정과 해결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
(본격파의 반대편에는 사회파가 있다.
사회파들은 범인이나 트릭 자체보다는 그 범죄가 일어나게 된 사회적 상황이나 인간의 본성 등을 고찰하는 것을 더욱 중시한다.
그러므로 사회파 작가에게는 인물과 플롯 자체, 즉, 인물의 성격묘사, 인물 간의 갈등, 사건과 사건 이후의 이야기 전개, 사건을 둘러싼 사회구조 등의 것들이 모두 중요하다.)
그렇다면 가장 순도높고 효율적인 본격소설은 무엇일까?
만약 등장인물의 성격묘사, 등장인물 간의 관계설정, 사건 전후의 이야기 전개 등에 들이는 번거로운 수고를 건너뛰고 ‘범인이 누구인가’, ‘트릭이 무엇인가’에 기여하는 정보만 제공하는 소설을 쓸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작가와 독자가 원없이 두뇌싸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작가로 하여금 '살인추리게임을 즐기는 추리덕후들의 대결'이라는 설정을 만들어내게 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설정이 바로 이 책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는 지점이 되는 것 같다.
사건의 범인과 트릭을 밝혀내기 위한 작가와의 두뇌싸움에 열광하는 본격매니아라면 이 책을 꽤 즐길 수 있을 것이다(설정의 비윤리성에 불쾌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내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 사건을 통해 드러난 부조리하고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한 고발 등 사회파 소설이 가지는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작품일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본격파적인 요소와 사회파적인 요소 둘 다 좋아한다.
하지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작품 보다는 한 작품 안에 그 두 요소가 적절하게 균형잡혀 있는 작품과 작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현재까진 그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다).
본격소설 중에서도 가장 본격스러운 극단적 설정의 이 작품은 그래서 딱 절반만큼 좋았고 딱 절반만큼 아쉬웠다.
그래도 작품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핵심 트릭과 반전은 꽤 훌륭했다.
나는 그 트릭을 거의 비슷하게 맞췄다는 것을 자랑삼아 밝혀둔다. ^^*
이 작품은 <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매니악스>로 이어지는 후속편으로 확장되었으니 대중적으로도 꽤 성공한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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